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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떠한 일이 있어도 서로 사랑하고 존중하여 진실로 남편과 아내의 도리를 다하겠다고 부부가 맹세하고 결혼생활을 시작하지만, 결혼 생활은 천차만별이다. 맹세대로 매우 행복하게 살아가는 부부도 있을 것이지만 싸우고 화해하기를 반복하면서 정이 깊어가는 경우가 대부분일 것이다. 그런데 이중에는 싸움의 정도가 도를 넘는 경우가 있을 것이고 이에 상대적으로 약자인 아내를 위한 법적 보호 장치가 마련되어야 한다.


 이와 관련하여 가정폭력의 한 형태인 부부강간죄가 성립되느냐와 관련하여 논의가 끊임없이 제기되어 왔다. 그런데 최근 부산지방법원에서 외국인 아내가 생리중이라는 이유로 성관계를 거부하자 남편인 피고인이 흉기로 위협하면서 강제로 성관계를 하게 된 사건에서 이를 인정하여 법조계 안팎에서 화제가 되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논란은 여성의 사회적 지위와 깊은 연관이 있는데 이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연혁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17세기 영국의 매튜 헤일 판사가 '아내는 남편에게 자신을 포기한다고 혼인계약에 서명하였고 이는 철회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에 부부 강간죄는 처벌되지 않는다'고 한 이후 미국도 1875년 매사추세츠 주 법원이 이 내용을 채택한 이후 1980년까지 미국 강간법의 핵심 법리로 작용하여 왔다. 그리고 그 성립을 부정하는 또다른 논거의 하나는 부부는 단일체로 여성은 혼인기간 동안 독립한 법적인 실체가 인정되지 않는데 결국 남편의 아내 강간은 남편 자신에 대한 강간이므로 그 죄가 성립하지 않는다고 하였다. 그후 이 이론은 아내는 남편의 재산이라는 이론과 결합하여 발전하였다. 그러다가 비교적 현대에 나온 것으로는 혼인 중의 프라이버시는 너무나 근본적인 것이므로 법은 그 내부 행위에 대하여 판단을 하여서는 아니된다는 프라이버시론이 주장되었다. 영미의 이러한 법 이론은 독일 등에 영향을 끼쳐 법률의 규정으로 그 성립을 부정하게 되었다.


 그러다가 1980년대에 들어서 여성의 지위가 급속히 성장하게 되었고 이러한 이론들에 대하여 여성이 혼인을 하더라도 독립한 실체성이 소멸되는 것이 아니고 혼인 계약의 한 당사자를 이룬다는 비판 등이 봇물 터지듯 쏟아졌고, 1984년 강간은 피해자의 육체 및 정신적 피해를 초래하는 모멸적, 폭력적 행위로 이에 대하여 동의를 논하는 것 자체가 비합리적인 것고 아내 구타가 혼인의 프라이버시를 이유로 정당화 될 수 없듯이 아내 강간 역시 이를 이유로 정당화 될 수 없는 것으로 혼인증명서가 아내 강간에 대한 자격증이 아니다는 취지의 People vs Liberta 판결이 나오면서 위 이론들은 폐기되기에 이르렀고 이러한 영향으로 독일에서는1997년 강간죄의 객체에 아내를 제외하는 규정을 삭제하기에 이르렀다.


 그런데 우리 형법에서는 독일과 같이 강간죄의 객체에 대하여 아내를 제외하는 규정이 없음에도 대법원이 1970년 부부간에는 강간죄가 성립하지 아니한다는 판결을 한 이후 법원은 부부강간죄를 인정하지 않았다. 그 논거도 미국의 경우와 거의 유사하다. 민법상 부부사이에는 동거의무가 있는데 동거의무는 성생활의 의무를 포함하기 때문에 아내에 대한 강간은 성립하지 않는다는 것이거나 법은 혼인생할에 개입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동거의무에 강간을 감내해야 한다는 의무까지 포함시키는 것은 지나친 점이 있다.


 위와 같이 그 논리의 오류를 따라가다보면 당연히 부부강간죄가 인정되어야 한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을 것 같지만 최종심이 대법원이기 때문에 하급심에서 수십년간 유지된 기존 판례와 어긋나는 판결을 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였고 이로 인해 법원에서 부부강간을 인정한 예는 한번도 없었다. 따라서 이번 부산지방법원 판결의 의미는 막대한 것이고 이와 같은 판결을 한데 대하여 경의를 표하고 싶은 것이다.


 우리 형법상 강간죄가 보호하려고 하는 법익이 무엇인지에 대하여 대부분 성적 자기결정권이라고 설명한다. 성적 자기결정권이란 그 성적인 행위를 할지 말지를 본인이 결정하고 그 행위를 할 당시 누구와 할 것인지에 대하여도 본인이 결정할 수 있는 것으로 행복추구권의 하나인 것이다.


 그리고 필자의 경우 강간죄의 경우 그 객체를 부녀로 규정하여 혼인 중이냐 아니냐가 그 제한의 기준이 아님에도 이를 해석으로 제한하는 것이 타당한지에 대하여 늘 의문이었다. 명문으로 규정된 내용을 제한하기 위해선 그 논거가 확실하여야 하는데 그 논거는 비합리적인 것으로 비춰졌기 때문이다. 결국 이는 사법부가 법 해석을 통해 입법을 한 것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고 이는 사법권의 영역을 벗어난 것으로 보아야 한다.


 만약 헌법상 보장된 재판을 받을 권리에 정당한 내용의 재판을 받을 권리가 포함된다고 하면 부부강간의 경우 정당하지 아니하는 법 해석을 통해 고소권자인 아내 등의 권리가 침해되는 결과가 발생한 것인데 이는 사법권에 의한 사법권의 침해일 수 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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