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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며칠 전 한 밥자리에서 초등학생 아들을 둔 후배가 '아들의 장래희망 변천사'를 늘여놓았다. 이 아이가 유치원 다닐 당시 장래희망은 화가였단다. 그러다 한창 '황우석 바람'이 불자 과학자가 되고 싶어 했고 최근엔 다시 외교관으로 꿈이 변했다고.
 화가가 되고 싶었던 건 그림책 영향이 컸다. 다시 과학자로 마음을 바꾼 연유는 '황우석 열풍'과 함께 밤새워 읽었던 '황우석 일대기'가 계기가 됐다. 잠을 잘 때도 머리맡에 꼭 황우석 관련 책을 놓을 정도로 황 전 교수는 아들의 우상이었다.
 그러던 과학자의 꿈이 다시 외교관으로 선회한 것은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어린 시절부터 꿈을 이뤄가는 이야기를 담아 쓴 '바보처럼 공부하고 천재처럼 꿈꿔라'란 책 때문이었다.
 290쪽의 적지 않은 분량을 하루 만에 다 읽더니 다음날 "아빠 이번엔 변하지 않을 장래 희망을 정했어. 난 이젠 외교관이 될거야"라고 의기양양하게 말하더란다. 그리곤 책에 씌어진 내용처럼 영어 공부를 열심히 해야 하겠다고 다짐까지 해 아빠를 기쁘게 했다.
 이 후배는 "요즈음은 아이가 우주에 관한 책을 여러 권 읽고 있는데, 그 책들을 다 마칠 때면 또 꿈이 바뀔지 모른다"고 웃었다.
 아이들은 책을 통해 여러 가지 꿈을 꾸며 또 희망을 키우고 있다. 자주 바뀔 꿈일지라도 어렸을 때 읽은 책은 자신의 미래에 대한 방향타가 된다.
 조선 시대 윤결은 '맹자'를 1000번, 노수신은 '논어'를 2000번, 정두경은 '사기'를 3000번 읽었다 한다. 이덕무는 추운 겨울 초가 단칸방에서 '논어'를 병풍처럼 늘어 세워 외풍을 막았고, '한서'를 물고기 비늘처럼 잇대어 이불 삼아 덮고서야 얼어 죽기를 면했다. 그의 나이 21세 때였다.
 미국의 빌 게이츠는 바쁜 일과에도 매일 한 시간씩, 주말은 두세 시간씩 책을 읽는 독서광이다. 그는 "오늘의 나를 만든 것은 마을의 도서관이었다. 나에게 소중한 것은 하버드대 졸업장보다 독서하는 습관이었으며 컴퓨터가 책을 대체하리라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책은 동서 고금을 막론하고 삶을 살찌우고 인생까지 바꿔 놓는다.
 그러나 지금 우리의 독서 실태는 어떠한가. 지난해 통계청이 발표한 '전국 가구 항목별 지출액'을 보고 깜짝 놀랐다. 외모를 가꾸는 데는 월 평균 6만 원, 오락 비용으로는 월 평균 9만 원 정도를 지출한다. 하지만 책을 사는 데는 거의 한 푼도 쓰지 않고 있다. 전국 가구의 월 평균 외식비가 24만 원이 넘는데 신문과 잡지, 자녀들의 동화 교양서적까지 포함한 '서적 인쇄물 지출액'은 월 1만2000원밖에 되지 않았다.
 책 읽는 시간도 일본의 3분의 1수준이며 TV보는 시간의 4분의 1밖에 되지 않는다. 그나마 읽는 책도 대부분이 실용서이거나 단순 정보 위주의 가벼운 책 아니면 시험기술을 가르치는 것들이어서 참된 의미의 독서라고 말하기가 어렵다.
 이는 참으로 부끄러운 수준이기도 하지만 부실한 독서문화는 정보화 사회를 떠받쳐야 할 지식 경쟁력 부실로 이어진다는 점에서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심각한 사회의 문제라 하겠다.
 70~80년대 중·고교에서 '문학의 밤' 행사를 갖고 문집을 만드는 일은 흔한 일이었다. 대학 학회와 동아리에서는 매주 대학생들이 독서토론을 했다. 하지만 요즘은 독서를 휴식과 즐거움이 아니라 입시와 출세, 성공을 위한 '과업'처럼 여기는 분위기다.
 독서는 꿈을 키워주기도 하지만 통찰력을 기르고 종합적이면서 주체적인 사고능력을 길러 준다. 책을 읽는다는 것은 자기가 경험하지 못한 세계와 사람들에 대한 이해를 넓히는 일이다.
 책을 읽지 않는 국민에겐 희망도 미래도 없다고 했다. 과거 인류의 경험과 지혜가 녹아 있는 좋은 책 속에는 밝은 미래로 가는 길이 있기 때문이다.
 나라가 바로 서고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서 이젠 먹고 마시고 노는 것을 줄이고 그 시간에 책을 읽어야 하지 않겠는가. 거실의 TV를 안방으로 물려 서재로 꾸미고 쉬는 날엔 가족이 가까운 도서관을 찾아 책 나들이를 떠나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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