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코스프레나 비보이, 대중가요가수등 대중문화에만 열광하는 학생들에게 고갱, 달리의 전시회나 클래식음악회는 저 먼 나라 얘기다. 학교에서 하는 의무적인 단체관람이 아닌 이상 그런 전시회나 음악회는 평생 한 번도 경험 할 수 없는 일이다. 공부를 위해 접했던 고전문학 작품들도 학창시절이 지나면 잊고 살아간다. 물론 이러한 현상을 학생들의 탓만으로 치부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고전문화를 똑같이 기피하는 기성세대와 문화계에 종사하는 이들의 일반인에 대한 배려의 소홀함이 고전문화를 기피하는 환경을 조성하는데 일조하는 것이다.
 우리에게 고전문화가 귀중한 이유는 한때의 시류를 타다가 없어지는 것들이 아니라 오랜 세월을 거쳐 살아남은 검증받은 문화의 유산이기 때문이다. 고전이 우리의 시대가 아닌 시대를 그린다 할지라도 그 시대의 그림, 소설, 시, 음악을 통해 우리는 우리의 앞선 세대와 호흡하고 불변하는 진리를 그들의 작품을 통해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당대에는 대중적 인기를 누렸다 할지라도 작품으로서 가치가 떨어지는 것들이 오늘 우리의 손으로 전해지는 일은 없다. 그것이 문학이든, 음악이든, 그림이든. 우리는 글로벌한 시대를 산다고 이야기한다. 그래서 자국어 하나를 아는 것으로는 글로벌한 시대와 맞지 않아 적어도 외국어 하나쯤은 알아야하는 시대에 산다. 이제는 외국을 대한민국을 누비듯 다니는 사람도 많아졌다. 지금이야말로 고전문화의 힘이 발휘될 때이다. 프랑스인과 와인을 나누며, 르느와르를 얘기할 수 있다면, 드뷔시를 이야기 할 수 있다면, 그날의 비즈니스는 만사형통일 것이다. 국제올림픽위원회 부위원장을 지낸 김운용씨가 미국 대사시절 프로에 가까운 그의 피아노연주 실력의 덕을 톡톡히 보았다는 이야기는 아주 유명하다. 이런 종류의 이야기는 세계가 하나 되면서 더더욱 많아지는 이야기다. 그 나라의 문화의 이해로 비즈니스가 해결되었다는 얘기는 반대로 우리의 우수한 고전 문화가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대단한 써포터즈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우리는 어떻게 고전 문화와 친해질 수 있을까? 우리는 오래 노출되는 환경에 익숙하다. 쉬운 예로 처음 미니가 등장 할 때는 입는 사람도 어색하지만 너도 나도 입으면 처음에 인상을 썼던 어른들도 그런가 보다 한다. 즉 어떠한 상황에 얼마나 노출되는가가 그 문화와 익숙해지는 지름길이다. 10년 전 필자가 귀국을 한 당시만 해도 스키니 진은 이상한 패션으로 취급을 받았다. 당시 한국은 통바지가 유행하고 있을 때였으니 내가 입은 스키니진을 모두 유행에 덜떨어진 취급을 했다. 그러나 지금은 어떠한가? 수많은 스타와 사람들이 입음으로 인해 익숙한 패션으로 다가오는 것 정도가 아니라 너도 나도 입고 싶은 아이템이 되었다.
 이젠 대중문화만이 아닌 고전문화도 익숙한 환경이 되도록 노력해보자. 고전문화 이벤트에도 관심을 가지고 시간을 투자해 보자. 명화의 전시회나 클래식 음악회, 고전문학 작품에 보다 많은 관심을 기우려 보자. 그냥 지루 할 것 같은 음악회나 전시회를 가기 전 우리의 자랑인 인터넷을 통해 작가의 일생이나 작품의 설명을 한번 쯤 읽고 간다면, 한 번쯤 인터넷을 통해 그 음악을 듣고 간다면, 우리는 훨씬 더 쉽게 고전문화들과 가까워 질 수 있을 것이다. 적어도 이방인의 느낌은 절대로 아닐 것이며, 이렇게 조금씩 고전문화와 친해져 갈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고전문화의 습득은 우리 자신의 삶의 질을 풍부하게 할뿐만 아니라 개인의 경쟁력 나아가 나라의 경쟁력 또한 드높이는 든든한  우리의 써포터즈가 될 것이다.
저작권자 © 울산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