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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가 바뀌면 언론 종사자들은 몇 가지 즐거움에 빠진다. 신문마다 신년특집이 쏟아져 나오는 새해 첫 날, 각 신문사들이 만든 특집기사를 읽는 일은 특별한 의미가 있다. 매일같이 쏟아지는 뉴스 속에 살다보면 속도감에 취해 일상적인 관심사는 놓쳐버리는 일이 자주 일어난다. 속도감이란 대체로 실시간 쏟아지는 뉴스다. 구제역 확산이나 연평도 도발같은 뉴스는 거의 분단위로 새로운 소식이 모니터에 오르기 마련이고 속보를 쫓다보면 그 흐름에 취해 행간을 놓치는 일도 잦다. 사실은 이같은 속보보다 중요한 것이 일상적인 관심사다. 장바구니 물가나 주유소의 기름값, 연휴엔 어디로 떠나볼까 하는 생각이나 기똥차게 맛있지만 가격도 저렴한 맛집은 없나 따위가 그것이다.


 새해 아침 중앙지 6개와 지역신문 5개가 책상위에 올라 있었다. 아침 7시30분이면 출근하는 필자는 신년 아침, 첫 해를 데스크에서 맞았다. 일중독자라 할지 모를 일이지만 한꺼번에 종이신문을 비교해 보기 위해서는 신문사가 최적의 장소다. 출입문에 쌓인 조간 신문 더미 속에 추가로 경제지 몇 개를 골라 거의 20여개의 신년호와 마주했다. 부자가 된 기분이다. 올해 신문들은 어떤 특집을 준비했나. 설레는 마음으로 하나씩 지면을 살펴나가면 저마다 색깔과 빛깔이 다른 언어들이 내 시각을 유린한다.
 올해 서울에서 발행되는 신문의 신년호 주제는 행복과 공존, 남북문제와 첨단산업, 그리고 신한류로 집약할 수 있다. 모두가 변별력도 있고 고민의 흔적이 곳곳에 스며들어 있었지만 상투적이고 식상한 기획물도 여럿 보였다. 눈여겨 볼 것은 국내 언론의 주류라 칭하는 주요 신문들이 다룬 주제가 하나같이 사람에 주목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10년 전 새로운 천년이 시작되는 첫해, 신문은 물론 방송사까지 새로운 시대는 몸의 시대라는 다소 생뚱맞은 테마로 신년특집을 다룬 적이 있었다. 그들의 선택은 적중했다. 지난 10년간 모든 언론이 사람의 몸을 다루는데 집중했다. 웰빙코드가 주류가 됐고 그에 파생하는 건강과 음식, 여행과 의류가 어느 때보다 주목을 받았다.


 10년이 지나 다시 몸의 주체인 사람의 문제가 부각됐다. 어느 신문은 행복을 걸개로 내걸고 한국인의 행복지수를 다양하게 그려냈다. 또 다른 신문은 관계에 주목했다. 다양성의 시대, 공존하지 않으면 도태할 수밖에 없는 오늘의 코드를 어떻게 풀어갈 것인가를 새해 화두로 제시하고 있었다. 사람의 이야기에 주목하고 사람의 삶의 방식에 주목한 신문도 있었다. 물론, 여전히 경제를 주요 주제로 다룬 신문도 많았지만 역시나 그들이 의도한 것은 경제 자체 보다는 사람의 삶의 방식을 결정할 미래의 먹을거리에 집중돼 있었다. 한가지 주목할 것은 통계에 의존하거나 설문조사 방식에 의존했던 과거와 달리 올해는 이같은 주제를 사람의 이야기로 풀어가려는 노력이 여러 곳에서 보였다는 점이다.


 눈을 돌려 지역에서 발행되는 신문을 펼쳤다. 울산의 현재와 미래가 펼쳐져 있었다. 창 밖을 바라보다 시선을 방 안쪽으로 바꾼 느낌이다. 문제는 방 안에 있는데 창밖에 시선을 두는 시간이 너무 길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울산이 그렇다. 모두가 인정하듯 울산에 살고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출생지가 다르다. 하지만 지금 울산에 살고 있는 많은 이들은 울산을 새로운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다. 그러면서 지역이 소외받는다는 이야기를 한다. 하지만 정작 지역 소외를 이야기 하는 이들조차 중앙지향식 사고에 길들여져 있다.
 세상의 중심은 자신이 살고 있는 지역이다. 자신의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부터 알아야 비로소 세상이 보인다. 자신을 세상의 중심으로 해 가까운 곳부터 알아 나가려면 그 첫 번째 수단이 지역 신문이다. 많은 이들은 지역신문이 너무 볼 것이 없다고 이야기한다. 반대로 이야기 하면 지역신문이 내놓은 뉴스와 이를 소비하는 지역의 신문소비자들 사이에 뉴스 가치에 대한 격차가 크다는 이야기다. 창밖을 보고 있는 독자에게 방 안의 이야기만 하는 판이니 그럴만도 하다. 하지만 시선을 돌리게 하지 못하는 것도 지역신문의 책임이다. 창밖에 머문 독자의 시선을 방안으로 돌리게 하는 힘이 없다는 이야기다. 길손의 외투를 벗기는 것은 바람이 아니라 햇살이다. 독자의 시선을 방안으로 돌리게 하기 위해 지역신문은 얼마나 고민을 했는가부터 반성할 대목이라는 이야기다.


 서울에서 발행되는 신문들은 새해가 되면 자신들의 싱크탱크를 통해 생산한 국가적 아젠다를 제시하고 자신들의 매체를 통해 그 아젠다를 전국적 이슈로 굳히려고 전력을 다한다. 창밖에 시선을 둔 지역의 독자에게 국가적 아젠다는 매력적이다. 이들의 시선에 고민 없이 만든 지역신문의 그저그런 뉴스는 기억될 리 없다. 독자들의 시선을 돌리게 하는 일은 다름아닌 지역신문의 몫이다. 지역신문이 자신이 살고 있는 지역의 유일한 대화통로가 된다는 사실을 인식하게 하는 뉴스를 생산하는 일이 그 시작이다. 새해 아침, 지역신문이 만들어 낸 지역의 아젠다를 보면서 떠오른 생각들이다. 울산신문은 새해 아젠다를 사람이 울산의 미래다로 정했다. 지역의 인재를 키우고 사람들을 하나로 연결하는 창구가 되기 위해 실천적 기획물을 준비하고 있다. 길손이 스스로 외투를 벗게 만들기 위해 뜨거운 열정으로 지역사회에 온기를 불어넣을 각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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