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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심 속 오지로 불리던 울산 남구 야음동 신화마을이 벽화로 유명세를 타고 있다. 대나무로 엮은 지킴이를 중심으로 착시의 골목, 동화의 골목, 시의 골목, 암각화의 골목 등이 만들어져 마을 전체가 하나의 미술관이 된 느낌이다. 주말이면 태화강이나 신불산으로 향하던 시민들의 발걸음이 신기하게도 하나 둘 신화마을로 모이고 있다. 벽화의 힘이다. 보고 느끼고 생각하게 하는 문화의 힘이 아무도 찾지 않고 언제라도 떠나고 싶어 했던 마을에 생기를 불어 넣었다.

 신화마을에 들어서면 낯설다. 회색의 거리, 직선과 날카로움이 공존하는 도심이 불과 한 뼘쯤인데 그곳은 무심할 뿐이다. 그 무심함이 벽면가득 원색의 옷을 입고 손을 잡아 끈다. 가끔, 일상 속의 사람들이 귀찮은 듯 몸을 움츠리는 모습이 경계의 빛으로 다가오기도 하지만 먼저 환하게 웃으면, 금방 벽화 속의 고래 한 마리가 물기둥을 쏘아 올린다. 이방인의 모습으로 찾았다가 어느새 마을 어느 한 켠 움틀고 싶은 생각으로 발걸음을 돌리는 곳이 바로 신화마을이다.

 도심 속 오지마을을 친근하게 만든 것은 벽화의 힘이다. 벽화는 사람들의 바람이 선과 색으로 만난 문화다. 부산의 산복도로가 그렇고 서울 도심의 산동네가 그렇다. 황량한 시멘트 벽면에 자신들의 바람을 입힌 사람들은 그 바람의 정점이 들판이나 숲길의 풀꽃과 닮았다. 흙이 풀잎으로 틔워 안식의 여유를 보여주듯이 사람들은 콘크리트의 삭막함을 녹여 꽃과 새, 고래와 나무를 만들어내고 있다.

 벽화는 오래된 인간의 발원이다. 지난 1879년, 다섯 살짜리 꼬마가 우연히 찾아낸 알타미라 동굴벽화는 인류 최고(最古)의 미술작품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구석기시대 후기의 마들렌기에 그려진 이 벽화는 매머드·토나카이·들소·사슴 등이 흑·적·갈색으로 묘사돼 있다. 1만년전 사람들이 벽면에 그림을 그린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지만 그림 위해 색깔을 덧칠한 그들의 발원이 경이로움을 더하는 세계유산이다. 알타미라 지역 구석기인들은 동굴이 그들의 도심이었고 그 도심의 벽면과 천정에 자신들의 발원을 모아 몇날 몇밤을 공들여 새겨넣었다.

 알타미라와 다른 방법의 벽화는 울산 반구대암각화가 대표적인 사례다. 노출된 자연상태의 벽면에 채색의 벽화를 만들지 못하기에 선사 반구대인들은 벽면을 쪼아 발원을 새겼다. 울산 앞바다에서 무리지어 다니던 참고래와 범고래, 혹등고래까지, 내일 아침 한 마리 고래를 사내들이 짊어지고 나타나길 발원하며 암면에 고래를 새겼다. 그 발원의 정점이 상징이 됐고 세월이 영혼을 더해 선사인의 신성지역이 됐다.

 바로 그 새김과 덧칠의 문화가 벽화다. 십여년 전 미술대학 학생들의 길거리 문화운동으로 부활한 오늘날의 벽화문화는 이제 정부가 마을 살리기 문화프로젝트로 권장하는 정부시책으로 이어지고 있다. 전국적으로 벽화마을은 수십군데에 이른다. 울산 인근만 해도 경주 읍천마을과 부산 산복도로 벽화골목 등이 유명세를 타고 있고 새롭게 조성되는 벽화마을도 줄을 잇고 있다. 이미 전국적으로 잘 알려진 읍천마을의 벽화는 천혜의 자연경관과 조화를 이뤄 하나의 관광상품이 되고 있다. 정자 바다를 지나 동해를 거슬러가다 만나는 읍천리는 동해 바닷가에 자리잡은 어촌이다. 얼마전 국립현대미술관과 월성원전이 공동으로 기획한 '벽화 그리기 공모전'이 이곳에서 열렸다. 마을 전체를 작품화한다는 기획으로 시작한 읍천항의 벽화 프로젝트는 방치된 마을 담장과 폐창고의 벽을 살아 숨쉬게 했다. 선구를 보관하던 허름한 창고 벽에 고래가 숨을 몰아쉬고 움푹한 폐가 담벼락에 들꽃이 피어났다. 해변길을 따라 그려진 50여 점의 벽화는 다채롭다. 바다가 배경이고 햇살이 조명이다. 풍광을 더해 나지막한 해조음이 음향효과까지 보탠다. 사람이 모이고 그들이 이야기를 만들어 조금씩 마을의 굳은 혈관을 녹이고 있다.

 부산의 역사를 고스란히 담은 수정동 산복도로는 벽화가 동심을 닮았다. 고개를 빼곡히 내민 아이가 모퉁이에 숨어 숨을 죽이고 잠자리 한 마리가 아이 등에 앉아 파르르 날개를 떨고 있다. 한국전쟁 당시 피란민들의 집단 정착지로 만들어진 산복도로 마을은 부산의 역사를 고스란히 담고 있다. 그 역사를 있는 그대로 새로운 문화로 만들었다. 산복도로 옹벽과 계단·바닥·물탱크에는 주민의 일상생활이 그림으로 살아났고 공간이 여유가 있는 학교벽면이나 공공건물의 벽면은 화려한 예술작품이 부산항을 조망하고 있다.
 역사는 다르지만 울산의 벽화마을인 신화마을도 현대화의 그늘이 드리워진 곳이다. 이 마을은 지난 1960년대 석유화학단지가 들어서면서 매암동에 터잡고 살던 사람들이 자신들의 삶터를 옮겨 정착한 곳이다. 이주의 그늘에 가려 도심 속 오지로 버려졌던 이 마을이 오늘의 바람이 빚어 문화의 옷을 입고 있다. 고래박물관과 고래생태체험관이 바로 이웃에 있는 신화마을에서 고래가 색을 입고 유영을 시작했다. 이왕에 시작한 벽화마을이기에 여러 가지 이야기도 많다. 체계화하고 테마화 하는 방안부터 예술인촌 조성까지 다양한 의견이 오가고 있다. 문제는 신화마을 사람들이다. 밖에서 들리는 이야기보다 이 마을에 터잡고 사는 사람들이 벽면에 그려진 그림과 공존할 수 있다면 벽화마을은 새로운 생명력을 갖는다. 하지만 외부의 욕심이 벽을 덧칠한다면 벽화는 오래지 않아 낙서가 되고 탐욕이 돼 또다시 버려질 수 있다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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