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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신문 1면에 물에서 나온 반구대암각화 사진이 실렸다. 독자들의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필자의 핸드폰으로 사진 잘 봤다는 내용부터 이제는 다시 물속에 잠기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이야기까지 여러 건의 메시지가 전해졌다. 반구대암각화에 대한 시민들의 사랑을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사실 반구대암각화에 가보면 방명록에는 전국에서 찾은 수많은 사람들의 소망이 짧은 글로 표현돼 있다. 정부관계자나 문화재청장이 방명록의 글을 단 한번이라도 읽어본 적이 있다면 반구대암각화를 지금 상태로 방치해 두진 않으리라 생각하지만 그들이 몇 차례 다녀갔어도 방명록 한 번 읽고 갔다는 이야기는 들은 적이 없다. 울산시가 홈페이지를 통해 이들의 글을 그대로 옮겨놓았으면 하는 바람이지만 정부나 울산시를 야단치는 이야기가 대부분이라 실현 가능성이 낮아 보인다.

 지난 한 해를 돌아보면 반구대암각화를 둘러싼 이야기도 참 많았다. 연초부터 국회의장과 국무총리 문화재청장 등이 줄지어 반구대암각화를 찾았고 서명운동도 있었다. 보존단체가 생겼고 조촐한 행사도 있었다. 급기야 정부대책이 나왔고 울산시도 고집하던 물막이 안을 포기했다. 그것으로 시급한 수몰상태에서 벗어날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어쩐 일인지 그 이상 한 발짝도 나가지 못하고 있다. 수위조절을 통해 우선은 반구대암각화를 물에서 건져 올리겠다던 문화재청도 자치단체간 이견차나 예산문제 등을 이야기하며 적극성을 보이지 않고 있다. 그야말로 사기당한 기분이다.

 이번에는 울산시가 분연히 일어섰다. 박맹우 시장이 '반구대암각화 보존 대책반' 구성을 제안하고 나섰다. 시간만 끌며 정부의 행동을 기다리기에는 암각화의 상태가 너무나 좋지 않다는 지극히 현실적인 외침이다. 중앙정부와 인접한 광역단체의 틈바구니에서 가능한 원만한 해결책을 모색해 온 것이 지금까지 울산시의 입장이었다. 문제는 문화재청이었다. 국보를 관리하고 보존책을 찾아야 하는 문화재청은 언제나 뒷짐을 지고 있다. 숭례문과 낙산사가 불타고 정이품송이 벼락을 맞고 석가탑이 금이 가면 호들갑을 떨며 즉각적인 조치에 들어가는 문화재청이 유독 반구대암각화 문제에서는 뒷짐만 진다.

 박시장의 이번 결단은 그래서 더욱 의미가 깊다. 문화재청이 뒷짐을 지는 사이에 암각화의 훼손은 반복적이고 치명적인 상태가 되고 있다. 이번에 구성되는 특별대책반은 우선 이 문제부터 인식해야 한다. 시간과의 싸움이라는 인식이 바탕이 될 때 반구대암각화 보존 문제에 한걸음 물러선 사람들을 설득할 수 있다. 대책반에서는 훼손된 반구대암각화 보존처리와  암각화 침수 방지를 위한 사연댐 수문설치 등을 정부와 협의 조정해야 한다. 특히 박 시장은 국토해양부와 문화재청, 한국수자원공사 등이 참여하는 반구대암각화 보존 대책회의를 국무총리가 직접 주재해 주도록 요청했다. 이 점은 책임의 주체를 분명히 하자는 이야기다. 반구대암각화는 울산의 보물만이 아니라 대한민국의 보물이자 인류의 귀중한 문화자산이라는 인식에서 나온 발상법이다.

 문제는 바로 문화유산을 바라보는 시각에 있다. 수천년전 선사인의 암면 그림이 뭐 그리 중요하냐는 인식에서 출발하거나 유산은 어차피 세월 속에 사라지기 마련인 것을 현재의 식수가 더 시급하지 않느냐는 식의 인식이 정부관계자의 생각 속에 자리하고 있다면 반구대암각화의 보존대책은 요원하다. 일부에서 보이고 있는 반구대암각화 보존을 둘러싼 문화 포퓰리즘적 움직임도 경계해야 할 대목이다. 정부 당국자의 일부 시각이야 무식한 관료주의적 발상으로 돌리면 그만이지만 문화 포퓰리즘적 움직임은 정책에 혼란을 줄 소지가 있다. 반구대암각화를 통해 이름이나 알리고 자신의 견해를 띄우려는 일부 학자들의 소인배적 성향이 바로 그것이다. 

 지난 한 해를 돌아보면 반구대암각화를 두고 여러 가지 이야기가 쏟아졌다. 특히 보존 문제를 두고 벌어진 공방전은 낯 뜨거운 일이었다. 원형보존부터 절단해서 보존해야 한다는 이야기, 표면을 코팅하자는 주장까지 나왔다. 도대체 저들이 학자라는 이름에 어울리는 사람인가를 의심하게 하는 이야기가 쏟아졌다. 반구대암각화가 전국적인 뉴스거리가 되고 보존문제가 핵심으로 떠오르자 이를 이용해 이름이나 세상에 알려보자는 얄팍함이 보이는 대목이다. 바로 이같은 자들의 보존대책 참여를 원천적으로 막는 일도 대책반에서 반드시 취해야할 조치다.

 울산시가 이번에 반구대암각화의 보존대책을 정부에 촉구한 것은 바위그림에 대한 문화적 중요성을 인식한 결과다. 이는 무엇보다 반구대암각화를 찾은 시민과 전국의 관광객들이 보낸 선사인들의 문화에 대한 애정이 전해졌기 때문이다. 그 흔적이 세월과 함께 소멸되는 것은 자연의 순리다. 다만, 우리가 스스로 그 귀중한 문화유산을 파괴하고 있다면 그 원인을  제거해야 한다는 것이 보존대책의 참 뜻이다. 제발, 바위그림을 두고 이름이나 팔고 돈벌이나 하려는 자들의 욕심이 보존대책에 끼어들지 못하도록 해주길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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