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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르시아 서사시 '쿠쉬나메'
6~7세기 신라 사회상 잘 묘사
1,500년전 이미 울산거쳐 왕래
세계화 콘텐츠 활용 가치 높아

 

신라는 글로벌을 지향하는 열린 사회였다. 북방으로부터 유목문화는 물론 남방의 독특한 문화도 받아들였다. 실크로드를 통해서는 당시 콘스탄티노플과 바그다드에서 유행하던 첨단 패션이나 디자인, 트랜드가 신라사회에 그대로 소개될 정도였다. 패션 전파속도는 1년을 넘지 않을 정도로 빨랐다. 그 결과 당시 콘스탄티노플 상류사회 여성들이 즐겨 애용했던 공작털 꼬리장식이 신라 귀부인들에게 전해지고, 페르시아 카페트, 로마-페르시아형 유리도 신라 상류사회에서 널리 사용됐다.

 송림사에서 발견된 사리함도 페르시아 유리의 특징을 강하게 담고 있다. 무엇보다 황남대총 북분에서 출토된 은그릇 표면에 조각된 아나히타 여신은 신라 왕실과 사산조 페르시아 간의 교류를 밝혀주는 중요한 단서가 된다. 고대 페르시아의 주신인 아나히타가 조각된 그릇이라면 교역품이라기 보다는 종교적 카리스마를 상징하는 제의적 성격이 강하기 때문이다.

 이외에도 신라시대 출토품 중에는 중앙아시아나 중동과의 교류를 말해주는 적지 않은 유물들이 발견됐다. 장식보감으로 알려진 계림로 단검! 페르시아 왕실의 전통을 닮아있고, 금은 세공의 누금 기법 등도 서역적 영향을 강하게 보인다.  물론 처용의 아랍인설도 그 중 하나이다. 이러한 충분한 역사적 개연성에도 불구하고 이를 구체적으로 증명해 줄 자료는 충분치 않았다. 지금까지 아랍 사료에 보이는 한 두 문장 길이의 부분적인 신라묘사나 섬으로 묘사된 지도, 아랍인들의 신라진출을 알려주는 단편적인 내용들이 전부였다.

 이러한 제한적인 신라의 대외 관계사를 획기적으로 보완해 줄 새로운 자료가 발굴되어 학계를 긴장시키고 있다. 바로 고대 페르시아 서사시인 '쿠쉬나메'다.  오랫동안 구전으로 내려오던 것을 11세기 이란샤라는 학자가 채록하여 필사로 남겨두었다. 대영박물관 도서관에 있는 필사본을 기초로 1998년 마티니라는 이란학자가 이를 책으로 출간한 것이다. 그 내용분석을 해보니 놀랍게도 약 800여쪽 중에 절반 이상이 신라 관련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는 것이다.

 6~7세기 신라의 산물과 궁정 생활, 페르시아 왕자와 유민의 신라 이주, 신라공주와의 결혼, 중국과의 전쟁, 화랑들의 폴로경기, 해로를 통한 교역에 이르기 까지 광범위하고 놀라운 신라 사회상을 담고 있는 것이다. 물론 정확한 내용이야 전체적인 해석과 비교 분석이 끝나는 3년쯤 뒤에 밝혀지겠지만, 쿠쉬나메란 책의 존재만으로 우리의 지대한 관심을 끌기에 충분하다. 630년경 아랍의 공격으로 멸망한 사산조 페르시아의 왕족과 유민들이 바그다드를 떠나 중국의 도움으로 해로로 신라에 까지 와서 정착했다면 그들은 필연적으로 경주의 입항인 울산을 거쳐가거나 그곳에서 일부 정착했을 가능성도 있다.

 신라에 상당기간 머문 이후 페르시아 유민들이 페르시아 왕자와 결혼하여 임신한 상태에서 신라공주를 데리고 바그다드로 돌아갈 때도 울산에서 신라 뱃사람들의 안내를 받았다고 하니 울산과 멀리 서아시아와의 교류와 접촉은 참으로 인연이 깊고 긴 역사를 가졌다 할 것이다. 오늘날 세계로 뻗어가는 국제항 울산의 면모가 1,500년 전부터 면면히 지속되어 온 글로벌화의 연장이라면 이에 걸맞는 울산의 브랜드를 재정립하는 것도 시급한 과제다. 트로인 전쟁을 묘사했던 호메로스의 '일리아드'나 '오딧에시아'를 능가하는 쿠쉬나메 대서사시의 번역과 해제를 지원하고 이를 통한 무궁무진한 문화콘텐츠 개발과 스토리텔링 상품화에도 적극적인 관심을 기울여 볼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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