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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에 발간된 초등학생용 '울산의 충의정신' 다섯 권 중 임진왜란편에 다음 글이 실려있다. 번호는 필자가 임의로 붙였다.
 "울산시 중구 학성동 학성공원 일대에 있는 성곽을 학성, 도산성, 울산 왜성 등으로 부르고 있다. ① 그 동안은 학성이라고 불리다가 일재 잔재 청산이라는 국가적 사업으로 '울산왜성'으로 불리고 울산시 문화재자료 제 7호로 지정되었다(중략). ② 최근 연구에 따르면 현재의 학성공원을 중심으로 우리나라의 성곽이 있었고 이것을 학성이라고 불렀다고 보고 있으며, 울산왜성 축조때 학성을 헐어서 축조했는데, 후대의 사람들이 왜성을 과거대로 학성이라고 부른다는 것이다."
 
 -기초지식 없이 쓴 역사서
 ①에서 일재(일제가 맞다) 잔재 청산이라는 국가적 사업으로 학성을 '울산왜성'으로 부른다 한다. 일제는 제국주의 일본을 말하며, 그 잔재는 일본이 조선을 통치하던 36년간의 흔적을 말한다. 학성이 일제 잔재인가? 이를 울산왜성이라 부르는 것이 일제 잔재 청산인가? 우리 역사에 대한 기초지식이 보이지 않는다. 
 ②는 도무지 뜻을 헤아릴 수 없는 난해한 글이다. 현재의 학성공원을 중심으로 한 성을 학성이라 불렀는데, 울산왜성 축조 때 학성을 헐어서 축조했고, 이 왜성을 학성이라 부른다는 것이다. 학성을 헐어서 울산왜성을 쌓았다는 웃지 못할 설명이다. 문장이 극히 조악한데다 울산 역사에 대한 지식도 전혀 담겨있지 않다.
 언론보도에 따르면, 이 책을 포함하여 3·1운동, 박제상, 박상진, 최현배를 서술한 다섯 권의 책이 간행되었다 한다. 지난 2005년에 울산의 충의정신 편찬위원회에서 '울산의 충의정신'을 간행했는데, 교육청 장학사와 초등학교 교사들이 이를 토대로 초등학생용으로 편집하고 문인들이 감수했다는 것이다. 시 당국은 이를 교육청에 보내 5학년의 '울산의 충의정신' 교육 교재로 삼게 했다고 한다.
 임진왜란과 3·1운동이라는 역사적 사건과 박제상·박상진·최현배 등 역사적 인물을 다룬 교재라면 이것은 역사서라 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집필, 편집, 감수에 역사학 전공자가 참여한 흔적은 보이지 않는다. 초등학교 교사와 문인이면 초등학생 눈높이에 맞추어 역사교재를 편찬할 수 있다는, 역사학이 별것이냐는, 자못 오만한 인식이 엿보인다. 그 결과는 위에서 본 민망한 모습 그대로이다.
 
 -쑥은 삼밭에서 곧게 자란다
 이 뿐만이 아니다. 다섯 권 책들은 체제의 일관성 결여는 차치하더라도 기본적인 역사지식이 턱없이 부족하다. 심한 경우 몇 가지만 더 보자. 기박산성이 운흥사지 부근에 있다 하는가 하면, 이 운흥사는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다고 하였다. 모두 사실과 다른 서술이다. 실성마립간이 화백회의의 추대로 왕위를 계승했다 하지만, 고구려의 힘이 배후에서 작용했다는 것이 학계의 중론이다.
 1888년을 구한말이라 했으나 구한(舊韓) 즉 대한제국은 1897년에 성립되었다. 한일수호조약의 정확한 명칭은 조일수호조규이다. 이 조약으로 개항된 세 항구에는 부산이 포함되어야 마땅하다. 외솔이 연희전문 교수로 부임한 1926년 당시에는 조선어교육이 금지되어 있지 않았다. 그것은 1938년 제3차 조선교육령에서이다.
 이 외에도 사실에 대한 무지, 부적합한 서술, 어색한 문장, 어긋난 사진해설이 곳곳에서 발견된다. 교육청은 어떤 검증과정을 거쳐 이 책들을 초등학생용 교재로 선택했는지 묻고싶다. 삼밭에 난 쑥은 곧게 자란다 한다. 울산의 어른들은 저 어린 눈동자들에게 비옥한 삼밭을 가꾸어 주고 있는가? 학문과 진리에 대한 겸허한 자세가 그 중요한 한 가지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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