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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치는 살아있는 생물이라는 말이 있다. 정치인들이 정치의 가변성에 대해 언급할 때 자주 쓰는 이 표현이 요즘처럼 잘 맞아 떨어지는 시기도 드문 일이다. 4개월 앞 둔 대선가도는 복잡하게 얽혀 있다. 날이 바뀌면 친노를 표방한 인물들이 "내가 적임자"라며 여권 경선에 뛰어들어 이제 그 수조차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다. 비교적 단순하게 짜여진 야당의 대선구도는 그쪽대로 복잡하다. 내분을 넘어 외나무다리 싸움으로 치닫는 형국이 시장통 싸움판을 연상시킨다. 여기다 이번에는 남북정상회담이라는 새로운 변수가 뛰어들었다. 당장 여권의 대선주자들은 반색을 하는 모습이지만 진흙탕 싸움을 벌이는 한나라 빅2는 얼떨떨한 표정이다. 문제는 남북정상회담의 정치적 의미가 아니라 본질에 있다. 문제의 본질은 "왜 만나고, 무엇을 얻을 수 있나"에 집중해야 한다. 그러나 사정은 본질과 무관한 쪽으로 흘러가고 있는 느낌이다.
 노무현 대통령의 정치인생은 '정치가 살아 있는 생물'이라는 사실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필자가 노대통령은 처음 만난 것이 1990년이니 벌써 17년이나 됐다. 그동안 노대통령은 '5공청문회 스타'로 야당의 차기 주자로 부각되기도 했지만 대체로 정치권에서 '이단아' 취급을 받아왔다. 필자가 노대통령과 첫 대면을 한 시점은 그가 의원직을 던지고 울산의 올림피아 호텔방에 은둔했던 시기였다. 의원직을 던진 것이 뉴스가 되기보다 노동운동의 메카에서 군사독재정권을 향해 날린 그의 날선 연설이 뉴스가 되어 그의 존재를 부각했다. 그 후 부산에서 국회의원에 나섰을 때나 부산시장선거에 도전했을 때 필자는 그의 행보와 독특한 정면돌파의 면모를 지켜보았지만 '5공청문회 스타'급 대우를 받은 적은 없었다.
 그런 그가 지난 2002년 대선 때 '정면돌파'의 승부수로 자신의 존재를 세상에 확실히 알렸다. 대통령집권 기간 내내 노대통령을 따라다닌 정치적 수식어는 그의 정치인생과 늘 함께했던 '이단아'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임기를 다한 대통령이 새로운 일을 벌인다는 것이 무리라는 논리는 노대통령의 논리에 맞지 않다. 지난해부터 남북정상회담의 평양개최설이나 제3국 개최설이 무성했지만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임기말 대통령이 무리하게 추진할 사안이 아니라는 점과 대선정국의 오해소지 등을 들어 연내 개최에 부정적이었다. 다만 노무현대통령의 정치스타일을  잘 알고 있는 사람들은 어떤식으로든 정상회담이 이루어지리라는 조심스런 전망을 해왔을 뿐이다. 그런 점에서 이번 정상회담 발표는 '역시 노무현'이라는 반응이 나올 법하다.
 정상회담은 정치적 수사가 따를만큼 가벼운 사안이 아니다. 과거사를 돌아보면 냉전시대 국교 수립을 위한 미중 정상회담에는 닉슨과 저우언라이(周恩來), 서독-소련 정상회담에는 아데나워와 흐루쇼프, 그리고 서독-동독 정상회담의 출발은 브란트와 슈토프가 각각 주역을 맡았다. 저마다 상이한 프로필을 보인 이들 정상회담의 주역에겐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다같이 자국 국민의 압도적 지지를 등에 업고 상대방도 그걸 인정하고 정상회담 테이블에 마주 앉았다는 점이다. 독일을 하나로 만드는 중추역할을 한 아데나워의 경우 반대파와 부정적 여론을 업은 정치인들을 정상회담의 파트너로 대동하는 주도면밀함을 보였다는 점은 노대통령이 새겨보아야할 대목이다. "정치는 살아있지만 살아있다고 다 정치는 아니다"는 사실도 잊지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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