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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다른 사람들을 무엇으로 평가하는가. 나 자신도 알기 어려운데 타인을 알기란 더더욱 어렵다. 그러므로 그 사람을 재단하는 것이 무리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현대 사회에서는 민주주의의 체제인 선거로 인해 어쩔 수 없이 사람을 평가하게 된다. 대통령을 뽑는 일만 해도 그렇다. 지난 선거에서도 본 바와 같이 당선자가 유권자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한 행동으로 실망하여 자신의 손가락을 잘라서 바다에 버려야 하느니 어쩌니 하고 민간에 떠도는 말들이 흉흉했었다. 그것은 바로 자기 자신이 사람을 잘못 판단했다는 자조적(自嘲的) 말일 것이다. 물론 그들이라고 왜 잘하고자 하는 마음이 없었겠는가. 인간은 연기적(緣起的)이라 초심이 흩어져 변하니 그렇게 지탄을 받게 되었다하더라도 그것은 본인의 책임인 것이다.
 부처님께서도 "왕을 잘 못 만나면 백성들이 삼재칠난(三災七難)을 만난다."고 말씀하셨다. 차기 대통령은 올바른 판단력으로 잘 선택하여 바른 심성을 지니고 매사에 능력 있고 영도력이 있는 자가 선택되어져야 할 것인데 근자의 상황을 보면 어려울 것 같아 가슴이 서늘해진다. 선거의 맹점은 여론몰이를 잘 하는 쪽이 유리하다는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앞에서도 언급한 것과 같이 그 사람을 바로 알기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천태대사의 일념삼천설(一念三千說)이 있다. 사람들의 한 생각에 삼천 가지의 일이 벌어질 수 있다는 설이다. 이것은 부처님께서 법화경에서 밝히신, 인간은 태어날 때 기본적으로 '십여시(十如是)' 즉 열 가지의 조건을 갖춘다는 말씀에다가 다른 말씀을 적용하여 제창한 것이다. 일념에 삼천 가지가 담긴다는 것은 인간의 잠재력이 그만큼 무한하다는 것이고, 한편으로 사람은 기계처럼 고정불변이 아니라 물처럼 변한다는 말이기도 하다.
 따라서 인간은 자기 마음 씀에 따라 십계(十界)인, 아래로 지옥에서 위로 불계(佛界)까지의 행동을 할 수 있는 존재다. 속된 말로 못할 짓이 없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폴레옹의 말처럼 '불가능은 없다.' 지옥 축생의 마음으로 이기적인 삶을 살 것인가, 불보살의 마음으로 이웃에게 자비를 베풀면서 창조적인 삶을 살 것인가는 오로지 본인의 의지에 달린 것이다. 과거 한때에는 비록 잘못을 저질렀다 하더라도 깊이 반성하여 지금이후부터 불보살이 될 수 있는 존재가 또한 인간인 것이다. 반대로 한 때는 옳고 좋은 일을 했더라도 그것으로 교만하여 지옥의 죄인으로 떨어지기도 한다. 그러므로 부처님께서는 좋은 것이건 나쁜 것이 건 과거의 꿈에 얽매이지 말고 깨어 현재에 충실할 것을 당부하신 것이다.
 과거의 행적을 전혀 도외시할 수는 없지만 현재 지금이 더 중요한 것이다. 현재가 중요하다는 것은 미래가 더욱 중요하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우리들이 명심할 것은 그가 얼마나 진리에 가까운 밝은 마음을 지니고 있는가를 측정하는 일이다. 탐욕과 분노와 어리석음을 극복할 수 있는 자질을 제대로 갖추었나를 철저히 검증하여 그런 사람을 이번에는 반드시 대통령으로 만들어야 할 것이다. 그러려면 국민 모두가 다시는 여론몰이에 휘둘리지 말고, 눈을 똑바로 뜨고 선거에 임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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