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고독의 시대'에 누군가가 말을 걸어온다는 것은 반가운 일이다. 영화 '밀양'이 기독교에 말을 걸어왔다고 한다. 물론 말을 걸어오는 사람에 따라서는 시비를 걸어오기도 해서 기독교인 사이에서도 반기독교적 영화라는 평가와 함께 기독교의 중심주제인 '구원과 용서'라고 하는 묵직한 신학적 주제를 비교적 현실감 있게 다룬 수작이라는 상반된 평가가 있는 것이 사실이다.
 필자도 얼마 전에 교인들의 예매로 함께 관람한 적이 있다. 전반부에서는 신애(전도연)가 남편의 죽음이라는 커다란 상처를 안고 아들을 데리고 남편의 고향인 밀양(密陽,Secret Sunshine)으로 내려온다. '비밀스런 빛'이라는 밀양의 어의가 암시하듯 이 영화의 시작부터 마지막 장면까지 주인공 신애의 내면과 변화 사이에서 알 수 없는 갈등과 갈망이 풀리지 않고 꼬여간다.
 영화의 배경이 되는 교회와 구역모임과 심방 그리고 길거리 찬양 등은 다소 영화적인 요소가 가미되었지만 예전의 영화들에 비해 거의 사실적으로 묘사하려고 애쓴 흔적이 보인다. 남편에 이어 아들까지 양 날개를 다 잃은 상처 받은 한 영혼이 몸부림치는 모습은 겪어 본 사람이 아니고는 알 수 없을 것이다. 영화 외에는 외도하지 않았던 전도연 특유의 표정과 몸짓이 그 한(恨)을 실감나게 풀어내고 있다.
 앞서 다분히 기독교적이던 영화는 중반을 넘으면서 유턴하여 적대적으로 향한다. 예배를 방해하고, 신앙인의 이율배반(二律背反)적인 삶의 모순을 드러내고, 구원의 확신이 불완전하고 감정적인 자기암시였던 것처럼 투영되면서 신앙을 방해하고 신께 저항하는 모습으로 나타난다.
 이 영화의 클라이막스는 삶의 고통을 신앙으로 극복한 신애가 자기 아들을 유괴해서 죽인 살인범을 면회하고 용서를 전하려는 상황 가운데 벌어진 심리적, 신앙적 갈등과 회의이다. 자신은 은혜를 받고 하나님의 사랑으로 용서해 주려고 교도소까지 갔으나 막상 살인범이 이미 하나님께 용서 받아서 마음이 평안하고 기쁘게 살아간다는 말에 복장이 터진다. 왜 피해자인 내가 용서하기도 전에 살인범 자신이 신(神)으로부터 용서 받을 수 있느냐는 것이다. 여기서 분노하며 절규하는 '한 인간' 일 수 밖에 없음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꼬집어 말하자면 이 영화는 기독교의 용서라는 개념을 오해했다. 성경 마태복음 5장 23절과 24절에 보면 "그러므로 예물을 제단에 드리다가 거기서 네 형제에게 원망 들을만한 일이 있는 줄 생각나거든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고 했다.
 죄의 용서는 궁극적으로는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이루어지는 것이지만, 상대방과의 관계를 간과(看過)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용서의 주체는 하나님이시지만, 대인관계의 올바름을 요구하고 있다. 주인공이나 살인범이나 반쪽짜리 용서를 했던 것이다. 용서는 용서 받지 못하는 사람보다 용서하지 못하는 사람의 마음을 더 힘들게 한다. 주기도문에도 보면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마태복음 6장 12절)"라는 대목의 용서에 관한 고백의 기도가 나온다. 우리가 사람의 과실을 용서하지 아니하면 천부께서도 너희 과실을 용서하지 않겠다는 단호한 말씀이다.
 누군가에게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받아본 사람이라면 주인공의 심정에 공감할 것이다. 이론적으로나 남의 일일 때에는 객관적이고 관대할 수 있으나 그것이 내 일일 때에는 '내 속의 내'가 마치 지렁이처럼(성경 이사야 41장 14절에는 야곱을 지렁이 같다고 하심) 꿈틀대고 종교적 몸살을 할 수 밖에 없는 약한 자라는 것이다.
 그런가 하면 손양원 목사는 자신의 아들을 죽인 공산당을 자기 양아들로 삼기도 했고, 하나님은 자기 아들을 십자가로 내 몬 범죄 한 인간을 조건 없는 용서로 자신의 양아들을 삼으신 것이다. 이것이 아가페의 사랑이요 하나님의 사랑이다. 완전한 용서, 완전한 사랑은 신에게 속한 것이다. 용서는 남을 보기 이전에 추악한 자신을 온전히 알 때에만 가능한 것이다. 신(神)의 성품에 이르려 하나 다가갈 수 없는 인간의 한계. 이것이 영화 '밀양'이 우리에게 던져주는 과제요 의미이다.
저작권자 © 울산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