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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려 말 정포가 울산의 명승지 여덟 곳을 '울산팔경'으로 가려 뽑고, 그 풍광을 시(詩)로 지어 남긴 이후 조선왕조에 들어와서도 많은 이들이 울산팔경을 예찬한 작품을 남겼다. 그런 한편으로 정포가 선정한 팔경과는 다른 팔경도 나타났다. 대표적인 것이 세종실록지리지의 경상도 울산군 편에 실려 있는 '팔영(八詠)'이다. 정포가 정한 것과는 내용이 완전히 다른 팔경이 소개돼 있다.
 병영성의 누각에서 울리는 뿔피리소리 '성루화각(城樓畵角)'과 개운포 수영에 정박해 있는 전함의 붉은 깃발 '전함홍기(戰艦紅旗)'와 동대산의 해돋이 '동봉일출(東峯日出)'과 개운포에서 바라보는 밝은 달 '남포명월(南浦明月)'과 백양사의 솔바람소리 '산사송풍(山寺松風)'과 강정마을에 피어난 눈속의 매화 '강정매설(江亭梅雪)'과 태화강 낚시터에 내리는 비 '조대소우(釣臺疎雨)'와 염포마을의 소금 굽는 연기 '염촌담연(鹽村淡烟)'이다. 제목만 적혀 있을 뿐, 그 풍광이나 정취를 읊은 작품은 실려 있지 않다.
 또 울산 사람들 사이에서 널리 구전된 팔경으로는 염포로 돌아오는 돛단배 '염포귀범(鹽浦歸帆)'과 저녁 무렵 서생포에 내리는 눈 '서생모설(西生暮雪)'과 문수산의 저녁 노을 '문수낙조(文殊落照)'와 삼산에 내려 앉는 기러기떼 '삼산낙안(三山落雁)'과 낚시꾼들이 태화강에서 낚싯대를 드리운 모습 '태화어간(太和漁竿)'과 무룡산의 해뜨는 풍경 '무룡산조(舞龍山朝)'와 학성에 내리는 보슬비 '학성세우(鶴城細雨)'와 백양사의 새벽 종소리 '백양효종(白楊曉鐘)'이다.
 조선 철종 6년(1855년)부터 2년간 울산부사를 지낸 심원열(沈遠悅)은 그의 문집 '학음산고(鶴陰散稿)'에 울산팔경을 기록해 놓았다. 학성의 아침 운무 '학성조운(鶴城朝雲)'과 저녁 무렵 반구정에 내리는 비 '구정모우(鷗亭暮雨)'와 백양사 저녁 종소리 '양사만종(楊寺晩鐘)'과 태화강에 돌아오는 돛단배 '화강귀범(和江歸帆)'과 삼산의 저녁 노을 '삼산낙조(三山落照)'와 이수에 내려 앉는 갈매기와 해오라기 '이수구로(二水鷗鷺)'와 일산진 어풍대의 파도소리 '어풍조성(御風潮聲)'과 태화동 내오산에 비치는 달빛 '오산월색(鰲山月色)'이다.
 울산팔경은 조선과 일제강점기를 거쳐 광복이 된 뒤에는 울산의 선각자들에 의해 또 다시 정해졌다. 그리고 지역을 세분해서, 지금의 동구의 동면팔경과 서생팔경, 강동팔경 등도 생겨났다. 지금의 울산12경은 2002년 12월 24일에 정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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