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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시기'란 말이 있다. 이 말은 조폭 영화에서나 나오는 방언으로 알려져 있지만 알고 보면 국어 사전에 나와 있는 표준어다. 거시기의 사전적 의미는 '이름이 얼른 생각나지 않거나 바로 말하기 곤란한 사람 또는 사물을 가리키는 대명사'이다. 정말 우리 일상 생활에서 꼭 필요한 말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거시기'로 대화를 할 수 있는 상황은 늘 한정이 돼 있다. '거시기', '거시기'라고 해 봐야 다른 이가 그 '거시기'가 무엇인지 모르면 하나마나 한 소리가 되는 것이다. 말로 인해 엉뚱한 오해가 발생하지 않기 위해서는 상대방에게 정확하게 전달할 수 있는 단어를 구사해야 하는 것이다. 


 나이가 들수록 상황에 적합한 단어가 떠오르지 않는 일이 잦아지는 것 같다. 머리 속에서는 그 말이 입 밖으로 나올 준비를 하고 있는데, 입 밖으로는 단어가 나오지 않는 일이 많은 것이다. 자연스럽게 '거시기' 같은 대명사를 쓸 일이 많아지는 것 같다. 이럴 때 사전을 찾아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지만 사전을 늘 소지하고 다닐 수 없다.

 

   휴대폰에 '국어사전'이 없다


 말이 떠오르지 않을 때마다 단어를 간편하게 찾아볼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휴대전화에 '국어사전'이 있으면 어떨까 싶다. 그러나 휴대전화의 기능 중에 국어사전을 검색할 수 있는 항목은 없다. 휴대전화를 만드는 회사별로 조금의 차이는 있기는 하지만 대다수 휴대전화 전자사전의 메뉴에는 영한사전, 한영사전, 영영사전, 숙어검색, 예문 검색, 영어 회화 등이 있다. 심지어는 토익단어장, 수능단어장도 있는 휴대전화도 있다. 친절하기도 하다. 그러나 이미 대학입시라는 관문을 통과한 20세 이상의 성인들에게 수능단어장이 무슨 필요가 있는가 싶기도 하다.


 국제화 시대이니 영어가 중요하다는 점은 필자도 가슴깊이 공감하는 바이다. 영어도 한글처럼 소통하기 위한 언어이니 공부하면 할수록 좋다는 것은 언급할 필요도 없는 말이다.  국제화 시대여서 영어가 중요하다면 국제화 시대이기 때문에 우리말도 중요하다.
 그런데 우리말을 아끼려는 노력은 한글날 뉴스에서나 볼 내용이 되었다. 어문규정에 어긋나거나 '다르다'와 '틀리다' 조차도 잘 못 쓰는 일들이 허다하다. 우리말은 모를 수도 있는 말이고 몰라도 되는 말로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니 휴대전화에 '국어 사전'이 없다는 사실이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국민이 소중함 깨달을때 가능


 이쯤되면 우리말을 경시하는 전자 회사에 대한 비난이 쏟아질 법도 하다. 하지만 문제는 휴대전화를 만드는 전자 회사가 아니다. 문제는 소비자가 '국어 사전'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지 않는 데에 있기 때문이다. 휴대전화로 은행 업무를 보고, TV를 보게 된 것도 소비자의 힘이다. 소비자의 생각이 곧 휴대 전화를 발달시킨 힘인 것이다. 안타깝게도 우리가 생각하는 점점 더 좋은 휴대전화에는 우리말은 없다. 우리말의 소중함을 우리 모두가 깨닫는다면 휴대전화로 '국어 사전'을 검색할 수 있는 날이 올 것이다.


 오늘은 한글날과는 무관한 3월 어느 봄날이다. 어린이날만 어린이를 보살피고, 어버이날에만 부모를 생각하는 우리들에게 한글날이 아닌 날, 우리말에 대한 소중함을 이야기하는 일이 낯설기만 하다. 그런데 우리말이 소중하기 때문에 우리말을 지켜야 한다는 원론적인 이야기가 아니다. 내가 정말 하고 싶은 말을 하기 위해서는 우리말을 잘 알고 있어야 한다는 이야기이다. 우리는 이처럼 아름다운 봄날을 지내고 있건만 우리말의 봄날은 언제쯤 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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