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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심장을 붉은 오성기로 물들게 만들어라. '핑퐁외교 40년'을 맞아 후진타오가 미국을 국빈 방문한 어제, 뉴욕 타임스퀘어 거리 전광판에는 무려 하루 300회의 중국 홍보영상이 방영됐다. 뉴요커들은 앞으로 한달 동안 60초 가량의 중국 홍보 영상물에 쇄뇌될 판이다. 중국이 1년여의 제작기간 동안 공을 들인 이 영상물에는 농구스타 야오밍, 중국 최초의 우주인 양리웨이 등 중국을 대표하는 수십 명의 인물이 번갈아가며 중국을 소개하고 있다.
 올해는 마오쩌둥과 닉슨이 '핑퐁외교'로 미국과 중국의 국교를 정상화한지 40년되는 해이다. 1949년 10월 옛 중공이 성립한데 이어 한국전쟁에 참전했던 중국은 20여년간 미국과 적대관계를 지속했다. 해빙은 엉뚱한 곳에서 찾아왔다. 1971년 4월 세계탁구대회가 열린 일본 나고야에서 대표팀 버스를 놓쳐 발을 구르던 미국 선수 글렌 코완에게 좡쩌둥이라는 중국 선수가 손짓했다. 중국팀 버스에서 두 선수가 찍은 사진을 본 마오쩌둥이 미국 선수단을 초청하면서 '핑퐁 외교'가 시작됐다.


 중국은 이번 후진타오의 미국 방문을 통해 이른바 세계질서의 양대 축으로 중국의 위상을 확고하게 하겠다는 계산을 깔고 있다. 그 흔적이 후진타오의 말 한마디 발걸음 하나에서도 느껴질 정도다. 미 대륙의 횡단 철도를 16만 중국인 이민자들의 피땀으로 깔아 놓은지 한세기 만에 중국은 어느덧 열차의 귀빈으로 일등석에 올랐음을 미국과 세계에 알리고 싶은 모양이다. 바로 여기에 중국의 속내가 자리하고 있다. 중국이 '세계질서'라는 말을 직접적으로 입에 올린 일은 드물지만 지난 베이징 올림픽 이후, 아니 그 전부터 중국은 한족이 세계의 중심이라는 점을 부각하기 위해 다양한 시도를 전개해 왔다.


 바로 그 중의 하나가 역사왜곡이다. 동북공정으로 대표되는 중국의 역사왜곡은 사실, 신장과 위그루에 대한 서북공정부터 티벳과 베트남, 미얀마에 이르는 서남공정까지 이른바 중화주의의 핵심이다. 동북공정의 시작이 언제부터인지는 정확하게 따질 수 없지만 그 뿌리는 이미 1980년대부터 시작된 요하문명 왜곡에서 찾을 수 있다. 특히 지난 2001년 9월에는 중국정부가 연변 조선족자치주 왕청현에 '백의신녀(白衣神女)'라는 이름으로 높이 18m,무게 520t의 거대한 웅녀상을 제작해 세상에 알렸다. 양손에 마늘과 쑥을 든 백의신녀는 '한민족의 시조모'인 웅녀가 분명하지만 중국은 이 조각상을 중국 소수민족 가운데 하나인 '조선족의 시조모'로 바꿔 인테리어했다.


 요하문명은 예맥족의 문명이다. 요하문명이 발굴되기 전까지 세계의 4대 문명 발상지는 이집트, 메소포타미아, 인더스, 황하문명이었으나 1980년대 경부터 본격적인 발굴이 시작된 요하문명으로 인해 세계사는 수정이 불가피해졌다. 요하문명은 정설화된 세계 4대문명보다 무려 1000년경 앞선 문명으로 추정됐다. 고고학계가 충격에 빠진 것은 당연했지만 중국정부는 요하문명, 특히 그 중심인 홍산문화권의 발굴을 철저하게 숨겼다. 그동안 중국의 중심은 황하요 황하문명이야 말로 중국민족의 근간이라 생각하던 중국의 주류사회에 요하문명의 등장은 가히 충격이었다. 자신들의 자부심인 황하문명보다 1000년 경이나 빠른 문명이 황하가 아닌 오랑캐들의 땅에서 발굴됐으니 뒷감당 자체가 어려웠다.


 문제는 요하문명의 유물들이 중국의 황하문명과는 확연히 달랐다는 사실이다. 더욱 큰 문제는 요하문명의 근거지가 바로 고조선의 발상지이자 부여와 고구려의 근거지라는 사실이 중국 역사학계를 충격으로 몰아넣었다. 어떻게든 요하를 중국사의 주류로 끼워넣고 싶었던 중국은 발굴 성과를 바탕으로 요하문명의 주도세력을 황제(黃帝)족으로 설정하는 만행을 자행했다. 요하지역에서 발원한 모든 고대 민족이 황제족의 후손으로 설정한다면 중화주의에 합치된다는 이론이었다. 황제족의 후예가 요하의 주인이라는 사실이 자연스럽게 인정되면 이 지역에서 등장한 고조선과 부여, 고구려 등은 당연히 황제의 후예가 된다는 논리였다.


 중국은 이러한 요하문명권과 한반도의 연계성을 단절하고, 요하문명권을 세계 최고(最古)의 문명권으로 만드는 작업을 국가의 전략으로 수행하고 있다. 오늘 이 시점, 중국 국경 안에 있는 모든 민족의 역사를 중국사에 포함하려는 중국은, 황하문명권보다 이르고 발달된 '요하문명권'을 중화문명의 발상지의 하나로 재정립하고 있다. 이른바 '중국의 요하문명권'이 이집트나 메소포타미아 보다 이른 세계 최고(最古)의 문명이라는 논리가 그것이다. 그래야만 최고 문명을 가진 중국이 세계질서를 주도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는 중국의 억지논리가 그나마 먹혀들 것으로 계산하고 있는 셈이다. 지금 뉴욕 타임스퀘어 전광판에 붉게 물든 중국 홍보물도 바로 이같은 중국의 억지논리가 부끄러움을 모른채 번쩍이고 있다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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