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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전은 기업문화와 관련

한국 사람은 과연 어쩔 수 없는가?
 사업장을 방문하면 가끔 이런 말을 듣는다. "한국 사람은 어쩔 수 없다" 심지어 어떤 사람은 이런 말도 서슴없이 한다. "조선 사람은 안 된다" 이런 말을 들을 때마다 내 마음속에는 분노가 생긴다. 어떤 일의 원인을 두고 자신 또는 그 조직의 나태함이나 무지 또는 경영진의 안전의식 부족에서 찾기 보다는 타인에게 돌리는 습성이 보이기 때문이다. 과연 한국 사람들이 다른 민족보다 더 문제가 많은가? 특히 안전분야에 적용해 볼 때 과연 한국 사람들은 문제가 많은가?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 조상들의 문제도 물론 아니다. 그것은 그 기업의 문화와 관련되어 있을 뿐이다. 안전에 대한 경영진의 확고한 의지와 방침이 없다면 그 조직의 안전은 한국이나 외국이나 다소간의 차이는 있을지 몰라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울산에 외국인 기업들이 많이 있다. 이들 중 대다수는 외국인이 직접 공장을 지은 경우가 아니다. 대부분은 기존의 한국 기업을 인수해서 외국인 회사가 된 경우이다. 그곳에 일하는 사람들은 공장장이나 재무담당 같은 한 두 사람을 제외하곤 모두 한국 사람들이다. 그것도 이전에 그 회사에 다니던 사람들이다. 그런데 한국 기업에서 일할 때와 외국 기업에서 일할 때를 비교하면 무언가 놀라운 변화가 나타난다. 한국 기업에서 일할 때는 보호구를 착용하는 것 하나도 제대로 되지 않았던 회사가 외국 기업에 인수된 뒤에는 불과 한 두 달 만에 모든 직원들이 거의 100% 보호구를 착용하는 등의 변화가 그것이다.
 이전에는 공장 내에 근무하는 직원들도 안전모나 안전화를 잘 신지 않던 사람들이 이제는 여직원조차 길 하나를 건너 옆 건물에 문서를 전달하러 갈 때에도 안전모를 착용한다. 이런 놀라운 변화가 외국 사람이 아닌 한국 사람에게 일어났다. 이것이 민족의 문제인가? 아니다. 그것은 기업의 문화와 관련되어 있다.

'규칙준수'당연히 해야 할 기본

 안전규칙은 타협의 대상인가?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 그것은 기본적으로 사업장의 규정과 관련되어 있다. 안전규칙을 준수하지 않을 경우에는 그에 상응한 벌칙을 적용하기 때문에 규칙이라고 하면 철저히 준수하려고 노력한다. 처음에는 규칙을 준수하는 것이 익숙하지는 않겠지만 규칙을 의지적으로 준수하고자 한다. 왜냐하면 그것이 사규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기업들도 신입사원을 채용할 때 안전에 대한 서약서를 받는다. 회사의 안전규칙을 준수할 것이고, 만약 그것을 위반할 때에는 그에 상응한 벌칙을 받아들이겠다는 식의 서약서에 서명한다. 하지만 그것을 엄격히 적용하는 부분에 있어서는 외국인 기업을 따라가지 못한다. 이것이 우리가 넘어야 할 숙제이다. 이것은 한국인이기 때문이 아니고, 기업의 안전문화와 관련되어 있다. 안전수칙을 지키는 것은 선택의 문제도 타협의 문제도 아닌 당연히 지켜야 할 기본으로 받아들일 때 안전문화가 싹을 피울 수 있을 것이다.

제도·설비 활용 안하면 무의미

 안전의식이 결여된 것은 조상 탓인가?
 우리 조상들의 안전의식은 어떠했을까? 1468년 세조 13년의 예조계장빙사목(禮曹啓藏氷事目)에 벌빙처 종횡설(伐氷處 縱橫設)이란 기록이 있다. 이것은 한강에서 얼음을 채취하다가 얼음을 떼어낸 구멍에 벌빙작업을 하던 관노들이 빠져 익사하는 사고가 빈발하자 이를 방지하기 위해 벌빙장소 주변에 말뚝을 박고 동아줄을 종횡으로 설치한 후에 단단한 새끼줄(안전벨트에 해당)을 관노들의 몸에 감게 하여 강에 빠지지 않도록 한 것이다. 지금의 안전대 걸이시설과 안전대를 착용한 것과 동일한 조치에 해당된다. 이 얼마나 놀라운 지혜인가? 이것은 지금부터 약 540년 전에 행해졌던 사실이다. "조선 사람은 어쩔 수 없다"라는 말에 대한 충분한 대답이 될 것이다. 안전에서 민족성과 관련된 부분이 없지는 않겠지만 결정적 요인은 될 수 없다. 오히려 그보다는 그 조직의 문화와 더 많은 관련이 있을 것이다.

CEO 의지·근로자 참여로 시작

 만약 조선 시대에 벌빙하는 관노들이 새끼줄 매는 것을 귀찮아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그들이 새끼줄 매지 않는 것을 관리감독자들이 방관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아마도 사고는 예방되지 않았을 것이다. 이런 문제를 예견이라도 하듯 세조께서는 "벌빙작업 중 익사자나 동상자가 발생할 경우에 관리감독자를 처벌"하도록 하여 관리감독 기능을 강화시켜 이런 문제를 해결하셨다. 결국 아무리 좋은 제도나 설비가 갖추어져 있더라도 지키지 않거나 사용하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 안전은 가장 기본적인 약속을 지키는 것에서 출발한다. 즉, 안전시설을 갖추고 안전규칙을 지키는 것이다. 안전은 최고경영진의 확고한 실천의지로부터 시작되며, 현장 근로자들의 적극적인 참여로 꽃피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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