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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류의 역사에서 축제는 고대의 제의로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고대인들의 삶의 역경과 한계, 그리고 미지의 두려움을 이겨내고자 한 산물이다. 이러한 원시적 의지는 크게 3가지로 분류된다. 곧 토테미즘과 에니미즘, 그리고 샤머니즘이다. 토테미즘은 동물을 신격화하는 경우이다. 우리가 잘 아는 반구대 암각화에 새겨진 고래그림에서 고래를 신격화하는 선사인들의 의식이 좋은 사례가 된다. 고래는 신격이기도 하며 사냥의 대상이 되기도 하는 이중성을 갖는다. 에니미즘은 모든 사물에 영혼이나 정령이 깃들어져 있다는 의식으로서 흔히 시골마을에서 볼 수 있는 당산나무가 좋은 예가 된다. 기이한 돌이나 바위도 에니미즘의 좋은 대상이 된다. 샤머니즘은 전통적으로 트렌스(Trance, 탈영혼)상태를 거치며 타계의 신격을 만나는 것이지만 넓게 본다면 카타르시스적 행위로서 내면에 쌓인 스트레스를 풀어내는 것이며 영혼과 정신의 씻김을 하는 제의행위이다.

 

   모든 존재가 소통하는 시공간


 이러한 원시적 제의형태는 미지의 존재들과 일정한 관계를 갖고 소통을 하는 것으로서 이들 모두의 소통은 만남을 전제하기에 모든 제의는 곧 만남이라 해야 할 것이다. 여기에서의 만남의 주요대상은 미지의 신과 같은 존재가 되지만 넓게 본다면 참여하는 모든 사람과 산천초목 등의 모든 존재들과의 만남을 의미하기도 한다. 즉 인식되어지는 유무형의 모든 존재들과 만나는 것이라 하겠다. 전통적인 한국의 관념에는 이를 세계(世界)와의 만남이라 지칭하여 왔다. 삼세삼계(三世三界)와의 만남이라 하겠다. 즉 과거와 미래가 현재라는 시간에서 만나는 것이며 하늘의 존재자와 지상의 모든 존재들이 제의가 펼쳐지는 공간에서 인간과 만나는 것이다. 제의가 펼쳐지는 시공간인 '지금 여기'의 개념은 그렇기 때문에 매우 성스럽고 숭고해 진다. '지금 여기'에서 세계를 만나 미지의 두려움을 씻어내고 삶에서 엉킨 모든 것을 풀어내며 밝은 미래를 기대하는 것이다. 곧 개인과 집단의 카타르시스의 결정이다. 오늘날의 축제는 고대의 제의와는 내용적 측면에서 큰 차이가 있지만 그 근간이 되는 만남에 의한 소통은 여전히 동일하다. 우리는 축제를 통하여 주제적 내용의 역사적 존재성과 현재적 의미성을 만난다. 고래축제에서 고래의 역사성과 의미성을 만나고 옹기축제에서 옹기의 역사성과 의미성을 만난다. 또한 그것이 승화된 문화예술을 만나고 주변의 산천과 자연을 만나며 수많은 사람들을 만난다. 만남과 소통의 현대적 변용이라 하겠다. 또한 오늘날의 축제는 대부분 기념을 위한 내용과 유희성을 중심으로 삼는다. 특히 유희성은 생활과 삶속에서 뒤엉킨 답답함과 불만족을 풀어내는 여가시간이자 나아가 일탈의 카타르시스적인 시간이다. 생활 속에서 맺힌 많은 것을 만나서 풀어내는 장소이자 시간이기 때문에 모든 축제는 그 바탕에 즐겁고도 흥겨운 숭고함이 존재한다 하겠다. 따라서 현대의 모든 축제도 고대의 제의와 같이 숭고한 만남이 이루어지는 현재적 시간이자 장소가 된다 하겠다.

 

   경제논리로 본질 퇴색


 5월을 맞아 울산에는 크고 작은 많은 축제가 열리고 있으며 현재에는 고래축제가 가장 큰 규모로 여겨진다. 일 년 중 가장 좋은 계절인 봄과 가을에 축제행사가 집중되는 이유로 전국적인 현상이기도 하다. 그러나 대부분의 오늘날의 축제에는 숭고한 만남이 퇴색되어 보이고 있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그 이유를 다양하게 살펴 볼 수 있겠지만 가장 크게는 군집된 대중의 숫자와 경제적 논리에 집착하는 지방자치단체와 주최측의 관점으로 보인다. 앞에서 언급한 제의와 축제가 가진 본질적 내용보다 정치성과 전시적 규모에 관심을 갖는 이유로 행사를 진행하는 것에 많은 비용이 들고 그만큼 군집된 많은 대중에 의한 경제적 소비를 요구하는 구조가 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측면으로 축제가 진행된다면 참여하는 많은 대중은 행사의 성패를 가늠하는 숫자에 불과해지며 호객의 대상으로 전락하고 만다. 결과적으로 참여하는 대중도 숭고한 만남과 소통성을 잃고 쾌락적 재미에만 집중하게 될 것이다. 숭고한 만남이 바탕이 될 때 많은 대중은 스스로 축제의 주인이 된다는 것을 고대의 제의가 우리에게 던지는 메시지라 여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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