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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짜 이야기가 가장 많이 나오는 분야는 단연 미술계다. 가짜 골동품부터 유명화가들의 위작이나 모작 등 미술작품의 가짜논란은 언제나 세간의 화제가 된다. 미켈란젤로도 젊은 시절 가짜 골동품으로 추기경을 속인 일화가 있을 정도다. 진짜는 언제나 하나일 뿐이다. 역으로 생각하면 이 같은 희소성 때문에 가짜가 나오는 것일 수도 있다. 특히 우리나라처럼 학력이나 실력보다 학벌을 중시하는 사회구조는 가짜가 판을 칠 만하다.
고전소설 옹고집전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오만불손한 옹고집을 응징하려고 고승이 허수아비로 가짜 옹고집을 만들어 진짜 옹고집을 혼쭐 낸 이야기 속에는 삶의 교훈도 있지만 가짜가 판을 치는 조선후기 사회에 대한 신랄한 풍자도 함의되어 있다. 본질보다 외양을 중시하는 사회는 현란하다. 대도시가 현란한 네온으로 밤을 밝히지만 정작 사람들은 도심에서 될 수 있는 대로 멀리 떨어진 한적한 곳에서 가족과 밤을 보내고 싶어 한다.
음악의 나라 오스트리아도 과거에는 음악가의 실력보다 누구의 제자인가에 따라 출세의 길이 갈렸다. 이 때문에 피아니스트인 리스트가 가짜 제자를 진짜 제자로 받아들인 일화가 있다. 노년에 리스트는 오스트리아의 한 작은 도시에서 제자를 사칭하며 돈을 벌어온 피아니스트를 만났다. 가짜 제자는 스스로 잘못을 고백하고 생계 때문에 그의 이름을 빌렸다며 용서를 구했다. 리스트는 가짜를 벌하는 대신 연주를 하게 했다. 그의 연주를 듣고 난 리스트는 그녀를 다음날 연주회에서 자신의 제자로 소개했다. 이 일화는 리스트가 진짜 파아니스트를 외면하고 명성만을 좇는 오스트리아 음악계에 던진 질책이었다.
가짜 논란의 핵심은 가짜 학위로 교수가 되고, 국제적 미술행사의 총감독이 됐다는 사실이 아니다. 그 것은 한 개인의 도덕성과 관련한 문제다. 우리 사회는 이미 황우석 논란을 통해 가짜 논란에 면역성을 갖고 있다. 검증장치의 부재나 학벌위주 사회의 병폐, 한탕주의나 실적주의의 반성 등 '신정아 논란'은 그 당시와 조금도 달라진 것이 없다. 결국 우리는 가짜 논란이 있을 때마다 흥분만 하는 감정적 반응에 길들여진 셈이다. 이번 가짜 학위논란을 통해 우리가 잊지 말아야하는 것은 진짜가 진짜답지 못할 때 오히려 가짜가 판을 치는 법이라는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