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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말 울산의 두 현직 구청장이 자리를 잃었다. 6·2 지방선거 6개월 여 만이다. 일부에서는 굳이 대법원까지 가서 '확인사살'을 할 필요가 있었냐는 자성론이 나오기도 하지만 민의의 선택으로 당선된 본인들의 입장에서는 마지막까지 법의 판단에 기대를 걸고 싶었던 모양이다. 하기야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치열한 선거전을 치른 판에 별 것 아니라 생각했던 여론조사 시비가 발목을 잡았으니 억울한 생각들 떨칠 수 없을 법도 하다.

 아니나 다를까  대법원의 판결이 떨어지자 당사자들은 기자회견을 갖고 대법원 판결에 대해 '억울함'을 일제히 쏟아냈다. 이들의 주장은 한결같다. 자신은 결백하고 여론조사와 관련해 금품을 수수한 적은 없다는 이야기다. 단지 언론사에서 주관하는 음악회 티켓을 좀 사 달라며 수차례에 걸쳐 요구해 옴에 따라 어쩔 수 없이 음악회 티켓을 구입한 것뿐인데 이런 식으로 직위를 잃어 억울하다는 이야기다. 특히 다른 한 사람은 자신들의 이번 직위 상실이 검찰의 짜맞추기식 수사에 의한 희생이라고 한발짝 더 나아갔다. 무슨 정적제거의 수단쯤으로 대법원의 판결을 해석한 그는 '법정에서 죽었으나 정치적으로 살아서 주민 품으로 돌아오겠다'는 송사까지 남겼다.

 안타까운 것은 이들의 직위상실이 아니라 울산이 가진 언론시스템의 문제다. 여론조사를 하든 음악회 티켓을 판매하든 그것은 언론사 자체의 보도시스템과 경영사업에 관한 일일 뿐이다. 문제는 보도를 담당하는 자가 경영의 문제를 보도와 직접적인 연관선상에서 바라보기 때문에 발생한다. 바로 여기에 울산이라는 도시가 가진, 아니 좀 더 엄밀하게 말하자면 울산의 관가에 팽배해 있는 언론 지향성이 깔려 있다. 울산시나 구군에서 지역언론을 바라보는 시각은 한마디로 귀찮지만 무시할 수 없는 존재 정도다. 이같은 생각이 결국 여론조작이라는 극단적인 사건으로 표출된 셈이다.

 울산의 지역언론 시장은 허약하다. 언론시장이 구독자에 의해 결정되는 구조라면 울산의 경우 지역언론 모두를 합해도 유력한 중앙지 1곳의 구독자 수에 미치지 못하는 허약한 기반을 가지고 있다. 물론 지역언론의 역사가 일천한 울산의 특수성을 감안한다면 앞으로 지역언론이 스스로의 입지를 다져나갈 시장은 얼마든지 열려 있다. 하지만 스스로의 취약성을 권언유착이라는 비리사슬로 움켜쥐려는 한 언론사의 잘못된 판단은 지역언론의 입지를 스스로 무너뜨리는 결과로 나타나고 있다.

 문제는 이같은 잘못된 판단에 힘을 실어주는 울산지역 관가의 시스템이다. 시민의 혈세를 적재적소에 배정하고 이를 통해 시민들의 보다나은 삶을 지향하는 지방정부의 지향점이 왜곡된 흐름으로 가고 있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여론조작이라는 부끄러운 사건이 현재 진행형으로 이어지고 있는데도 이를 주도한 지역언론에 시민의 혈세를 지원하고 행사 때마다 단체장이 얼굴을 내미는 일이 아무렇지도 않게 행해지고 있는 도시가 울산이다. 물론 지방정부의 이같은 태도는 지역언론이 지역민을 알권리를 위해 스스로의 좌표를 상실하고 있다는 반증이라는 점은 스스로 고개를 숙일 대목이기도 하다.

 어떤 사건이 발생하거나 문제가 표출됐을 때 보는 사람마다 자기 처지에 따라 그 해석이 제각각일 수 있다. 이런 현상을 언론에 빗댄 모이니한은 이를 '라쇼몽 효과'라고 개념화했다. 현대사회에서 기자에 따라, 또는 매체에 따라 서로 다르게 보도해 독자가 실체적 진실을 파악하기 어렵다는 것이 개념의 중심이다. 언론학자들은 이런 보도관행은 언론사의 상업주의적 계산이 깔려 있고 그 상업주의에 광고주나 정치권이 개입돼 있다고 지적한다. 영화에서 시작한 '라쇼몽 효과'는 사무라이가 칼에 찔려 죽은 사건에 대한 이야기지만 핵심은 법정에서 증인으로 나간 사람들이 행인에게 재판 과정에서 들은 바를 전하면서 모두가 엇갈린 진술을 하는 내용에 있다. 

 관련자의 진술이 엇갈리면 듣는 자의 판단이 흐려진다. 바로 이점을 지역언론의 돈줄을 쥐고 있는 지방정부와 기업에서 교묘하게 이용하고 있다는 점이 울산 언론의 현주소다. 라쇼몽 효과의 파생 상품같은 이야기지만 울산의 현실이 그렇다. 한 언론의 공격적인 보도를 다른 언론을 통해 물타기 하는 여론조작이 얼마든지 가능한 언론 시스템을 지방정부나 기업은 잘 알고 있다.

 지역언론의 상품은 신문이 아니라 구독자다. 다시 말해 지역언론 시장이 구독자가 아니라 광고주나 협찬사가 된다는 이야기다. 지역언론의 경우 언론의 규모나 소유 집중도가 중앙언론과 큰 차이를 보인다. 이 때문에 광고주나 협찬사의 입김이 신문 제작에 직간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구조를 갖고 있다. 또 하나의 문제는 언론종사자들의 자질이다. 사실과 진실의 경계는 물론이고 언론의 본질조차 모호해 하는 일부 언론 종사자가 버젓이 기자행세를 하고 다니는 곳이 울산이다. 더구나 패기에 넘쳐야할 젊은 언론인조차 지방정부나 기업 등이 제공하는 정보에 의존해 기사를 쓰는 경향이 있다.

 이같은 구조 때문에 지방정부나 기업은 지역언론을 언제든지 휘두를 수 있다는 만만한 생각을 가지고 있다. 그 만만한 생각을 현실화하기 위한 방법론도 잘 안다. 길들이고 싶은 신문 방송에 시민의 혈세를 적당히 제공하고 행사 때마다 얼굴을 내밀어 친밀함을 보여주기도 한다. 문제는 이같은 익숙하고 손쉬운 길들이기가 계속되는 한 올바른 지역여론의 형성은 요원하다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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