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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우리는 너무도 편리한 시대에 살고 있다. 동시에 가장 더럽고 위험한 공해시대의 한복판에 살고 있기도 하다. 환경이 상품화되는 시대. 매일 요란한 상품광고 메시지 속에 우리의 건전한 의식은 거의 마비상태에 이르렀다. '절약이 미덕'이란 말은 더 이상 통하지 않고 '나혼자 편하면 그만'이라는 이기주의와 물질만능주의가 팽배한 지 오래다.

오염물질을 환경상품인양 세뇌

 기름 한방울 나지 않는 나라에 몇백 미터마다 들어선 주유소의 담벼락을 보면 무슨 클린에너지니 하며 선전하는 모습이 휘발유가 아니라 마치 먹는 샘물을 파는 곳인양 착각이 들 정도이다. 대표적인 오염물질인 기름을 대단한 환경상품인양 세뇌시키고 있는 것이다.
 집안의 세제도 '요만큼'하면서 조금만 넣어도 되는 것처럼 선전하지만 실제로는 고농도 표백제일 뿐이다. 우리 소비자들은 이같은 상품들을 '환경적'이라고 생각하며 아무런 거리낌없이 펑펑 쓰고 있는 것 아닐까.

물질만능·이기주의 팽배

 결혼식장에 가보면 신랑신부 머리에 축하한다며 스프레이를 마구잡이로 뿌리고 젊은 직장인들이 무스를 바르는 것이 일상화됐다. 신혼살림 집엔 텔레비전 냉장고 세탁기 등 가전제품도 무조건 초대형이다. 자동차나 에어컨이 없는 생활을 상상조차 하기 힘든 시대로 변해버렸다.
 불과 몇십년 만에 우리는 근대화라는 미명하에 '안이한 죽음'의 길에 접어들었다.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고 가까운 거리 조차도 걷기 싫어하며 멀쩡한 물건도 유행에 맞지 않다고 팽개쳐 버린다. 남은 아랑곳하지 않고 자기 편한대로 사는 삶을 풍요로운 삶으로 착각하면서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스웨덴의 언어학자인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의 '오래된 미래-라다크에서 배운다'는 몇 년 전에 나왔음에도 이제는 '현대판 고전'이 된 생태주의 도서이다.
 저자는 지난 1975년 티베트의 고산지역인 라다크를 방문해 줄곧 그곳에서 살면서 라다크의 이른바 근대화 물결을 지켜보고 이를 잔잔한 필치로 기록했다.

관광지 개발로 돈만 쫓아 서구화

 농사와 목축을 하던 라다크 마을, 낭비와 오염이 없고 범죄도 없고 청소년들은 노인들을 존경하며 넉넉하지는 않지만 부족한 줄 모르고 살아온 건강한 공동체. 그러나 그곳이 관광지로 개발되면서 모든 것이 변했다. 농사를 그만두고 예전의 세간을 다버리고 돈만 쫓아 서구화돼가는 모습에서 우리들의 지나온 발자취를 느낄 수 있다.

 거름이 됐던 가축똥과 인분이 이제는 골치아픈 오염원이 됐고 멋진 전통 소금그릇은 싼값에 외지인에게 넘겨지고 살충제 깡통에다 소금을 담아먹는다. 현대식 학교에선 고산지대에선 키울 수도 없는 저어지산 암소 사육법을 가르치고 있다.
 그러나 호지 여사가 지난 1994년 라다크 마을에 '생태적 발전센터'를 설립해 대체에너지 연구와 새로운 형태의 발전 모델을 제시하고 있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희망을 준다.

존엄성 상실 인간을 황폐하게 해

 편한 것, 빠른 것, 크고 강한 것, 새것이 좋고 흰 것이 아름답다는 말은 부분적으로는 맞는 말이다. 그러나 편한 것이 반드시 좋은 것만은 아니다. 편하다는 것은 인간을 무기력하고 게으르게 만들 수 있다. 빠른 것이 좋기는 하지만 천천히 가면서 세상을 관조하는 여유와 멋을 잃기 쉽고 부실을 낳을 수 있다. 흰 것이 아름답다고 하지만 희다고 반드시 깨끗한 것은 아니며 희게 보이게 하기 위해 보이지 않는 곳에 엄청난 불결함을 숨겨 놓을 수도 있다. 새 것이 좋기는 하지만 오래된 것의 정다움을 잃기 쉽고 큰 것이 좋아보이지만 작은 것을 무시하는 교만한 마음이 문제가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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