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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7월8일 참으로 안타깝고 부끄러운 사건이 터졌다. 잘살아 보겠다고 국제결혼을 통해 한국에 시집을 온 스무살의 베트남 여성 탓티황옥씨는 신방을 꾸민지 채 1주일 만에 싸늘한 주검이 되고 말았다.
 특히 그녀의 고향인 껀터 시에서만 같은 사건이 세 번째로 베트남 여론이 심상치 않다고 한다.
 TV영상을 통해 오열하는 탓티황옥씨의 어머님 모습을 보면서 대한민국의 국민으로서 부끄럽고, 순간 분노가 치밀었다.
 과연 탓티황옥씨는 누가 죽였는가? 물론 정신병을 앓고 있는 남편 장씨가 직접적인 범인이다. 그러나 남편 장씨의 이야기는 다르다. 경찰조사에서 장씨는 영화 '아바타'를 보고 범행을 저질렀다고 하였다. 즉 자신은 아바타일 뿐이며 누군가 아바타인 자신을 조정했다고 진술했다.


 조사결과 그는 10년 넘게 정신과 치료를 받으며 약물을 복용해오던 정신분열증 환자로 아무 이유 없이 친어머니를 폭행해 경찰에 입건되기도 할 정도로 중증 환자였다.
 50살이 되도록 장가를 못간 아들이 안타까워 정신병력에도 불구하고 국제결혼 중개소를 찾은 장씨의 어머니, 일견(一見)해도 뭔가 이상해 보였을 법한데도 전혀 눈치를 채지 못했다는 국제결혼 중매업체의 이윤추구, 베트남 정부가 요구하는 남편의 건강검진을 정신병력도 찾지 못할 정도로 간단하게 끝내버린 의료기관···. 탓티황옥씨의 죽음을 둘러싼 풍경 속 주인공들이다. 3년전 여수출입국관리소의 화재사건으로 10여명의 외국인노동자 사망, 미등록외국인노동자들의 목숨을 건 탈주. 대한민국에 돈 벌러 올 때 가장 먼저 배우는 한국말이 "욕하지 마세요", "때리지 마세요", 이것이 대한민국의 국제화 수준이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이런 외국인노동자와 국제결혼의 문제는 어제오늘 일이 아닌데 왜 해결되지 않는 것일까? 이것은 보다 구조적인 문제가 있기 때문은 아닐까? 세계화가 진전될수록 더욱더 늘어가는 다문화가정. 이들 간의 2세는 앞으로 우리 사회의 기둥이 될 것인데도 자라는 동안 다문화라는 편견 속에 가지게 될 대한민국에 대한 부정적인 인상은 장차 누구에게도 도움이 될까?


 모든 것이 잿더미가 된 한국전쟁이후, 전 세계가 놀랄 만큼 경제발전을 일구어낸 대한민국. 오늘의 경제가 있기 까지는 수많은 노동자들의 수고와 희생이 있었다. 특별히 자원 및 기반시설이 없던 우리로서는 인력이 최고의 자원이었기에 근면·성실·교육을 사회윤리적 덕목으로 강조하였고, 노동력을 중심으로 나라 밖에서는 독일과 중동에 파견된 간호사와 건장한 기술자들이 있었다. 고속도로 공사와 뜨거운 철판과 맨몸으로 맞서던 중공업노동자들의 수많은 죽음들이 있었기에 오늘날의 대한민국이 있음은 물론이다. 그러나 이들의 임금이 너무 높아졌다. 따라서 기업주들은 정규직을 비정규직으로, 비정규직 보다는 값싼 외국인노동자들을 선호하게 되었고, 다문화가족이 점차 늘고 있다. 기업이윤에 따른 결과이다. 그게 아니라면, 아무리 국제경기가 어렵다하더라도 기업이윤은 최고실적을 갱신한다는 불가사의(不可思議)한 상황을 설명할 수가 없다.
 때문에 오늘날 다문화가족, 단순히 결혼 못 한 농촌총각의 문제나 결혼 대행업체의 문제가 아니라 산업사회가 안고 있는 총제적인 문제인 것이다. 정부와 지자체에서 벌이는 다문화가족에 대한 정책도 바로 미래 사회에 대한 계획이자 투자이다. 그런데 이 다문화가정에 대한 정책도 기업이윤의 원리가 작동한다면, 우리 사회에 외국인 멸시풍조와 그에 비롯한 탓티황옥씨와 같은 사건은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여기서 "나는 아바타일 뿐, 누군가 나를 조정했다."라는 장씨의 진술을 떠올릴 필요가 있다. 장씨가 보았던 영화 '아바타'는 무분별한 인간욕망의 실현을 위해 나비족의 신체에 인간의 의식을 주입하여 새롭게 만들어 낸 생명체를 말한다. 즉 자아의 실현을 위해 조정되는 타자의 신체를 만들어 낸 것이다. 이렇게 만들어진 아바타(제이크)는 오히려 인간보다는 나비족을 선택한다. 분열된 자아가 자신의 통제를 벗어나는 것이다. 가정경제가 파탄나고, 농촌이·삶이·공동체가 붕괴되어가는 과정에 이런 무능력한(?) 남성들에게 시집올 여성이 없었고, 인생의 실패자라는 자학과 욕구불만이 아바타와 같은 자아의 분열을 초래하고, 또 다른 자아가 벌이는 불특정 다수에 대한 무차별 공격은 이미 우리보다 앞선 나라에는 너무나 흔한 일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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