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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통하는 친구들과 한해 마무리

한 해를 마감하는 시절 이맘 때면 1년에 한번 초등학교 동창회를 다녀오곤 한다. 연말에는 어째서인지 서울에서 모임이 있게 되는데 고향을 떠나 있는 친구들이 서울에 많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서울에서의 정취를 한 번 느껴보며 서울에 있는 친구들이 고향에서 온 친구들을 대접한다는 의미도 있어서일 것인데 겸사겸사 좋다는 생각이다.

 이번에는 북한산에서 간단하게 산행도 하고, 그 근처에 자리를 잡았다. 바위산이 병풍처럼 눈앞에 펼쳐진다. 유리창 밖으로 세한도 같은 그림의 골격이 비춰지며 삶의 풍경이란 이렇게 겨울에서는 그 본질을 드러내는구나 하는 생각을 갖게 했었다.

 이제 나이 60을 향해 돌진하면서 어떤 친구는 조금 일찍 '풍'을 맞은 친구도 있다.  하지만 아직은 잔치상 같은 상을 앞에 두고 그래도 소주 몇 잔은 기울인다. 말도 예전처럼 빠르지 못하고 약간은 어둔하지만 사실 얘기도 많이 필요치 않다. 이제는 하나의 행동만 봐도 그가 무슨 소리를 하는지 안다. 어려서 그를 알고 있고 젊은 청년시절 그가 품었던 이상도 알고 있으며 그것을 어떻게 실현하려 했고, 어느 바닥에 떨어졌었는지도 알고 있다. 무엇을 감출 것이 있으랴 하지만 여자 동창들과는 조금은 남겨 높고 싶은 부분도 있다. 그래도 아직은 끌리는 어떤 부분이 있는 것처럼 아직도 더 피울 꽃이 있는 것처럼 굴고 싶은 것이 남녀 사이가 아닌가

"남녀사이 형광등·그림자만 알아"

 초등학교 때부터 마음에 두었었는데 첫사랑처럼 이루어지지 않는 사이라면 더욱 그럴 것이다. 그런 사이여서 그런지 한 친구가 여자 동창 앞에 가서 주위 사람 들으라고 떠들고 있다. 그들 사이에 마치 깊은 로맨스라도 있었다는 듯이 허풍을 떨고 있다. 그러면서 한 마디 던지는데 나는 그런 '명언'은 처음이다. 그래서 수첩을 꺼내 적었는데 그 바람에 그 모양을 보던 친구들의 웃음을 자아냈지만 나에겐 잊어버리기 아까운 '금언'이었다.

깨달음 등 여러의미 함축된 명언

 "남녀 사이는 형광등하고 그림자만 안다"는 것이다. 이 말을 들었을 때 나의 생각은 형광등이 아니었다. 번쩍하는 직관으로서 그 말의 의미가 와서 닿았다. 이 나이가 되지 않으면 잘 느낄 수 없는 체험에서의 메타포이며 여러 가지 '의미'가 숨어있는 것 같았다.

 남녀관계는 보통은 '형광등'아래에서 일어나지 대낮의 태양 아래에서 일어나는 일은 아니다. 그리고 형광등처럼 금방 그 감정이 드러나기 보다는 세월이 지나보면 '내가 누구를 사랑했던가'알게 되는 '깨달음'이 늦은 감정일 수 있다. 그리고 사랑이라고 잘못 알고 열심히 살았는데 그림자만 쫓고 있었을 수도 있는 것이 남녀 사이 감정인 것 같다. 그리고도 여러 의미가 함축되어 있는 것 같았다. 아니 평소 '물로'보던 친구 입에서 그런 표현이 나오다니 사람은 역시 나이를 먹고 익어야 와인처럼 '그 사람' 맛이 살아나는 건가.

어둠속에도 붉 밝히는 우리네 삶

 동창회를 다녀와서 또 느끼게 되는 것이지만 사람이 자기를 펼치면서 살아간다는 것은 굽이굽이 주름이 있고 간단한 일이 아니다. '바람'을 맞기도 하고 산에서 떨어지기도 하며 '벌침'에 쏘이기도 한다. 그렇다고 그 펼치는 일을 멈추지는 않는다. 아니 오히려 그렇게 바닥에 떨어졌던 일이 자신의 입에 그리고 친구들의 입에 오르내리면서 자신의 이야기가 된다. 바닥이 싫다고 안 떨어질 수 없는 인생에서 자기 운명을 사랑할 줄 아는 것은 가장 큰 지혜라는 생각을 한다. 어둠이 있었지만 어둠을 밝히는 빛이 형광등처럼 늦게 켜지더라도 기다려서 불을 밝히는 일 그것이 '동창회'이며 동창회 카페에 올리는 우리들의 이야기가 아닌가 하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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