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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울산의 역사와 문화를 체계화하는 작업이 가시화 되고 있다. 지난 봄 첫 삽을 뜬 울산시립박물관은 내년 말 시민들에게 오픈될 예정이다. 울산의 시세나 역사에 비하면 한참 늦은 박물관 건립이지만 늦은 만큼 제대로 된 시립박물관이 탄생하기를 시민들은 학수고대하고 있다. 울산시는 시립박물관을 관장하는 주무부서를 신설하고 전담공무원을 배치하는 등 지원체계를 갖췄다. 자문위원들의 전문적인 의견도 박물관 건립에 최대한 반영한다는 열린 생각도 밝히고 있다. 문제는 박물관 건립이 아니라 박물관에 무엇을 담아 울산을 보여줄 것인지를 고민하는 일이다. 첫 단추를 잘못 끼우면 그 영향은 울산의 정체성을 왜곡할 수 있기에 더욱 조심스럽다.


 우선 울산시가 밝힌 시립박물관의 내용을 살펴보자. 내부 시설로는 상설전시장 외에도 산업사관과 어린이사관 등의 테마전시장을 설치해 특화한다는 게 울산시의 설명이다. 특히 울산시가 강조하는 부분은 산업사관이다. 산업도시 울산을 부각하려는 의도로 기획된 산업사관에는 삼한시대 '달천철장'에서 현대산업사까지 망라해 국내최대 친환경 산업수도 울산의 진면목을 보여줄 계획이라고 한다. 모두 8개 존으로 설치되는 산업사관에는 '도입부'에서 생태산업도시를 개괄하고, '산업사 개관'에서는 지역산업의 발달사를, '산업도시 원류, 철'에서는 울산의 제철문화를 각각 소개한다. 또 '세계를 향해 달리는 자동차산업'에서는 자동차의 역사와 현황, 그리고 미래산업을 각각 전망한다니 그야말로 산업박물관이 들어서는 셈이다.


 울산시립박물관은 박물관으로는 드물게 민간투자사업 방식으로 건립된다. 울산시의 재정여건이 허락한다면 굳이 BTL 방식의 사업이 필요하지 않지만 산단조성 등 투자할 곳이 산적한 울산으로서는 전액국비 지원이 되지 않는 상황에서 BTL 사업은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시립박물관이 없는 유일한 광역시인 울산이지만 늦게 짓는 박물관인 만큼 그 기대 또한 남다른 점도 부담일 수 있다. 하지만 적은 예산에 많은 것을 담으려는 것은 출발부터 과욕을 낳기 마련이다. 지금의 안 대로라면 울산시립박물관은 주 전시관보다 테마전시관인 산업사관이 부각될 가능성이 높다는 이야기다.


 과거 울산에는 시립박물관 이야기보다 공업박물관이나 자동차박물관 이야기가 박물관의 단골메뉴가 됐다. 실제로 김대중정부 때는 공업박물관이 구체화돼 당장이라도 건립될 것처럼 시민들을 현혹시킨 일도 있다. 조선과 자동차, 화학산업의 메카라는 울산에 공업박물관의 설립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들 주력업종의 주축인 대기업들의 박물관 투자 의지는 전혀 없다. 이익창출에 혈안인 기업의 속성을 잘 보여주는 대목이다. 울산의 지도를 바꾸고 환경을 바꾼 대기업들이 그들의 역사를 고스란히 담아 대한민국 산업사를 기록하는 전시관을 세우는 일에 소극적인 것은 수익과 무관한 투자는 하기 싫어서인지 아니면 드러내는 일보다 감추고 싶은 일이 많기 때문인지 모를 일이다. 


 이탈리아 토리노시 외곽에 위치한 토리노 자동차 박물관은 이탈리아 자동차의 약 80%를 생산하며 토리노에 본사를 둔 이탈리아 최대의 기업 피아트가 지난 1960년에 설립했다. 이 박물관은 전 세계 자동차 매니아들이 즐겨 찾는 관광명소이자 박물관 건물 자체가 토리노에서 가장 흥미로운 현대 건축물에 속한다. 지금은 몰락한 자동차 도시가 된 미국 디트로이트만 해도 포드자동차 박물관이 자동차 도시의 상징처럼 남아 있다. 이 박물관은 디트로이트가 자동차 산업의 메카로 미국인의 자랑일 때는 영화의 상징이었고 이제 몰락의 도시가 된 시점에는 과거의 산 증인으로 도시의 상징이 됐다. 지난해 제주도에 세계 자동차의 변천사를 한 눈에 볼 수 있는 자동차 박물관이 들어섰다. 기업이 아닌 한 자동차 애호가가 만든 이 박물관은 1880년대부터 1970년대에 이르기까지 27개 나라 70여 대의 자동차가 전시돼 있다. 세계 6위의 자동차 생산국임에도 불구하고 국내에서는 자동차에 대해 보고 배울만한 공간이 없는 것이 안타까웠다는 박물관 설립자는 혼자서 세계를 돌아다니며 본격적인 자동차 수집에 나서 박물관을 만들었다고 한다.


 대한민국 산업수도이자 공업입국의 상징인 울산에 공업역사박물관을 세우는 일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대한민국 산업의 역사를 체계적으로 집대성한 장소가 전무한 현실에서 공업박물관이 들어선다면 의미 있는 일이다. 하지만 울산을 토대로 성장을 이룩한 기업들은 조선이든 자동차든 석유화학이든 박물관 따위는 안중에 없다. 시립박물관에 테마관으로 산업역사관을 만든다고 하니 전시물 몇 개 기증하고 생색이나 낼 궁리나 하고 앉아 있다. 이쯤되면 울산시가 기업의 생색내기에 멋진 마당을 만들어주는 셈이다. 산업역사관은 기업의 몫이다. 이익을 창출한 만큼 지역사회에 자신들의 역사를 제대로 알리는 박물관을 따로 만들어 보여줘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울산시가 지금이라도 산업역사관을 백지화하고 울산의 역사와 문화를 제대로 구현하는 본전시관에 집중해야하는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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