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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남사…작천정…망부석…치술령 물길따라 역사가 숨쉰다
[zoom-in 태화강] 2. 역사가 살아 숨쉬는 태화강(하)
2007년 05월 27일 (일) 21:20:39


 두서면 내와리 백운산 기슭 탑골샘에서 시작된 대곡천 물줄기는 반구대 암각화, 천전리각석 등의 유적을 남겼다면, 가지산 쌀바위에서 시작된 물줄기는 천년고찰 석남사를 남겼다. 석남사는 가지산 혹은 석안산이라고 하는 산의 남쪽에 있다하여 석남사라 하였다는 이야기가 전해오고 있다.

 지금으로부터 1200여년 전 신라 헌덕왕 16년(824년) 도의국사에 의해 창건한 석남사는 고려 초기 혜거국사가 넓혀 세웠으나 임진왜란 때 불에 타 나중에 화덕(華德)이 다시 지은 절이다.
 절 경내에는 석남사영산전(보물 제823호), 도의국사의 부도(보물 369호), 3층 석가사리탑, 3층석탑(지방유형문화재 제5호), 석남사 수조(문화재자료 제4호)등의 유물이 보존되어 있다.
 석남사가 간직한 보물인 영산전은 석가모니불상과 그 생애를 여덟 가지로 나누어 그린 그림을 모신 곳으로 지은 시기는 정확하게 알 수 없으나 여러 차례 수리를 거쳤다.
 지금 있는 건물은 조선시대 건축물이다. 규모는 앞면 3칸·옆면 2칸이며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을 한 팔작지붕이다.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장식하여 만든 공포가 기둥 위와 기둥 사이에도 있는 다포 양식인데, 밖으로 뻗쳐 나온 재료의 끝이 짧고 약간 밑으로 처진 곡선을 이루고 있다. 이는 조선 초기 건물에 공통으로 나타나는 기법이라고 할 수 있다.
 튼튼하게 균형 잡힌 모습을 이루고 있으며 조선 초기에서 중기 사이의 건축 양식을 갖추고 있다는 점에서 건축사 연구에 귀중한 자료로 평가받고 있다
 석남사의 보물중의 보물은 석남사 3층 석탑이다.
 이 석탑은 석남사 동북쪽 언덕의 넓은 대지에 자리잡고 있으며, 석남사를 세운 도의국사의 사리탑으로 불려왔다. 전체적으로 8각의 형태을 취하고 있으며, 8각의 바닥돌 위에 기단부와 탑신을 놓은 모습이다. 기단부의 아래받침돌은 8각으로 사자와 구름을 도드라지게 새겨 놓았다.
 북모양을 하고 있는 가운데받침돌에는 상·하·좌·우에서 안쪽을 향하여 낮게 솟은 꽃모양의 안상을 새겼고, 그 안으로 꽃모양의 띠를 둘렀다. 윗받침돌은 연꽃을 새겨 탑신을 받치도록 하였다. 탑신은 모서리에 기둥 모양을 얇게 새겼고, 앞·뒷면에는 문짝 모양의 조각을 두었는데, 그 중 앞면에만 자물쇠가 새겨져 있다. 문의 양 옆으로 신장입상이 배치되어 있다. 지붕돌은 추녀가 짧고 서까래와 기왓골이 상세히 표현되었으며, 지붕 꼭대기에는 머리장식이 차례대로 얹혀져 있다.
 전체적으로 넓이에 비하여 높이가 높은 부재로 구성되어 길쭉해 보이며, 바닥돌의 폭이 좁아 안정감이 느껴지지 않는다. 아래받침돌의 구름무늬나 탑신의 신장상이 형식적으로 표현되었고, 특히 가운데받침돌의 안상조각에서 시대가 내려옴을 볼 수 있으나 각 부분이 완전히 보존된 아름다운 작품이다.
 1962년 해체, 수리할 당시 기단부의 가운데받침돌에서 사리장치를 두었던 공간이 확인되었으나 사리장치는 남은 것이 없었다.
 석남사의 옆으로는 울산시민들이 여름철 휴식처로 찾고 있는 옥류동천이 흐르고, 이 물줄기는 상북면과 안양읍내를 거쳐 곧장 울산시가지로 흐른다.
 신불산, 간월산에서 시작한 작괘천은 작천정을 남겼다. 작괘천은 해발 1,083m의 간월산에서 흘러 등억리를 지나면서 작천정 앞을 흐른다. 작괘천은 물이 맑고 풍경이 뛰어나서 일찍 언양 지방의 위안처가 되어 왔다. 이 작천정이란 이름은 수석이 청정 기이하여 마치 술잔을 주렁주렁 걸어 놓은 듯하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 한다. 입구에 마련된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작천정으로 들어서면 계곡 좌우에 우람하고도 기괴한 암석들이 크고 작게 자리잡고 있어 장관을 이루고 있다. 계곡에는 닳고 닳은 반석위로 수정같이 맑디 맑은 옥수가 얄팍하게 깔려 미끄러져 흐른다.
 작천정은 조선조 세종 20년에 지방의 학자들이 세종을 생각하며 지었다고 한다. 작천정은 주변의 절경속에 깨끗한 물과 흰 바위가 잘 조화되어 하나의 선경지대를 이루고 있다. 그래서 작천정은 예로부터 많은 시인 묵객들이 찾아와 시를 짓고, 풍류를 즐겼다한다. 이곳은 3.1운동의 계획을 세우던 곳이기도 하고, 임진왜란 때는 많은 의병들이 순국을 하기도 했으며, 또한 울산지방에 천도교, 천주교가 들어올 때 노천교회의 역할을 한 곳이기도 하다. 이렇게 볼 때 이곳은 조국과 민족을 구하려는 우국지사들의 보금자리였는가 하면, 외래 종교들의 정착을 위한 싹을 틔운 곳이기도 하고, 시인 묵객들에 의해 이 고장 학문을 중흥시킨 곳이기도 한 것이다.
 망부석과 치술령의 전설이 서린 국수봉에서 시작해 범서읍 중리를 거쳐 선바위 상류의 태화강으로 유입되는 지천에도 수많은 전설이 깃들어 있다.
 치술령은 조망도 특별하다. 남북으로 뻗은 능선의 좌우로 아름다운 산하가 펼쳐지는데다 정상주변에서는 삼태봉 너머로 손에 잡힐 듯 들어오는 잿빛 동해바다의 싱그러움이 닫힌 마음을 열어주기 때문이다.
 치술령에는 신라 충신 박제상과 그의 부인에 관한 애절한 전설이 있어,'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 전해 내려오고 있다.
 박제상은 눌지왕 즉위 후 고구려와 일본에 볼모로 잡혀 있던 두 왕제를 구출코자, 먼저 고구려에 가 있는 복호를 구출해 귀국시킨 후, 일본으로 건너가 미사흔을 구출해 내었다. 그러나 정작 자신은 일본에 잡혀 심한 고문 끝에 소사 당했다.
 이때 박제상의 김씨부인은 두 딸을 데리고 치술령에 올라 일본에 간 남편을 기다리다 죽으니 그 몸은 돌로 변하여 망부석이 되고, 그 영혼은 날아가 숨었는데 그 곳을 은을암이라 한다.
 은을암에 시작된 물줄기는 척과천으로 서사, 다운지역을 거친 후 태화강으로 따로 유입된다.  강정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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