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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7년 여름, 염포만 대구머리에서 선박 건조작업을 하는 모습이다. 당시 인구 1000여명이던 동해안의 대표적 절경 염포 미포지구는 자동차와 조선 공업의 메카로 변모했다.
 염포(鹽浦)는 조선시대 3포 개항지(세종 8년, 1426년)의 하나로, 정조 4년(1780년)에는 동면 염포리였다. 고종 31년(1894년)에 염포동·신전동이라 불렸다. 1911년 염포동과 심청동이 되었고, 1914년 4월 1일 염포리로 통합되었으며, 1931년에는 방어진면 염포리로, 1936년 7월 1일에는 방어진읍 염포리가 되었다.
 삼국시대부터 목선 건조장으로 이름을 날린 염포만은 1962년 6월 1일 울산시에 편입되어 방어진출장소 관할(염포리)이 되었다. 1972년 10월 1일 울산시 31개 행정동으로 개편함에 따라 염포동과 양정동을 합쳐 병영출장소 관할의 염포동을 설치했다.
 1979년 5월 1일 시 조례 제625호(1979년 5월 1일 공포)로 염포동을 염포1동(현재의 양정동)과 염포2동(현재의 염포동)으로 분동하였고, 1983년 5월 1일 시 조례 제899호(1983년 5월 1일 공포)로 염포2동을 염포동으로 명칭 변경하였다.
 사진은 목선을 만드는 장면이지만 지금은 인근에 세계 최대의 조선소가 들어서 있으니 격세지감을 느낄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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