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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뚱보 눈사람 총각은 마음이 급했어요. 아침이 밝기 전에 꼭 반달 아가씨와 결혼을 해야 했거든요. 심술쟁이 해님이 뚱보 눈사람 총각의 몸을 사정없이 녹여버리기 전에 말예요.  "마흔에 총각? 호호 완전 할아버지잖아! 저 툭 튀어나온 배는 어떻구! 게다가 무슨 부끄럼은 그렇게나 타는지." 이런 악마들의 속삭임 같은 것에 마음 빼앗길 시간이 없었어요. 지난 번 기러기 아가씨 때처럼 "저어 저어 " 하다가 망치면 낭패거든요. 급한 마음에 구름 아줌마부터 찾아갔어요. 구름 아줌마는 지구 마을의 해결사이거든요. "구름 아주머니! 구름 아주머니! 저어 반달 아가씨에게 청혼을 해야 하는데 좋은 방법이 없을까요?" "츳츳, 총각 허리에 출렁이는 그 살부터 빼세요. 그 뚱보 몸으로는 지렁이도 도망가요! 도망가!"  구름 아줌마는 방법은커녕 잔뜩 기운 빼는 소리만 늘어놓았어요. "까마귀에겐 까치처럼 사랑받는 법을 알려 주셨다죠? 겨울잠이라곤 자본 적 없 는 노루에겐 겨울잠 자는 비법을요. 육지 게에겐 이사 가지 않고도 한 집에서 죽을 때까지 사는 방법도 알려줬다고 하셨잖아요. 아주머니, 제발 저에게도 반 달 아가씨의 마음을 사로잡는 비법을 부탁드려요." 뚱보 눈사람 총각은 매달릴 수 밖에 없었어요. 해결사 구름 아주머니라면 반드시 방법이 있을 테니까요. "아주머니의 은혜는 잊지 않을 게요. 한 번만, 한 번만 부탁드려요. 네? 네?" "아유, 내 총각에게 졌다! 졌어! 그럼 내가 시키는대로 할 자신 있죠?"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뚱보 눈사람 총각은 고개가 땅에 닿도록 절을 하고 또 했어요. 반달 아가씨가 화장실 볼 일이 급한 게 분명해요. 다리를 꼬고, 엉덩이를 주먹으로 꾹 틀어막았다가 뗐다가, 낯빛이 하얗다가 노랗다가, 똥인 것이 분명해요.  "아이, 어떡해…… 어떡해…… 여기 구름 동네엔 화장실 같은 건 없는데……." 앞으로 봐도 강, 뒤로 봐도 강, 옆으로 봐도 강이긴 마찬가지에요. 백설공주와 라이벌이 될 만큼 예쁜 반달 아가씬데 아무 데나 엉덩이를 까고 똥을 눈다는 건 안 될 일이지요. "아가씨, 내가 화장실 아는데 가르쳐줄까?" "정말요?" "물론! 그런데 조건이 있어." "저한테 화장실만 가르쳐주시면 별이라도 따 드릴 게요." "참말이다! 별이라도 따 준다 했어?" "네에! 약속할 게요. 이렇게 손가락 걸면 되죠?" "좋아! 따라 와!" 구름 아줌마가 반달 아가씨를 데려간 곳은 어느 강변 마을이었어요. 하얀 건 강만이 아니었어요. 낙타를 닮은 건너편 앞산도 하얗기는 마찬가지였어요. 넓은 고수부지는 북극이 따로 없었어요. 개들이 끄는 썰매만 있다면요. 눈 속에 더욱 하얗게 빛나는 둥근 비닐하우스 기차들. 금방이라도 칙칙폭폭 기적 소리를 울리며 떠나갈 것만 같았어요.  "아, 이런 데서 며칠 세상 모르고 잠이나 자고 갔으면!" "아이, 아줌마두, 감탄은 나중에 하시구요. 저어 화장실부터 가르쳐주세요." "맞다! 아가씨 화장실 때문에 왔지?" 구름 아줌마는 당부 또 당부를 했어요. "저어기, 빗자루 든 말라깽이 영감 눈사람말구, 빨간 고무손 뚱뚱보 눈사람 보 이지? 꼭 저 총각 눈사람 앞이야. 뒤가 아니고 앞! 알았지? 꼭 앞이야." 반달 아가씨는 똥이 비적비적 나오려는 엉덩이를 요리조리 꼬며 뛰었어요. 축구장 두 곳을 어떻게 지났는지 몰라요. 외로 선 팽나무도 지났어요. 눈을 둘러쓴 운동 기구들이 공터를 지키고 있어요. 운동 기구들 틈에 말라깽이 영감 눈사람이 "받들어, 총!" 하는 군병의 자세로 빗자루를 든 채 서 있어요.  "이 눈사람 말고, 저 뚱보 눈사람이라고 했지? 아~ 도저히 못 참겠다! 끄응~" 반달 아가씨는 꿈에도 몰랐어요. 자신의 새하얀 엉덩이를 누군가 훔쳐 보고 있다는 것을요.   나는 나는 뚱보 눈사람 총각 반달 아가씨 그대는 엉덩이도 예쁘오 엉덩이만큼 마음씨는 더욱 고울 반달 아가씨 그대 내 신부가 되어 주오 오오 그대 아름다운 반달 아가씨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어요. 치마를 내리기엔 이미 늦어 버렸어요. 다른 데도 아니고 엉덩이를 들켜버렸으니 꼼짝없이 뚱보 눈사람과 결혼할 수밖에요.   나는 나는 뚱보 눈사람 총각 반달 아가씨 그대는 엉덩이도 예쁘오  뚱보 눈사람 총각은 더는 부끄럼쟁이가 아니었어요. 눈사람 총각이 부르는 우렁찬 노래가 강변 마을을 쩡쩡 울리고 다녔어요. 다시 눈이 내리기 시작했어요. 하얀 눈송이가 뚱보 눈사람 총각과 반달 아가씨의 가슴에도 송이송이 내려앉았어요. 글 : 김혜경 그림 : 김근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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