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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성의 상징터에 새긴 다산과 풍요
[태화강 100리, 그 시작부터 동해까지] 2.암각화 전시관 ~ 천전리 각석
2010년 01월 26일 (화) 21:35:09 김정규 kjk@ulsanpress.net

 

울주군 두동면 천전리 각석. 그 각석을 휘감아 돌던 대곡천도 차가운 겨울바람에 얼어 붙었다.

 

   스산한 겨울의 정점에서 찾은 천전리
   황량한 세월에 대곡천도 말을 잃었지만
   선사인 손끝에서 다시 살아난 바위는
   이제 세상을 향해 걸음을 내딛는다

 

어떤 기원이 있다. 그것은 신석기와 청동기의 시대를 아우르는
오랜 시간이 만들었고 많은 사람의 소박한 염원의 결정체다.
이 땅의 문화이고 울산의 역사다.
천전리 각석에 그 많은 기원이 새겨져 있다.
반구대 암각화가 사냥 예술의 절정이라면 천전리 각석은
다산과 풍요의 정점이다. '태화강 100리, 그 시작부터 동해까지'
두 번째 여정은 그 정점을 향해 가는 길이다.

 

    #대곡천을 거슬러 오르는 호젓한 길


 

 언양읍 대곡리 반구대 암각화와 한실마을 들어가는 길 앞에도 앙상한 가지만 남았다. 나무에서 계절을 읽는다. 낙엽 떨어낸 할미의 손가락처럼 마른 가지가 잔바람에도 흔들리는 지금은 겨울이다. 꽃 피고 열매 맺은 영화의 시간은 지난 계절의 화려한 추억일 뿐이다. 현실은 혹독한 추위를 이겨내야 하는 생존이 우선이다.
 반구대 암각화에서 천전리 각석까지는 대곡천을 따라 거슬러 오르는 길이다. 2㎞ 남짓이지만 자신을 돌아보기 좋은 계절에 어울릴 만큼 호젓하다.


 길은 대곡천을 따라 오래된 황톳빛 포장길로 연결된다. 숲길은 그리 길지 않지만 정갈하고 차분해 생각을 깊게 만든다. 사색은 깊음의 영역이지 길이의 문제는 아니지 않던가.
 반구대 암각화와 더불어 선사암각화군으로 유네스코에 세계문화유산 잠정목록으로 등재 신청된 지 한 달여. 사람들의 관심은 뜨거웠지만 천전리 각석으로 가는 길은 텅 비어 있다. 아름답다. 빔으로써 더욱 아름다운 것은 너무 많은 사람 틈바구니에 얽혀 산 도시인의 푸념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빈 숲길은 고즈넉하고 청량해 몸이 먼저 반응하고 스스로 움직인다.
 숲의 공기는 건조하지 않고 적당해 호흡하기 편하고 몸을 놀리기 좋다.
 
 #수천 년 전 물의 흔적이 만든 대곡천


 한겨울에도 여전히 제 색을 유지하는 소나무 숲을 거뭇한 절벽이 받치고 서 있다. 그 옛날 흘렀을 물이 만든 흔적들이다. 그 시간은 인간의 손에 잡히지 않고, 잡을 수도 없다.
 그러나 물은 부드럽거나 혹은 거친 느낌을 바위에 고스란히 남기고 대양으로 나아갔다. 꽤 오래전엔 수위 높은 격랑의 물살이 흙을 걷어내고 산의 허리를 자로 지른 모양이다. 이젠 대곡댐에 갇힌 탓에 그 물줄기를 찾아보긴 어렵다. 다른 시간에 만나는 같은 공간의 정적은 이렇게 다르다.


 오래된 포장길이 끝나면 석가산 낮은 구릉을 따라 산길이 이어진다. 산길은 대곡천을 왼쪽으로 끼고 완만한 경사로다. 문득 개 짖는 소리가 요란하다. 대곡천 너머 갈대밭을 헤집고 다니는 소리가 발길을 따라온다. 풀어놓은 개들의 소란함은 달려들까 하는 두려움을 안겨준다. 능선을 올라서 보니 개들은 물을 건너지 못하고 인기척을 좇아 우왕좌왕 바쁘다. 계곡을 쩌렁쩌렁하게 울리는 위협적인 개들의 방치가 미덥지 못하다.
 개들의 소란에 놀란 가슴을 진정하고 발길을 재촉하면 패고 무너진 구간마다 단장한 나무데크로 마음을 진정시킨다. 걸음은 가볍고 마음은 길이 반갑다. 이파리를 버린 활엽수 사이로 길은 걷기 좋게 이어지고 저 멀리 발아래 천전리 각석이 모습을 드러낸다.


 #국보 입구의 알 수 없는 허전함


 

 대곡천 맞은 편 물가에 선 각석은 쪼아 빚은 듯한 바위 면에 새겨진 선사의 흔적이다. 오래된 바위그림은 낮게 엎드린 채 겨울 햇살 아래 졸고 있다. 능선 바로 건너편에 각석을 두고도 한참을 돌아 대곡천으로 내려섰다. 각석으로 가는 길은 잠수교를 지나 요양원 앞길을 돌아내려가야 한다.
 어쩌면 세계의 유산이 될 지도 모를 국보의 입구치고는 아직 허술하다. 각석 안쪽에 있는 요양원과 연계된 듯한 낡은 매점이 그렇고, 조악한 공예품으로 내건 이상한 장식물들 때문에 선뜻 발길을 재촉하지 못한다. 꺼려지는 발걸음에 '사유지 출입금지'라는 경고성 문구가 또 발목을 잡는다. 순간적으로 이 길이 맞긴 한 것인가 하는 의문이 각석을 알리는 표지판보다 먼저 다가온다.


 그러나 대곡천으로 내려서면 넓은 평지에 가지런하게 앉아있는 각석의 풍채에 오던 길의 조악함은 금세 잊어버리게 된다.
 1970년 동국대 박물관 조사단이 발견했다. 가로 10m, 세로 3m의 앞으로 숙여진 듯한 바위 면에 상고시대로부터 신라 말기에 이르기까지 많은 기하학적인 문양과 명문(銘文) 120여 점을 새겼다. 1973년 국보 제147호로 지정됐다.
 
 #자연이 만든 절묘한 음양의 조화


 

 천전리 각석은 석가산 동쪽 돌출된 곳에 자리 잡고 있다. 그 앞을 대곡천이 휘감아 돌고 맞은편은 꼭 그만큼 함몰돼 있다. 그 도드라짐은 석가산 정상에서 보면 확연하다. 그 돌출된 부분은 남성의 상징이다. 각석은 다산과 풍요의 기원을 담고 있다. 그들의 기원은 대부분 여성의 음부를 새기며 염원했다. 그 바위에 새길 만큼 절박한 기원의 바탕에 남성의 상징이 존재한다. 각석이 위치한 곳이 남성의 끝부분이고 대곡천 너머는 자연스럽게 여성의 상징이 되는 음양의 조화가 절묘한 지형이다. 남성의 상징에 자손 번성을 위한 기원이 모이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인지도 모른다.


 그들이 새긴 문양은 구상을 거쳐 추상으로 넘어왔다. 구상은 가깝고 사실적이고 추상은 너무 멀거나 아득하다. 간결하면서도 정확한 구상의 묘사는 긴 이중 타원형이다. 각 진 마름모의 중첩으로 발전한 추상의 기호들은 사방연속성을 가진다. 노동의 강도를 줄이기 위한 지혜의 산물이다. 
 대곡박물관 양명학 관장은 "가장 순수한 인간의 염원이 집약된 흔적이다. 후일 돌부처의 코를 갈아 마시며 아이 갖기를 염원하던 바람으로 발전한 민간신앙과 다를 바 없는 원시의 의식이라고 볼 수 있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그 옛날, 음양의 조화가 이뤄진 기막힌 곳을 찾아낸 그들의 혜안이 놀랍다.
 
 #강이 품은 역사와 문화 그리고 가야할 길

 


 각석을 등지고 대곡천을 바라본다. 암반처럼 넓고 편평한 바위 위에 공룡 발자국이 널려 있다. 전기 백악기 것으로 추정되는 공룡들은 크고 작은 많은 족적을 남긴 채 사라져 갔다. 그 옛날 손끝에 기원을 담아 새긴 그들의 의식은 각석에 남았고, 천지를 진동하며 세상을 지배하던 덩치 큰 동물은 발자국을 남겼다. 시간은 모든 것을 소멸시키지만 몇몇 것들은 남아 세계의 유산이 됐다.
 야윈 겨울 햇살이 꽁꽁 언 대곡천의 몸을 풀어내기에는 아직 역부족이다. 계곡을 휘돌아 내려오는 바람이 차갑다. 그러나 아직은 걸어야 할 길이 많다.


 바람 잔잔한 주말, 태화강을 따라 걷는 발길은 한실마을을 거쳐 사연호 언저리를 돌아 울산과학기술대로 이어질 것이다.
 글= 김정규기자 kjk@ 사진= 김정훈기자 idacoy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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