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거지는 잡념을 끌어들이는 자석이다. 물소리에 맞춰 눈과 손만 협응하고, 머릿속은 어수선하다. 애써 정신을 가다듬는데 침대 옆에 둔 찻잔이 생각난다. 찻잔을 가지러 가다 보니 사람 없는 화장실에 불빛이 새어 나오고 있다. 화장실 열린 문틈으로 치약이며 수건이 흐트러져 있는 게 보인다. 문을 왈칵 열고 들어가 청소를 한다. 욕조까지 닦고 나니 손대는 곳마다 뽀드득 소리가 날 것 같다. 개운한 기분에 커피나 한잔할까 해서 부엌으로 간다. 개수대에는 여전히 밥풀과 고춧가루를 묻힌 설거지 더미가 들어앉아 있다. 움직이는 틈마다 잡생각이 끼
영화 '리빙 : 어떤 인생'에서 주인공 빌나이가 부른 '로언트리'가 생각이 난다. 죽음을 앞두고 기억 저편에 있는 어린 시절이 마법처럼 얽힌 가지와 첫 새봄을 알리는 너의 잎새라며 내 소중한 나무라 노래한다. 무심히 서 있기만 한 나무이지만 누구에게는 위안이 되기도 하고 추억을 만들어 주는 소중한 나무가 되기도 한다. 그래서 나무에 대한 감정은 대체로 긍정적인 부분이 많은 것 같다. 완전한 나무 박라연 전신이 쓸쓸할 때 차오르는 저 가로수의 수액을 잠시 빌려 쓰면 어떨까 연두가 돋아나는 봄 가로수가 되려면 서서 잠드는 나무의 곁을
고요하게 흐르는 강물에 나룻배 한 척, 그 뱃머리에 대금을 부는 여인의 머리칼이 잔잔하게 날린다. 멀리 강기슭 대숲에서 바스락 소리가 들리자 백로, 왜가리 등 새들이 한꺼번에 날아오르는데, 그때 누군가가 허공을 가로지르며 하늘 높이 날아올라 부채를 '촤락' 펼치며 대나무 꼭대기에 외발로 섰다. 태화강 대숲을 지날 때면 가끔 이런 말도 안 되는 상상을 하곤 한다. 오빠들의 영향으로 무협 영화를 많이 보며 자란 탓이다. 태화강은 남편의 오랜 케렌시아 장소다. 새벽 다섯 시, 남편은 조용히 눈을 뜬다. 내가 깨지 않도록 주섬주섬 운동할
그동안 고위 관리나 CEO 등 소수만을 위한 것으로 여겨졌던 리더십 교육이 어린 학생에 이르기까지 그 범위를 넓힌 것은 불과 수년 전부터다.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아이들은 그 누구나 리더가 될 수 있으며, 리더로 나설 수 있어야 한다. 리더의 역할이나 위치, 모습 등 리더라는 의미는 수직적인 관계에서의 이끔이를 의미하는 단순한 정의를 벗어난다. 리더십이 특정 소수만이 가진 자질이 아니라는 말이다. 누구나 갖춰야 할 덕목으로서의 리더십을 키우는 것이란 오늘날의 아이들에게 꽤나 어려운 공부의 하나다. 홀로 자라는 경우가 대부분인 아
오늘부터 22대 총선 공식 선거운동이 시작된다. 여야 후보들과 정치권은 앞으로 13일 동안 표심을 잡기 위해 전력을 쏟을 것이다. 국회의원 선출의 중요성은 새삼 강조할 필요도 없다. 민의를 대변하고 법치주의의 출발인 입법권을 쥐고 있어서다. 하지만 지금까지 보여준 여야 후보들과 정당의 모습을 보면 유권자는 안중에 없는 퇴행적 행태에서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각 정당과 후보가 제시한 공약만 봐도 민생을 살피는 정책이 아니라 '선거만 이기면 상관없다'는 식이다. 나라 곳간은 비어가는데 '총선용 포퓰리즘' 경쟁을 벌이는 듯하다
자영업이 우리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큰 데도 정부가 시행하고 있는 저출생 지원대책 가운데 자영업자가 수혜자인 정책은 찾아보기가 힘들다. 한마디로 육아 휴직 및 근로시간 단축 때 금전적 지원을 받는 정책에서 자영업자들은 사각지대에 놓여있다는 뜻이어서 안타깝다. 일례로 '3+3 부모육아휴직제'는 올해부터 '6+6'으로 확대 개편됐다. 생후 18개월 내 자녀를 둔 부모가 동시에 또는 차례로 육아휴직을 사용하면 첫 6개월에 대한 육아휴직급여를 통상임금의 100%로 지원한다. 또 연초 경제정책방향에서 직장어린이집 위탁보육료 지원금을 비과
우리는 과연 단일민족일까? 역사를 되짚어 보자면 그렇다고 단언할 수만은 없다. 고려 때 이미 혼혈이 시작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의 역사는 외침과 함께였다. 우리나라의 지리적 특성은 인근 나라들의 길목일 수밖에 없고, 이런저런 이유로 우리나라를 오갔던 그들은 곱게 지나다닌 것이 아니었다. 약소국에서도 약자들인 여성들은 그 길목의 가장 큰 피해자였다. 성적 유린으로 숨어서 낳은 자식이 생겨났음은 슬프지만 인정해야 한다. 드러난 이야기의 주인공도 많다. 환향녀나 기황후 같은 인물이다. 이들은 혼혈과 절대로 무관할 수가
엔지니어링은 세상의 문제를 해결하고 더 나은 결과를 창출하는 일이다. 필자와 같은 엔지니어들은 종종 문제를 해결할 때 조금만 더 품을 들이고, 시간을 들여서 완벽한 기술적 해답을 제시하고 싶은 욕망이 있다. 이런 집요함은 결과물의 품질을 올리는 긍정적인 결과를 낳는다. 그러나 때로는 이런 집요함이 지나쳐, 투입하는 자원 대비 결과의 효용 가치가 그다지 높지 않은 경우를 종종 만들어 내기도 한다. 필자가 십수 년 전 모바일 메신저 개발을 위해 일본에서 일할 때의 이야기를 예로 들겠다. 일본의 대도시들은 전철역 간의 거리가 서울과 달리
아침 햇살이 부드럽게 과수원에 내려온다. 유성 같은 빛줄기가 나무 사이를 스며들며 황금빛으로 물들인다. 얇은 안개가 감싸고 있는, 그 안에는 붉은 사과들이 더욱 빛을 발한다. 아름다움은 마치 자연 그 자체가 현실과 꿈 사이에서 춤을 추는 듯하다. 나무 가지는 색종이처럼 반짝이며, 과실들은 붉은 보석처럼 그 위에 달려 있다. 시집간 누나를 따라 버스를 타고 처음 놀러 온 포항시 오천읍은 온통 붉은색 천지였다. 버스도 붉은색, 군가를 부르며 구보를 하는 해병대도, 사과도 붉은색이었다. 마치 열정의 도가니처럼 느껴졌다. 사과만큼 사람과
똑똑한 사람들은 많다. 말도 똑소리 나게 잘 하고 논리에도 맞는 것 같다. 그렇다고 정답이라고 할 수는 없다. 맞는 말인데 그것이 상대를 기분 상하게 하고 분위기에 안 좋은 영향을 끼쳤다면 변수가 되기 때문이다. 그게 어렵다. 이번 어떤 정당의 선거 공천에서도 평소 똑소리 나게 쓴소리하며 당을 비판 했던 사람들이 대부분 낙천당했다. 나름 합리적이고 날카롭고 옳은 지적이라며 싫은 소리도 용기내어 한다는 사람들이 대거 탈락한 것이다. 왜 내가 낙천되었느냐고 따져 봐야 결과는 바뀌지 않았다. 그것이 정치다. 칼자루를 쥔 사람은 아무리 똑
경남 산청군 금서면에는 돌을 쌓아 만든 이국적인 무덤이 있다. 그 무덤은 가야의 마지막 왕인 구형왕의 무덤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삼국에 가려 먼 후대까지 전해 내려오는 자료가 많지 않아 구형왕릉이라는 설조차도 제대로 인정받지 못해 앞에 전 자를 붙여 전 구형왕릉으로 불렸고, 최근에는 산청 전 구형왕릉으로 명칭이 바뀌었다고 한다. 돌을 네모로 깎아 쌓은 피라미드형 적석총의 모습도 이색적이었지만 역사책에 몇 페이지를 장식했던 가락국 가야라는 이름이 내 마음에 남았다. 한때는 화려한 왕국으로 찬란한 미래를 꿈꾸었을 그들의 시간이 잠들어
자연을 넓게 보면 참 아름답고 신기하고 질서 정연함을 느끼게 된다. 철 따라 꽃이 피고 열매를 맺고 다시 싹을 틔우는 자연의 순리가 인간에게 큰 이치를 깨닫게 한다. 하지만 그 속에는 치열한 생존경쟁이 벌어지고 있다. 약한 자가 강한 자의 먹이가 되는 약육강식의 현장이기도 하다. 이것이 자연의 생존 법칙이다. 그러면 이 자연 속에 인간생태계를 한번 보자. 인간은 이성과 양심을 가진 동물로서 옳고 그름을 판단할 줄 안다. 그리고 사회적 규범이 인간생태계를 지배하고 있다. 하지만 인간생태계도 생존경쟁이 없으면 발전할 수가 없다. 그것은
길고 춥던 겨울이 드디어 자취를 감추고 따뜻한 봄이 찾아와 우리를 설레게 하고 있다. 겨울의 끝과 봄의 시작을 알리는 매화는 이미 핀지 오래고, 올해는 벚꽃 개화시기도 앞당겨져 3월말부터 벚꽃을 볼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봄의 설레임과 더불어 우리가 기억해야 할 3월의 기념일이 있다. 달력 3월 22일에 쓰여져 있는 서해 수호의 날은 많은 이들에게 생소해 그냥 지나쳐버리고 마는 날일 수도 있다. 이날은 제2연평해전과 천안함 피격, 연평도 포격전으로 희생된 55명의 호국영웅들을 추모하고 그들의 공헌을 기리기 위해 대한민국 정부가
천년의 미소가 그윽하게 나를 쳐다본다. 이마와 두 눈, 오뚝한 코, 두 뺨의 턱 선이 서로 조화를 이루고 있어 볼수록 편안하다. 가만히 안아줄 것 같은 표정에 얼굴무늬수막새 앞을 오랫동안 떠나지 못한다. 경주에 위치한 국립경주박물관은 당시의 문화유산을 한눈에 볼 수 있는 곳이다.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문화유산인 경주역사유적지구 내에 있으며, 궁궐터인 월성과 월지, 능묘가 밀집된 대릉원, 대가람이었던 황룡사터와 가깝다. 신라역사관, 신라미술관, 월지관으로 이루어진 상설전시관과 특별전시관, 옥외전시장과 수장고가 있다. 신라역사관은 천년
매년 3월은 개학, 입학으로 학생들은 새 선생님과 친구들을 만난다는 설레임과 기대로, 또 입학하는 자녀에 대한 대견함과 기대감으로 학부모들의 마음도 뿌듯한 시기다. 그러나 3월의 교실이 아름답기만 할까, 학부모들의 마음 한편에는 혹시 내 아이가 이른바 '왕따' 등 원활하지 못한 교우관계로 학교생활에 적응을 잘 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도 동반하게 된다. 어느 리서치 설문 조사에서 어린 학생들에게 새 학기 고민에 대해 물은 결과 새로운 친구를 사귀는 것을 가장 큰 고민이라고 했다고 한다. 새 친구를 사귀는 가장 좋은 방법은 무엇일까?
울산이 다른 광역시도에 비해 대중교통이 열악하다는 문제는 아주 오래전부터 제기돼 왔다. 울산 면적이 서울의 1.7배 정도로 커서 시민들의 유류비·교통비 부담이 상당한데도 광역시도 중 유일하게 지하철이 없어 어딜 가려면 주로 버스를 타야 한다. 그래서 시민의 발이 되는 시내버스를 이용하면서 얼마나 만족하는지, 더 편하게 탈 수 있는 방법이 없는지가 과제였다. 울산시는 시내버스 이용률 향상을 위해 광역시 승격 이후 27년 만에 처음으로 시내버스 노선체계 전면 개편을 통해 좀 더 쉽게 이동하고 효율적으로 운영할 수 있도록 검토하고 있다.
한산도는 한산면의 주도이자, 한산대첩지로 잘 알려진 곳이다. 추봉도(秋蜂島)에서 북서쪽으로 0.5㎞ 지점, 통영에서 동남쪽으로 약 2.4㎞ 지점에 있다. 면적은 14.72㎢이고 해안선 길이는 30.0㎞이다. 한산도는 통영시의 유인도 중에서 가장 큰 섬이며, 한산면의 29개 유·무인도 중에서도 가장 큰 섬이다. 동쪽은 거제도, 서쪽은 미륵도, 북쪽은 고성반도, 남쪽은 용초도(龍草島)·추봉도·비진도(比珍島) 등에 싸여 있다. 추봉도와는 연도교인 추봉교를 통해 연결된다. 한산도라는 명칭은 섬에 큰 산이 있다는 데에서 한뫼(큰뫼)라고 부르
매체에 자주 등장하는 개념 중에 요즘 젊은 세대를 지칭하는 말로 MZ세대가 있다. MZ세대는 디지털 환경에 익숙하며, 최신 트렌드를 추구하는 특징이 있다고 한다. 그렇다면 MZ세대 다음 세대는 뭐라고 부를까? 바로 우리 아이들을 지칭하는 표현으로 알파(Alpha) 세대라고 한다. 알파(Alpha) 세대란 2010년 이후에 출생한 아이들로 현재 중학생과 초등학생이 여기에 해당한다. 그들은 태어날 때부터 '지O야~, 헤이 카O오!' 등의 소리를 들으며 자랐기에 그들에겐 인공지능과 사물인터넷 환경이 숨 쉬듯 익숙하다. 스마트폰이 없으면
'살아가는 힘은 어디에서 나오는가'는 미국의 야생 생물학자 마시코트렐 홀과 노인의학 전문의 엘리자베스 엑스트롬이 함께 쓴 책이다. 이탈리아와 그리스의 100세 이상 노인이 많은 장수촌을 탐사하고 '노화를 대하는 긍정적인 태도가 실제로 기대 수명을 7년까지 연장한다'라고 주장했다. 내용은 우리가 알고 있는 것들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신체능력이 떨어지는 것을 인정하라', '일이나 봉사 활동 등 목적성이 분명한 활동을 하라', '자주 웃고 관대함을 발휘하라', '일주일에 한번은 새로운 것에 도전하라', '젊은 친구를 사귀라' 등이
“여자가…. 그러면 안 된다카이. 니 미친나? 가시나가?" 그랬다. 엄마도 아버지도 그러다가도 “여자도 일해야 하고, 여자도 성공해야 된 데이…. 절대 집에서 밥하지 마래이" 늘그막에 엄마는 그랬다. 도대체 엉켜진 그녀의 정체성을 어찌해야 할까? 실은 내게도 많은 혼란스러운 정체성이 하나 있다. 여자와 사람 그사이에 낀…. 대한민국에서 여자로 살아가기라고 해봐야 내가 여자로서 지대하게 공헌하며 희생했다고 할 수 없어 그냥 헤게모니를 가지지 않은 '인간 장하영으로 살아가기'를 말해 보고자 한다. 많이 똑똑하거나 똑 부러지게 예쁜 것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