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나는 2007년 3월부터 3년간 A사의 사외이사를 역임했다. 그 중 2년은 감사위원장 겸임이었다. 내가 아무런 연고가 없는 이 회사의 사외이사와 감사위원장이 된 것은 이 회사에 투자를 했던 소위 '장하성 펀드'의 요구에 의해서였다. 나는 불행한 사외이사였다. 그러나 불행한 사외이사는 나만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A사 뿐 아니라 상당수 회사에서 사외이사들은 아예 비리가 일어 나고 있는데도 아무 것도 모르는 바지저고리들이거나, 아니면 알더라도 비리에 한쪽 눈을 감아 버리거나 아니면 설혹 파헤치려고 노력하더라도 아무런 성과를 거둘 수 없는 불행한 사외이사가 될 수 밖에 없다는 것이 아직 우리 현실임을 듣고 있다. 내가 듣기로는 상당한 수의 대기업들에서 대주주/CEO들이 회사가 차지해야 할 떡을 자신이 가로채는 일들이 빈번히 벌어지고 있다. 그리고 일이 터지면 막강한 자금력과 네트워크를 이용해 무마하는 것이 비일비재하다는 것이다. 이것은 사실상 엄청난 부자인 대주주/CEO가 소액주주의 코묻은 돈을 훔치는 행위이다.

 대기업의 투명성을 제고하기 위한 펀드 운영에 관여하는 한 관계자에 의하면 자기가 투자 대상을 물색하면서 조사해 보니까 거의 규모가 1조원을 넘나드는 이런 류의 대주주 배임 행위들이 상당히 많은 기업에서 벌어졌던 것 같고 그것은 특히 IMF 이후 2000년대 초 몇 년간 집중적으로 일어난 것 같다고 했다. 있을 수 있는 일이라 생각한다. 왜냐하면 세상에 이같이 쉽게 돈 버는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합법적인 모양을 취하는 거래 형태를 취하기만 하면 한 번에 수십, 수백억원씩 벌 수 있는데 그 유혹에 빠지지 않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우리 소시민들은 단돈 10만원 잃어도 속이 매우 상한다. 그러나 자기가 일부 소유한 회사에서 그렇게 재산이 빠져 나간다는 것은 바로 자기 돈을 그 비율만큼 도둑질 당하는 것인데도 보이지 않기 때문에 모르고 지나고 있는 것 같다.

 한 마디로 보이지 않도록 하는 수많은 제도적 결함들이 있다. 일부는 보이는데도 무슨 이유인지 정치권에서 아무 손도 쓰지 않고 있는 경우도 있다. 그 가장 대표적인 것이 요즈음 문제가 되고 있는 회사의 사업 기회를 대주주가 편취하는 것이다.  대주주가 회사에 제품이나 서비를 납품하는 별도 회사를 세워 물량을 모두 그 별도 회사로 몰아줌으로써 떼돈을 버는 행위이다. 대주주 경영자란 한 마디로 소액주주들로부터 돈을 불려 달라는 위탁을 받고 코묻은 돈들을 굴리는 수탁자들이다.  당연히 그 경영자의 도덕적, 직업적 책임은 그 회사가 돈을 벌 기회가 있으면 그 회사, 즉 자기에게 돈을 맡긴 주주들이 벌도록 해드려야 하는 것이다. 자기가 그 기회를 가로채어 자기 배를 불리는 것은 얌체일 뿐 아니라 도덕적, 윤리적, 법적으로도 옳지 않다.

 선진국에서는 당연히 이런 행위에 대해 제한과 제제가 이미 오래 전부터 실시되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뻔하게 보고 있으면서도 아직까지도 아무런 조치도 취하고 있지 않다. 예를 들어, 이런 행위를 제한하는 상법 개정안이 국회에 상정돼 있는데도 벌서 2년 째 방치되고 있다. 대주주/CEO들의 어떤 로비가 어떤 형태로 가해져 왔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정치권이 이렇게 방치하고 있는 사이에 어느 새 상당수 대주주/CEO들이 소액주주들의 이익을 희생시키면서 자신과 자신의 자손들의 배를 채워 왔다. 참으로 심각하고 한탄스러운 일이다. '정의로운 사회'는 바로 이런 행위들이 근절되는 사회를 이른다. 이미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부자인 사람들이 더 부자가 되기 위해 소액주주들의 재산을 탐하는 것은 '정의 사회'의 근본에 어긋나는 짓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본가의 힘은 항상 막강하다. 그런 막강한 힘을 가진 자본가가 나쁜 짓을 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는 그만큼 막강한 제도적 장치들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현재의 우리 제도는 그러한 탐욕의 발현에 대항하기에는 너무나 미흡한 점이 많다. 우리가 대주주/CEO의 탐욕을 견제하는 일을 검찰에만 맡겨둘 수 있을까? 그것은 너무 안이한 생각이다.

저작권자 © 울산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