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마음이란 무엇일까요. 마음은 세상사람들을 움직입니다. 세상사람들을 행복하게도 하고 괴롭게도 합니다. 마음은 보고 만질 수도 없고 크기도 알 수 없습니다. 그래서 더 궁금해집니다.
 그렇다면 마음은 전혀 알 수 없는 것일까요. 한평생을 이 마음으로 이승에서 살다가, 이 마음으로 저승에도 간다는데 어렴풋이라도 알고 살아야 하지 않을까요.
 고요한 호수처럼 일 평생을 평온하게 보낼 수 있는 지혜와 세상의 원리는 '마음에서 비롯 됩니다. 그래서 세상 모든 일은 자기 자신에서 부터 비롯됩니다.
 하루의 시작은 동녘 하늘에 해가 떠오름으로 비롯되지만, 사람 개개인으로 볼때는 자신이 잠에서 깨어나 마음의 문을 여는 순간부터 시작됩니다.
 아니 땐 굴뚝에 연기가 안나듯이 세상에 우연이란 없는 법입니다.
 세상은 인연의 고리로 연결돼 있습니다. 개개인의 마음 씀씀이에 따라 세상은 변화되어 갑니다.
 자기부터 다스리고 인도유학을 떠난 스님이 있습니다.
 당나라 현장 스님은 당시 인도로 유학 길을 떠났습니다. 길이 험준한데다 사방에서 맹수가 나타나 길을 막았고 운무로 길을 잃기도 했습니다. 사막지대라 물이 없어 죽을 고비도 겪었으며 전진할 수 없을 때도 한두번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구도의 뜻을 버리지 않고 전진하다가 한 곳에 다다랐습니다.
 폐사가 있어 들어가보니 한 노승이 창병에 걸려 피고름이 옷에 물들었고 악취가 코를 찔렀습니다.
 현장스님은 정성으로 음식을 준비하는 등 간호하기를 부처님 대하듯 했습니다. 노승은 현장 스님의 지성에 감동해 날마다 범어로 불경을 읽어줘 전수했습니다.
 현장 스님은 이것을 매일 길을 가면서 21번씩 외웠습니다. 그러자니 이후로 도로가 평탄해지고 맹수가 나타나지 않았으며 사막에 물이 솟기까지 했습니다.
 한참 뒤 그 곳을 다시 찾아가가보니 뜻밖에도 자신이 중국 폐사에서 간호했던 노승이 있었습니다.
 반가이 인사를 하자 노승은 '나는 관세음보살이다'라고 하면서 사라지는 것이었습니다.
 그후 현장 스님은 거기에서 16년간 650여권의 경전과 심경을 가지고 귀국, 범어로 외운 불경을 한문으로 번역했다고 합니다.
 그것이 오늘날 절에서 독송하는 반야심경입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스님으로서 도를 구하고자 그 어려움을 참고 견디면 마침내 자신을 다스릴 수 있게 된다는 것을 알수 있습니다.
 자신을 다스릴 수 있는 사람은 어려움을 보고도 못본채 못하고 도움을 줍니다.
 반면 자신을 다스리지 못하는 자는 남의 어려움을 듣고 이해는 할지 몰라행동으로 은혜를 베풀지 못합니다. 은혜를 베푸는 행위는 남의 아픔을 나의 아픔으로 아는 자만이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속담에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도 곱다 는 말이 있듯 매사 긍정적인 마음이면 세상의 만물의 실체를 밝게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이야 말로 자기를 잘 다스리는 사람들이 세상 사람들에게 보일 수 있는 재능입니다.
 살아 생전에 남보다 잘 사는 길이 무엇이며 죽어서는 어떤 곳에서 태어나 살게 되는가를 알려 주는 재능 말입니다.
 밤하늘에 달이 있으나 검정에 물들지 않고 바닷물엔 물고기가 헤엄치나 푸르름에 물들지 않습니다.
 우리 인간도 세속에 있지만 육신에 물들지 않고자 합니다.
 마지막으로 스스로를 다스리는데 도움이 될만한 고려시대 나옹선사의 '청산은 나를 보고'를 옮겨 적으며 글을 마칩니다.
 "청산은 나를 보고 말없이 살라 하고/ 창공은 나를 보고 티없이 살라 하네/ 탐욕도 벗어놓고 성냄도 벗어 놓고/ 물처럼 바람처럼 살다가 가라 하네"
저작권자 © 울산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