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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해가 저물 무렵이면 어김없이 등장하는 단어가 다사다난(多事多難)이다. 울산은 올해 어느 해보다 많은 일이 있었다. 연초부터 터진 금품여론조사가 6·2 지방선거와 맞물리며 지역 정치판을 먹칠했고 그 여파는 결국 현직 구청장 두 사람을 자리에서 끌어내렸다. 부지선정 과정에서 말 많고 탈 많던 울산외국어고등학교는 폭우에 옹벽이 무너지고 건물의 기초파일이 부러지는 초유의 사고로 이어졌다. 어디 그 뿐인가. 새로운 지방정치를 구현하겠다는 당찬 포부로 출범한 울산시의회는 개원과 함께 법안 날치기통과와 멱살잡이에 주먹다짐까지 '막장 3종세트'를 연출해 전국 뉴스의 초점이 되기도 했다.

지역 사회의 어두운 뉴스는 이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지난달 현대자동차 비정규직노조가 생산라인 일부를 기습 점거해 한동안 잠잠하던 자동차 산업현장이 또다시 난장판이 됐다. 이번 파업은 지난 7월 법원이 한 비정규직 노동자에 대해 '2년 이상 사내하청 노동자는 정규직으로 간주한다'는 판결이 도화선이 됐다. 비정규직의 고용불안 문제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정부와 노동계가 합리적 접점을 모색하는 가운데 벌어진 파업사태는 노사 모두에게 엄청난 상처를 남겼다. 절차의 합리성이나 대화와 타협의 순리가 실종된 우리 사회의 어두운 현실이다.

해를 넘긴 반구대암각화 보존 문제도 우리의 마음을 무겁게 한다. 보존방안에 대한 의견차로 10여 년째 장기 표류하고 있는 반구대암각화 문제는 올 들어 획기적인 전환기를 맞았다. 울산시가 고집스럽게 지켜온 사연댐 수문설치 불가입장을 포기하면서 자맥질을 반복하는 암각화에 희망이 보였다. 문제는 식수확보였지만 정부의 식수정책은 한 발짝도 진전을 보지 못했다. 결국 국토해양부는 반구대암각화 보존을 위해 확보한 10억 원을 사용해보지도 못하고  전액 불용 처리했고 내년 예산에서는 절반도 안 되는 사업비를 막판에 겨우 확보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대승적 차원에서 정부안을 수용한 울산시의 노력이 수포로 돌아간 셈이다.

올해를 돌아보면 이 같은 어두운 뉴스를 가릴 만한 희망적인 이야기도 많았다. 그 첫 뉴스가 울산 세계옹기문화엑스포다. 옹기를 소재로 한 세계 최초의 문화엑스포인 이 행사는 지난 가을 울산을 풍성하게 만들었다. 울주군 외고산옹기마을에서 '숨 쉬는 그릇 미래를 담다'라는 주제로 열린 옹기엑스포는 '옹기'라는 단일 소재로 엑스포를 개최해 성공 여부에 대한 우려가 높았지만 다른 엑스포와 차별화를 이룬 성공적인 행사였다는 평가를 받았다. 옹기엑스포에는 개장 초기부터 관심이 집중되면서 당초 목표 관람객인 70만 명을 넘어 약 80여만 명이 다녀간 것으로 집계됐다.

하반기 뉴스의 중심은 단연 경부고속철도 2단계 완공이었다. 대구~부산 간 128.6㎞ 고속선공사가 마무리됨에 따라 11월부터 서울~부산 간 중간역인 KTX 울산역이 개통했다. 울산역사가 들어선 울주군 삼남면 신화리 일대는 고속철도시대 개막과 함께 울산의 확실한 관문역할로 수송망의 중심이동을 주도하고 있다. KTX는 울산의 교통흐름은 물론, 문화와 관광, 교육과 의료 등 시민생활 전 부문에 새로운 바람을 불러오고 있다. 개통 한 달여 만에 하루 평균 9,000여명의 승객이 고속철도를 이용하고 있다는 수치가 이를 잘 말해주고 있다. KTX 울산역 개통은 국토 동남단에 위치하고 있는 울산이 경부대동맥의 중심으로 편입된 일대 사건으로 '빨대효과'에 대한 우려도 있지만 실보다 득이 많은 행복한 뉴스였다.

강의 생태환경 복원이라는 당찬 프로젝트로 시작한 태화강 수변공원의 탄생도 반가운 소식이었다. 6년여 공사 끝에 태화강 심장부인 '태화들'이 전국 최대의 도심 수변생태공원으로 탈바꿈했다. 서울 여의도공원의 2.3배에 달하는 태화강 대공원은 도심의 중심에 자리해 일상생활 속에서 시민들과 쉽게 어울릴 수 있는 접근환경을 갖췄다. 중요한 것은 이 태화강대공원이 비록 인공적인 손길로 만들어진 것이지만 이곳에 서면 복원공사가 한창인 태화루와 은월봉, 용금소 및 오산 등 울산의 역사와 문화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산업과 경제를 쌍두마차로 40여년을 질주해 온 울산이 '문화'의 옷을 입고 있다는 사실은 도시 곳곳에서 감지할 수 있다. 반구대암각화와 천전리 각석을 잇는 선사문화벨트를 무대로 시민들이 한마음 한 뜻으로 걷기대회를 열고 전국이 주목하는 생태복원의 현장인 태화강에서 물 축제가 열리는 도시가 울산이다. 그 힘이 옹기문화엑스포의 성공개최로 이어졌고 옛길 복원과 둘레길 개발 등으로 이어지고 있다. 공장 굴뚝과 경제성장이라는 구호만 요란했던 울산이 완전히 다른 도시로 변모하고 있다는 반증이다. 바로 그 힘의 원천이 문화다. 문화를 사랑하는 힘은 자신의 삶의 터전에 대한 사랑으로부터 나온다. 다사다난했던 한해를 돌아보며 내일의 희망을 기대하는 까닭도 바로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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