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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대중 전 대통령의 국장을 마쳤다. 국회 광장에서 영결식을 마친 고인은 국립 현충원에 안장됐다. 고인은 병환중에도 이명박 대통령을 비롯해 김영삼 전 대통령과 전두환 전 대통령의 문병을 받아 오랜 정치적 라이벌과 화해하는 감동을 보여주었다. 장례 기간 중에는 국내의 주요 인사는 물론 해외 각국의 대표들이 고인의 운명을 슬퍼하는 조문차 방문해 세계적 인물이 떠났음을 실감케 했다. 이번 국장을 통해 고인의 생전 업적을 조명하고, 우리 사회에서 지닌 의미와 향후 영향을 알아보겠다.

 

   민주화·경제난 극복·평화 위해 헌신


 첫째, 김대중 전 대통령은 민주화와 경제난 극복, 그리고 평화를 위해 평생 헌신했다. 고인의 삶은 현대 정치사에 다름 아니다. 민주화를 위한 험난한 가시밭길을 마다하지 않았다. 고인이 지닌 민주적 상징성은 권력의 암살 시도와 극형 처벌로 이어졌다. 하지만 그때마다 천운과 국제사회의 구명 운동 그리고 국내외 여론에 힘입어 화를 면하고, 오뚝이처럼 일어섰다. 고인은 취임과 더불어 IMF 외환위기에 빠진 국가 경제를 회복시키기 위해 동분서주했다. 그 결과 3년 만에 IMF로부터 받은 구제금융을 상환하고, 경제발전의 기틀을 세웠다. 고인은 남북 교류와 평화 체제 구축을 위해 '햇볕정책'을 추진하면서 남북의 신뢰를 두터이 했다. 이런 노력은 세계적으로 주목받은 2000년 남북 정상회담으로 이어졌고, 노벨 평화상 수상을 통해 민족적 자긍심을 높였다. 이밖에도 국가인권위원회 설치를 통해 한국의 인권 수준을 세계 수준으로 끌어올렸다. 물론 고인의 과도 있다. 1987년 민주화 이후 양김 대립으로 대통령 단일화 후보 배출에 실패했고, 김영삼 후보의 대통령 당선 이후 정계 은퇴를 선언했지만 번복한 것이다. 하지만 상대적으로 작은 과실에 가려 커다란 공적을 놓치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될 것이다.


 둘째, 고인의 장례식을 국민장이 아니라 국장으로 결정하는 과정에서 화합의 모습이 연출됐다. 유족 측은 국가와 국민 그리고 국제사회를 위한 고인의 업적에 비추어 국장을 원했다. 하지만 실무적으로 국장의 경우 장례일을 휴일로 지정하는 등 절차가 복잡하고 준비가 많이 소요되는 점에서 쉽지 않았다. 최종적으로 이명박 대통령이 장례기간을 6일로 조정하여 수용했다. 국민 화합을 이루고, 전직 대통령의 업적을 배려한 결정이었다. 또한 서울 광장에 설치된 분향소는 조문하는 시민들에게 편의를 제공할 뿐만 아니라 경건하고 차분한 모습을 통해 우리 사회의 소통 공간이 살아있음을 보여줬다. 이처럼 다양한 요구의 균형점에서 타협을 모색하는 자세는 향후 우리 사회의 갈등 해결에서 본보기로 삼을 필요가 있다.

 

   떠나면서까지 남북화해 실마리 제공


 셋째, 고인은 우리 곁을 떠나면서까지 남북 화해의 실마리를 제시했다. 북한 측이 조문단으로 파견한 김기남 노동당 비서와 김양건 통일전선부장 등은 북측의 핵심 간부다. 우리 정부가 이들과의 대화를 통해 남북관계를 어떤 방향으로 이끌어갈 지 모색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됐다. 교류와 협력이 남북 양측을 위해 도움이 된다면 이를 위한 대화에 주저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서거 소식을 접하고, 장례식을 지켜보면서 국내외의 많은 사람들이 슬퍼했다. 정치인으로서 그리고 대통령으로서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 경제회복, 남북평화, 인권보호 등의 분야에서 큰 업적을 남겼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러한 업적이 당대에 그치지 않고 앞으로도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점에서 고인은 여전히 우리 곁에 있다. 또한 국장이란 장례 절차를 결정하는 과정에서 보여준 이명박 대통령의 배려와 타협의 자세가 향후 정책에 반영될 경우 사회적 갈등과 대립을 막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우리 정부가 조문사절로 평양에서 서울에 온 북측 인사들과 냉각된 남북대화의 전환점을 찾을 경우 한반도 긴장 완화와 동북아 평화체제 구축을 향해 한 걸음 내딛을 수 있을 것이다. 삼가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의 명복을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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