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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말에 정포가 울주군수로 부임해와 울산의 승경 여덟 곳을 가려 뽑아 '울주팔경'이란 이름을 붙이고, 그에 대한 시작품을 지었다. 그 뒤 고려 말에 가정(稼亭) 이곡(李穀, 1298-1351)이 정포의 울주팔경 시를 좇아 역시 울주팔경 시작품을 남겼다. 이곡은 직접 울산에 와 울주팔경을 둘러 보고 시를 지은 것이 아니라, 정포의 시작품만을 보고 상상으로 지은 것이라고 한다.

 이곡의 시는 그가 남긴 문집 가정집(稼亭集)에 '차정중부울주팔영(次鄭仲孚蔚州八詠)'이란 큰 제목 아래 여덟 수(首)가 실려 있다. 정포가 지은 시작품과 대상은 똑 같지만, 순서는 다르게 돼 있다. 정포의 시는 태화루와 평원각, 장춘오, 망해대, 벽파정, 백련암, 개운포, 은월봉 순으로 돼 있지만, 이곡의 시는 태화루와 장춘오, 평원각, 망해대, 백련암, 벽파정, 개운포, 은월봉 순으로 돼 있다.

 이곡은 고려 충숙왕 7년(1320년)에 문과에 급제하고, 12년 뒤에 원나라에 들어가서도 과거에 합격하면서 이름을 크게 떨쳤다. 고려에 돌아와 중책을 차례로 역임하고, 한산군(韓山君)에 봉해졌다. 이제현(李齊賢)의 문하로 스승과 함께 편년강목(編年綱目)을 증수했으며, 문집으로 가정집(稼亭集)이 있다. 나중에 조선왕조의 국가이념이자 통치철학이 된 유학의 대가로 꼽힌다. 조선개국에 반대해 목숨을 빼앗긴 목은(牧隱) 이색(李穡, 1328-1396)의 아버지다.

 이곡이 지은 '은월봉' 시는 남산 은월봉 정상에 세워져 있는 은월봉이란 표지석 뒷면에 새겨져 있다. <흰 구름은 뭉게뭉게 은하수를 가리고/차가운 달 속엔 계수나무꽃 가득하네./봉우리에 달 가리니 산은 더욱 높아/산 그림자가 저절로 발 끝에 닿는구나.//일렁이는 시흥(詩興)이 밤기운에 맞닿아도/낙하(落霞) 글귀엔 부끄럽기만 하구나./불사약 훔친 항아는 돌아오지 않는데/달 몬다는 섬아는 밤이슬에 젖겠네.>
 장춘오는 <이 곳에 꽃이 얼마나 되고/그대 집에는 술이 있는가?/인간 세상에 붉은 빛이 이미 머물기 어려움을/일찌기 가까운 뜰 모퉁이에서 보았네.//세상 일에 장차 머리가 희어지려고 하고/남은 생애라서 벌써 말이 부드럽네./술병을 가지고 날마다 시냇물을 건너는데/명아주 지팡이를 반드시 짚을 필요는 없네.>라고 읊었다.

 한편 조선왕조에 들어와 정포가 가려 뽑은 울산팔경을 노래한 시작품이 줄을 잇는가 하면, 전혀 다른 곳을 팔경으로 정하고 그 풍광을 예찬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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