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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홀연히 수능이라는 광풍(狂風) 한 자락이 지난 16일 한반도를 훑고 지나갔다. 전국 각지의 사찰마다, 교회마다, 유명산과 들녘마다 좋은 점수와 그로인한 좋은 대학에로의 합격을 소망하는 어머니들의 기도열기가 입동(立冬)의 한반도 상공을 데웠으리라, 왜 이리도 입시에 온 나라가 들썩이는 것일까? 대저, 어느 나라에서 대학입시를 위해 비행기 이착륙을 특정시간이나마 금지시키고 출근시간을 1시간 씩 늦추고, 공권력이 총동원되어 수험생들을 수송하는데 총력을 기울일 수 있을까?
 우리나라의 초·중등 교육의 목표는 오로지 '대학입학'과 각종 고시 같은 '자격증' 따기에만 그 맥이 닿아있기 때문이다. 초등학교 때부터 영어공부를 하는 것은 영어로 쓰여 진 책을 읽을 수 있게 하여 사고의 폭을 더 넓히고 외국인과의 의사교환을 쉽게 하려는 것이 아니라 대학입시와 각종시험에 중요하게 배점되어 있기 때문이다. "국제화 시대를 맞이하여 어쩌고, 저쩌고는…" 견폐(犬吠-개 짖는 소리)일 뿐이다. 흔히들 우리나라 부모들이 어린 자녀들에게 하는 말들 중 하나가 "대학에 가면 실컷 ~하게 해준다"이다. 그러니 대학에 들어오고 나면 실컷 술 마시고, 놀러 다니고, 그동안 할 수 없었던 취미생활에, 이성만남에, 남들 다가는 어학연수 또한 가야한다. 그러니 대학 들어가서 쉼 없이 논다고 꾸짖을 처지가 못 되는 것이고, 그러다보니 자연히 학점을 위한 공부만 있고 창의력과 감성을 개발하기 위한 독서에는 할애 할 시간이 부족하니 대학생 일인당 독서량이 OECD국가 중 최하위인 것은 당연지사(當然之事)인 것이다. 그런데다, 대학에 들어왔다 손 치더라도 상식을 뛰어넘을 정도로 많은 수의 대학생들이 전공 불문하고 '사법고시'를 준비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전국 대학마다 고시에 청춘을 건 학생들이 적지 않다. 청년 실업자, 직장인들 사이에서도 고시 열풍이 분다. 이것이 건전한 사회현상일까. 수많은 젊은 인재들이 고시와 자격증시험에 수년을 투자하는 사회를 건강하다 할 수는 없으리라. 고시 열풍은 한국사회 특유의 병리 현상이다. 이 모든 왜곡되고 변질된 교육의 문제점 근저(根底)에는 '과거(科擧)시험'이란 역사의 폐습이 웅크리고 있다. 그러니 대학 본연의 격물치지(格物致知-사물의 이치를 연구하여 지식을 명확히 함)는 꿈도 꾸지 못하는 것이다.
 고려 광종 9년(958)에 이르러 시행되기 시작한 과거제도는 후주(後周)로부터 고려로 귀화하여 등용된 쌍기(雙冀)가 왕권강화책의 일환으로 과거제도의 시행을 적극적으로 추진했기 때문이다. 과거제의 실시로 종래의 관리와 대별되는 지식인 출신의 관료 집단이 형성되어, 이들이 국가의 주요 정책을 기획하고 시행할 수 있는 핵심부서에 포진함으로서 마침내 조정 내에서 신·구세력 간의 세대교체를 이끌어 낼 수 있었다. 과거제도는 고려에서 시작되었지만 조선시대에 활성화되었고 확고한 자리를 잡는다. 과거시험이야말로 조선시대 500년을 지탱하는 근간이라고 설명하는 학자들도 있을 정도이다.
 현재의 입시와 고시제도는 조선시대 과거(科擧)와 너무도 닮아 있다. 요즘 청년들이 입시와 고시에 목을 매듯이 조선시대 식자층들도 그랬다. 한국사회에선 'SKY대 합격, 사법시험 합격=신분의 수직상승'으로 통한다. 조선시대 때도 이러한 등식이 성립됐다. 그러다 보니 과거제도 자체가 타락하는 현상이 발생했다. 과거는 시행 과정에 이미 커다란 불공정성을 내포하고 있었다. 제도상 천민(賤民)을 제외하면 과거 응시에 아무런 신분적 제한이 없었다. 그러나 과거를 준비하는 비용과 교육기회는 사실상 양반 계급의 전유물이었다. 인구의 대다수인 농·상민은 과거에 응시할 현실적 여건을 갖지 못했다. 그래서 과거는 참여자가 양반으로 제한된 양반사회 내부의 게임일 뿐이었다. 오늘날도 그렇다. 소위 '있는 계층'의 사교육비는 상상을 불허한다. 내신을 올리기 위한 뒷거래가 생기고, 막아도, 막아도 부정행위는 근절되지 않는다. 몇 백 년 전도 그랬다. 도대체 언제까지 과거의 망령과 협잡하며 놀아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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