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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제도로 피서를 떠났다가 남해안 고성에 있는 동생의 시골 시댁에서 하루 머무를 기회가 있었다.
 아침 일찍 시골 변소에서 볼일을 보고 나온 조카들이 아직 일어나지 못하고 뒤척이는 아들녀석에게 시골변소의 괴이한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었다.
 전날 차에서 잠든 아이들이 이른 아침에 한꺼번에 깨어 시골 할머니를 따라 변소에 갔다온 모양이었다. 시골에서 자란 나조차 어젯밤 그 재래식 화장실에 앉아 볼일을 보기가 여간 괴로운 것이 아니었다. 시골 할머니의 재촉에 못 이겨 억지로 볼일을 보았을 아이들의 표정이 어땠을까? 한번도 보지 못했을 변소의 기괴한 모양과 냄새에 기겁을 했을 아이들을 생각하니 절로 웃음이 나왔다.
 시골 화장실 이야기로 아침을 연 아이들이 부시시 눈을 비비며 개구리를 잡으러 나섰다. 조카는 제 할머니 댁에 다녀오기라도 하면 개구리 잡은 것을 자랑하곤 했었다. 조카의 안내를 받아 아이들이 뛰어간 조그만 개울 길에선 놀란 개구리들이 이리저리 날뛰었다. 여자아이들은 기겁을 하고 뒤로 물러서고, 남자아이들은 어설픈 손짓으로 개구리를 잡으려하지만 생각처럼 쉽게 잡힐 리는 없었다.
 약이 올라 이리저리 뛰어 다니는 아이들 사이로 할머니가 소쿠리를 가지고 나오셨다. 아이들은 할머니가 쥐어준 소쿠리로 개구리를 덮어보았지만 어설픈 도시 아이들에게 잡힐 개구리가 아니었다.  아이들이 개구리를 잡는 사이 할머니와 함께 벌써 몇 대째 마을 사람들의 식수로 사용하고 있다는 샘에서 아침거리를 준비했다. 새마을 운동이 한창이던 시절에 콘크리트로 개량을 해 위쪽엔 샘터, 아래쪽엔 빨래터로 사용할 수 있도록 만들어 놓았다. 빨래터 바닥엔 물이끼가 살폿살폿 앉아 있었다. 이끼가 낀 빨래터 바닥은 얼른 보아서는 콘크리트인지 그냥 돌인지 구분이 되지 않았다. 사람이 만든 것도 세월의 나이테를 두르면 저렇게 자연을 닮아 가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찬 샘물에 상추 잎을 씻으면서 어릴 적 집 앞을 흐르던 개울과 빨래터가 아롯하게 떠올랐다.
 무룡산에서 내려오는 물길이 우리 집 앞을 거쳐갔다. 지금은 택지로 개발되어 물길조차 사라져 버렸지만 내가 어릴 적 우리식구들은 그 개울 덕을 참 많이도 보았다. 개울 조금 위쪽에는 삼촌들이 물을 막아 만든 물 놀이터가 있어 여름 내내 더위를 식힐 수 있었다. 장맛비가 심해 개울이 불어나면 물이 마당까지 넘쳐 들어오기도 했다. 비가 그치고 물이 빠지고 나면 흙 마당엔 미꾸라지와 아이 손바닥만한 붕어 같은 물고기들이 퍼덕이기도 했었다. 온 여름을 개울과 함께 했으니 달리 피서를 갈 이유도 없었다.
 마침내 아들 녀석이 개구리를 잡았다며 흙이 잔뜩 묻은 두 손을 보아란 듯이 내 얼굴 가까이 들이 밀었다. 놀라서 두 손을 내저었지만 발그스름한 아이 얼굴에서 나오는 득의양양함을 외면하지 못하고 '우와' 감탄사를 연발해 주었다. 아이는 개구리 담을 통을 내어 주겠다는 할머니 뒤를 따라 두 손을 포갠 채 졸래졸래 시골집으로 걸어갔다.
 샘이 난 조카들이 개구리를 잡아달라고 떼를 쓰기 시작했다. 개구리의 물컹한 감촉이 떠올라 잠시 망설여졌지만 소쿠리를 들고 도랑으로 갔다. 발길이 닿는 곳마다 작은 개구리들이 도망을 가느라 정신 없이 뛰었다. 허리를 숙인 후 손을 뻗어 덮쳐 보았지만 개구리는 좀처럼 잡히지 않았다. 어느새 돌아온 아들 녀석과 조카들이 연신 개구리를 놓치는 내 모습을 보고 깔깔거렸다. 아이들의 밝은 웃음소리가 시골의 아침을 가득 채웠다.
 얼굴을 들고 맑은 하늘을 보는 순간 '아, 이게 진정한 휴식이구나' 하는 짧은 안도와 후회가 교차했다. 휴가 때만 되면 마치 정해 놓은 행사라도 치르는 것처럼 전국 지도를 펴놓고 고생길을 찾아 나섰던 우리들 모두는 진정한 휴식의 의미조차도 몰랐던 게 아닐까.
 그런데 그날 우연히 만난 시골의 아침이 가슴을 열게 하고 땅을 밟게 하고 맑은 샘물에 손을 담그게 하고 아이들의 쾌활한 웃음소리를 쏟아내게 할 줄이야.
 울산으로 돌아오는 차안에서 아이들은 다시 변소 이야기와 개구리 잡은 이야기를 하며 웃음꽃을 피웠다. 막힐 것이라 생각했던 귀갓길이 뻥하니 뚫려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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