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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학비 생각에 눈앞 캄캄한데 이것저것 사달라는 아들에 짜증
옛날 부모님 조르던 내모습 투영 미안하고 죄송한 마음만 가득


대학입시철이다. 수능을 치른 고3 학생과 학부모들은 인생의 큰 관문 앞에서 많은 생각이나 감정들이 스쳐 지나갔을 것이다. 그 과정들을 겪으면서 어쩌면 자신이 만든 강한 잣대나 기준이 낮아지거나 부드러워져 마음 한켠이 조금 더 넓어지고 밝아 질 수도 있을 것이고 아니면 좌절감이나 실망감, 갈등이 눈덩이처럼 커져 힘든 시간을 보낼 수도 있을 것이다.  우리 아들도 고 3이고 일본에 있는 대학에 합격해 떠날 예정이다. 중학교 입학한 뒤 우연찮게 일본 10대 여배우를 좋아하게 되면서 팬클럽에 가입하고 출연하는 드라마에도 관심을 가지면서 일본어 공부를 하게 된 것이 계기가 됐다.

 기대를 안 하고 있던 차에 합격 통지를 전해 들었을 때는 날아갈듯이 기뻐 하루 종일 싱글벙글해지고 구름위에 두둥실 앉아있는 것처럼 붕 뜬 기분이었으며, 아들이 대견하고 자랑스러웠다.  그런데 그 기분이 얼마못가 서서히 걱정과 스트레스로 바뀌기 시작했다. 일본 사립대학의 교육비와 생활비가 만만치 않았던 것이다. 합격하기 전에는 막연하게 생각했었던 경제적인 부분이 막상 현실에 부딪치니 정신이 번쩍 드는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아들이 이것 저것 사달라거나 용돈을 자주 달라고 하자 애써 억누르고 있던 짜증을 쏟아냈고 그러고 나니까 은근히 미안하고 또 속상한 느낌이 들었다.

 그러던 어느 순간 나의 대학 입학시절이 생각났다.  집안 형편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당연히 다른 애들처럼 대학을 가야된다고 생각했고, 대학에 합격 했을 때는 합격의 기쁨과 스스로에 대한 자랑스러움, 새로운 변화에 대한 설렘과 기대 만으로 머릿속이 풍선처럼 부풀어 올랐지 학비나 부모님의 경제적 형편에 대해서는 전혀 아랑곳하지 않았다. 오히려 다른 친구들처럼 쇼핑하거나 마음껏 여행이라도 다니고 싶었는데, 마음대로 안되는 내 신세가 불쌍하고 처량한 기분이 들었고 그러면서 내 마음도 몰라주고 경제적으로 능력없어 보이는 부모님이 못나 보이고 원망스러운 마음도 느껴졌다.

 참 인간은 이기적이다. 어찌 보면 내 젊은 시절과 비슷한 상황이 됐는데 이제는 부모가 됐다고 부모 입장만 내세우며 아들의 철 없음을 불평하고 있다. 그 당시 아버지는 여러 자식 공부시키느라 회사에 가불해서 내 등록금을 준비하고 있었는데 나는 가난한 부모님을 무시하고 자신을 불쌍하게 여기고 피해자인 것처럼 느꼈던 것이다. 이제 우리 아들한테 능력 없는 부모로서의 창피함이나 미안함, 자존심 상하는 마음은 접고 훈계나 잔소리가 아닌 솔직한 대화로 함께 대학 경비에 대해 계획을 세워 볼 생각이다.

 자식이 원한다고 부모가 모든 걸 다 해 줄 수는 없다.  부모에 의존하지 않고 자신의 삶을 살아가도록 하기 위해서는 손 잡고 앞장서서 이끌고 가던 자세에서 아이가 스스로 세상 속으로 나아가도록 격려하고 힘을 실어 준 뒤 손을 놓고 조용히 뒤에서 지켜보며, 정말 도움이 필요할 때 잠시 어깨를 빌려주거나 손을 잡아줄 수 있는 넉넉한 마음을 준비해 두면 된다. 내 입장만 내세우며 원망하고 무시하는 마음을 느꼈던 부모님께 죄송스럽고, 짜증을 낸 아들한테도 미안하다. 그리고 내 자신도 괴롭히지 않고 당당하게 현실을 헤쳐 나갈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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