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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자는 직업이 화가이기 때문에 전시문제 등으로 타 지역의 작가들과 교류기회가 많다. 물론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지만 특히 그 중에 전업예술가들을 만나는 경우가 많다. 연극연출가, 영화감독, 시인, 음악가, 무용가 등이지만 아무래도 그 속에 화가들이 가장 많다. 지난주에는 제주도립미술관의 개관기념전을 제주작가들과 함께 살펴보고 또 기당미술관과 이중섭미술관을 둘러보기도 했으며, 마침 필자와 함께 전시를 위해 제주현대미술관을 찾은 서울, 광주, 인천 등지에서 온 작가들과 자리하여 다양한 정보와 창작생활 이야기를 하기도 했다.

 

   부자도시는 작품활동 편하다?


 타 지역의 작가들과 만나는 자리에서 그들은 늘 필자에게 물어오는 질문이 있다. "울산이 우리나라에서 경제적으로 가장 잘 사는 지역이니 작품활동을 하기가 편하시지요?"라는 말이다. 경제적으로 풍족한 만큼 작품의 소비가 많을 것이라는 생각이다. 따라서 전업적인 창작활동을 하기에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좋은 지역이 아니냐는 말이기도 하다.
 그 질문 속에는 중요한 문제가 바탕에 깔려있다. 도식적인 해석을 한다면 경제적인 발전은 일반적으로 시민들의 질 높은 문화생활로 귀결되기 때문에 문화예술의 소비가 많을 것이라는 생각이다. 그리고 이러한 현상이 우리나라에서 가장 부자도시인 울산에서 어떻게 전개되고 있는지를 타 지역의 작가들이 살펴보고자 하는 질문이다.


 필자는 이러한 질문을 들을 때면 몹시 긴장된다. 그들이 요구하는 답을 결코 내놓지 못하기 때문이다. 울산이라는 도시는 경제적인 발전을 이룬 도시임에는 분명하지만 시민들의 문화예술적인 향유와 소비가 낙후되어 있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예로서 울산은 타지역에 비해 전업작가를 찾아보기가 매우 힘든 곳이다. 다양한 이유가 있겠지만 근본적으로 작품의 소비와 판매가 부진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대부분의 작가들은 서울을 차치하더라도 인근 도시인 부산이나 대구에서 활동하기를 원한다. 그들은 곧 부산작가, 대구작가로서 활동을 하게 되는 것이며, 한편으로 타지에서 창작을 위해 울산으로 유입되는 작가는 찾아보기 힘들다. 돌이켜보면 이러한 문제는 근본적으로 시민들의 문화적 소양과 예술의 향유욕구가 부족하기 때문이 아니라 문화정책의 부재에서 나타나는 현상이다.


 우리가 잘 알듯이 오늘날의 세계적인 예술의 중심지와 미술의 중심지는 미국이자 뉴욕이다. 그러나 그것은 결코 우연에서 일어난 현상은 아니다. 서구 문예부흥의 발생지였던 이탈리아는 이후 프랑스 파리로 전환되었고 파리중심의 활동은 2차 대전 이후 뉴욕으로 전환되었다. 그리고 오늘날 뉴욕중심에서 영국의 런던과 중국의 베이징으로 옮겨가고 있는 중이다. 모두가 세계적인 문화예술의 중심지로서 자리하고자하는 부단하고 치열한 정책에서 기인 한 결과이다. 우리나라에서는 대표적으로 경기도와 광주, 그리고 제주도를 꼽을 수 있으며 인근의 김해와 밀양도 작은 예가 될 수 있다.
 필자는 울산의 문화정책에서 창작을 위한 예술정책뿐만이 아니라 지역에서 활동하는 예술가를 위한 정책도 매우 부족한 도시라 여긴다. 때문에 결과적으로 지역의 역사성과 사회성, 그리고 다양한 사회성과 자연미를 가진 자생적인 예술작품이 부족한 도시이며 넓게는 문예비평과 담론, 그리고 깊이 있는 비평문화가 부족하다고 여긴다. 모두가 시민의 문화적 품격과 관계하며 또한 도시의 수준을 엿보게 하는 중심적인 잣대이다.

 

   지원기금 분배에만 '급급'


 돌이켜보면 울산시의 문화예술정책은 오랫동안 문화예술 지원기금의 분배에만 머물고 있으며 지원기금 또한 문화예술 단체와 축제행사에 편중되어 있다. 지원대상이 모두 조직적 성격을 갖고 있기 때문에 이러한 정책의 결과는 불행히도 지역 예술계 내의 기묘한 서열을 끝없이 양산하는 결과를 초래하고 또한 예술계내의 갈등을 구조적으로 만들어 내는 결과를 만든다. 따라서 좋은 작가와 깊이 있는 작품을 생산하지 못하며 또한 좋은 작가를 양산하는 여러 담론들과 사회적 바탕도 마련하지 못한다. 결과적으로 시민들의 문화수준과 도시의 품격은 언제나 답보상태에서 기금을 지원받은 단체전이나 혹은 타지의 작가들이 마련한 스쳐지나가는 공연이나 전시를 볼 뿐이다. 문화의 시대, 문화의 도시는 결코 경제적 풍요만으로는 오지 않는다. 품격 있고 풍요로운 문화도시의 중심에는 훌륭한 문화예술정책이 자리하고 있으며 이러한 바탕의 중심에 좋은 예술가들이 자리하기 때문이다. 필자는 자랑스럽게 울산에서 창작활동을 하고자 하며, 타 지역의 작가들에게 울산에서 활동을 권유하는 날이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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