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동네에 사는 베트남에서 온 여성이 있다. 한 번씩 그 베트남 외국 여성은 아이와 함께 내가 운행하는 택시에 타곤 했다. 택시를 타고 가며 이야기하는 중에 자연스럽게 그녀의 사정을 알게 되었다. 그녀는 결혼이주 여성이었는데, 우리나라 60대 남자와 결혼할 때 나이가 겨우 20살 정도였다. 40년이라는 나이 차이가 있는 결혼이었음에도 베트남 여성은 정말 열심히 살았다. 그녀는 동네 작은 고물상을 운영하는 남편과 함께 밤낮으로 열심히 일했다. 언젠가 그녀의 손을 한 번 본 적이 있다. 20대의 고운 손이 아니라 막노동을 한 60대
대추는 꽤 늦게 열매를 맺는다. 아주 작은 열매가 올망졸망 달린 모습은 경이롭다. 그렇지만 그뿐, 여린 열매가 붉어지는 걸 보면서도 그러려니 지나치곤 했다. 그 안에 우주가 들어있을 거라는 생각은 추호도 해본 적이 없다. 국화 한 송이를 피우기 위해 소쩍새가 울고, 간밤에 무서리가 내렸다는 것처럼 시인이 읽어내기 전에는 깊이 들여다보지 못했다. 시인의 안목은 시를 읽는 독자의 안목까지 넓혀준다. 늦가을 햇살이 내려앉은 마당을 본다. 초록으로 빛나던 잔디마저 누렇게 퇴색한 채 햇살에 겨운 모양새다. 이파리를 모두 떨어뜨린 나무들은 앙
울산시민이라면 누구나 내 집 앞 공원처럼 드나드는 곳 중 하나인 울산의 대표정원인 태화강국가정원은 올해 봄부터 다시 많은 사람들이 찾아오고 있다. 코로나 팬더믹으로 국가정원이 관광지라는 이미지를 벗고 시민들의 산책과 힐링이 되어주는 역할을 하다가 다시 손님을 맞이하는 공간으로 탈바꿈하였다. 지난해까지 잔잔하고 조용한 공원 산책로인 마냥 느껴졌다면, 올해부터는 다시 다양한 음악, 행사, 이벤트 등이 등장하면서 옛 태화강국가정원의 모습을 되찾고 있다. 방문객들의 계측기 집계, 설문 데이터를 살펴보면 2022년 5월 대비 2023년 5월
이제는 두툼한 패딩을 꺼내 입을 정도로 추워진 날씨에 계절이 겨울로 접어들었음을 느낄 수 있다. 해마다 이맘때가 되면 정부와 병원에서는 독감 예방접종을 안내하는데, 일부 시민들 사이에선 독감백신을 맞아야 한다는 사람과 안 맞아도 된다는 의견들로 종종 언쟁을 벌이기도 한다. 그리고 독감을 '독한 감기'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일반인들은 겨울철 추운 날씨 때문에 기침과 재채기를 하면서 머리가 아픈 증상이 나타나면 감기에 걸렸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감기약을 먹어도 빨리 낫지 않고 증상이 심해지면 독감에 걸린 건 아닐까 하고 의
신문에서 어느 유명 여류 소설가가 쓴 글 중에 '친구를 선택하는 기준'이라는 것이 있었다. '즐거운가? 배울 점이 있나? 매력적인가?'라고 했다. 성별도 다르고 세대차이도 있으니 그대로 들어맞지는 않는다. 작가의 성별이나 나이에서는 그대로 맞는 말일 것이다. 내 기준은 '편안한가? 배울 점이 있나? 어울릴 공통점이 많은가?' 정도로 압축할 수 있다. 이 나이에는 편안한 사람이 좋다. 까다로워서 피곤한 사람이거나, 주장이 강해서 스트레스를 주는 사람은 피한다. 배울 점이 있으면 좋다. 단순히 지식의 차원이 아니다. 인터넷에 다 있기
공공기관에 민원전화를 걸면, 통화내용이 녹음된다는 안내와 함께 산업안전보건법에 따라 상담사 보호조치가 시행되고 있다는 취지의 전화연결음을 듣는다. 카드사, 은행 같은 곳의 콜센터도 반말이나 폭언을 하지 말아달라는 메시지부터 나온다. 몇 년 전엔 생소했던 “감정노동"이 이제는 친숙한 단어가 되었다. 전국에 직무상 고객을 응대하는 서비스업 감정노동자는 1,200만명에 달한다고 한다. 우리나라 전체 취업인구가 약 2,850만명인 것을 감안하면 취업인구 10명 중 약 4명은 감정노동자인 셈이다. 업무 중 고객을 대하는 일이 있다면 정도의
텃밭을 갈무리한다. 싱그러움도 지나고 탐스럽게 달렸던 과일들과 푸른 채소들도 이제 때가 다 된 것 같다. 텃밭에 남은 농작물이라고는 가을무가 전부다. 이것저것 다해봐도 그나마 괜찮은 것이 무다. 무는 채소 중에서 유일하게 이 밭에서 제대로 수확하는 농작물 중에 하나다. 야심차게 여러 농작물을 심었지만 제대로 수확한 농작물이 없었다. 인물 없는 푸성귀들을 이웃들에게 건네는 것도 조심스럽다. 그나마 무는 자식 농사에 빗대자면 체면치레는 해 주는 셈이다.주말농장을 경작하면서 무슨 전업 농부들의 농심을 따라가겠는가, 그러나 일을 시작한 지
찬 이슬이 맺힌다는 한로, 이름도 예쁜 이 한로라는 절기가 내 관심 안으로 들어오게 된 것은 얼굴도 본 적 없는 한 마리 새 때문이다. 이 이야기가 정확하게 몇 년 전 인지는 기억에 없다. 완성되지 못한 시 속으로 새를 끌어들인 것이 5년쯤 전이니 얼추 그 무렵이 시작점이 아닐까 생각한다. 덥고 습한 그해 여름 어느 새벽이었다. 난데없는 새 울음으로 잠에서 깨어났다. 불면증이 길어지면서 잠에 대해 유난히 예민해져 있던 때였다. 뒤척이다 새벽녘에 겨우 잠든 단잠을 날카로운 새 울음이 깨워버린 것이다. 무슨 새가 저리도 앙칼지게 우는가
꽁꽁 언 추위를 즐거운 유머로 녹이는 유쾌한 이야기 『호박 목욕탕』은 일본 통산 180만 부 베스트셀러 '빵도둑' 시리즈의 작가 시바타 케이코의 신작 그림책입니다. 사이좋은 세 친구인 곰이랑 알파카랑 고양이는 집으로 가는 길에 맛있는 냄새를 쫓다가 커다란 호박 목욕탕을 만나게 됩니다. 목욕탕 앞 간판에는 호박 안에 담긴 수프를 절대 먹지 말라고 적혀 있었지만, 배가 고픈 셋은 달콤한 수프를 배부르게 먹고 맙니다. 하지 말라는 일을 저지른 새하얀 세 동물에게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날까요? 줄거리를 보면, 곰이랑 알파카랑 고양이는 매일
우리나라 자동차산업이 짧은 기간 동안 눈부시게 발전해 왔다. 현대자동차는 1967년 12월에 설립되어 초창기 기술 전수의 스승 역할을 했던 해외 유명 자동차 메이커들을 추월하고 지금은 글로벌 TOP3에 우뚝 섰다. 초창기에는 영국 포드사로부터 부품 자재를 KD(knock down) 상태로 수입해서 조립 생산하다가 1975년 한국 최초로 국산 포니를 독자 개발하여 생산하게 된다. 처음 포니를 보고 '꽁지 빠진 촌닭' 같다는 핀잔도 들었으나 이것이 국산 차 대량생산의 기틀을 마련하는 계기가 되었다.여기서 중요한 것은 생산방식에 있어 새
들녘이 비워지는 늦가을이다. 까마귀가 전선에 무리지어 앉아 먼 하늘을 우러르는 모습을 보노라면 왠지 처연하다. 해마다 이맘때면 연례행사처럼 잊지 않고 꼭 한 번은 찾아가는 곳이 있다. 누구에게나 퀘렌시아가 있듯이, 나 또한 그런 곳이 있다. 울산에서 경주로 가다가 통일전 사거리에서 좌로 들어가 경주수목원 부근에 이르면 양지촌이 있다. 그즈음 입구에 차를 세우고 호젓한 길을 타박타박 걸어가면 솔숲의 짙은 향내와 바람 소리가 반겨준다. 천년 서라벌의 남산 자락, 돌 하나에도 느꺼운 숨결이 흐르고, 화랑정신이 자락자락 스며들지 않은 곳이
최근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우크라이나·러시아의 국가분쟁이 진행 중인 가운데 우리나라 또한 휴전 중인 국가로서 전쟁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상황으로, 국가안보를 지키기 위한 전국민적인 관심과 노력이 절실하다. 지난 10월 24일 북한 주민 4명이 소형 목선을 타고 동해 북방한계선을 넘어 귀순한 사건이 발생했다. 이 목선은 길이가 7.5m로 속초시 동쪽 11km 해상에서 우리 어민에 의해 발견됐다. 현재 북한 주민들은 국가정보원 북한이탈주민보호센터에 체류 중이고 북한 목선은 양양 해군기지로 옮겨졌다. 북한 목선의 정확한 이동경로는 파악되
국가통계포털(KOSIS)에서는 '1년에 1권 이상 도서를 읽는 사람'을 '독서 인구'로 정의한다. 통계에서는 13세 이상을 대상으로 해 조사한다. 이때 도서는 '교양서적, 직업 관련 서적, 잡지 서적, 생활 취미와 정보 서적, 백과사전, 육아서적'을 말한다. 교양서적은 '과학, 종교, 철학, 문학, 지리, 예술 서적'을 말하고, 교과서와 참고 서류는 제외된다. 이런 뜻에서 보면 독서를 많이 한다는 것과 공부를 열심히 한다는 것이 상관관계는 있을지언정 반드시 일치하지는 않아 보인다. 2023년 기준, 우리나라 전체 국민을 대상으로 보
무대 조명이 꺼지고 객석에 불이 켜진다. 숨죽이며 집중하던 사람들이 무장해제 되어 썰물처럼 공연장을 빠져나간다. 장내가 잠시 소란해진다. 저마다 공연과 배우에 대한 소감을 말하며 짧은 휴식을 취한다. 인터미션(intermission)이다. 인터미션은 막간이라는 뜻으로, 연극, 콘서트, 오페라, 뮤지컬 등의 공연 중간에 주어지는 쉼의 시간을 뜻한다. 공연이 주로 2~3시간 이어지는 경우가 대부분이어서 잠깐의 휴식을 두는 것이다. 오랫동안 아이들과 함께 생활하며 바쁜 나날을 보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일과는 늘 비슷해서 어느 날부터 무
패키지여행을 갔는데 일행 중 한 여성이 옆자리에 동석했다. 이런 저런 얘기를 주고 받았는데 내게 "도대체 직업이 뭐냐? "고 물었다. 아는 것도 많고 너무 많은 이력으로 뭘 하는 사람인지 헷갈린다는 것이었다. 거짓말로 둘러대거나 사기꾼인지도 모른다는 표정이었다. 인생 70년을 살다보면 여러 가지 직업을 거치게 되어 있다. 나는 유난히 자의적으로 직장을 자주 옮긴 것도 아니다. 첫 직장에서 아내를 만나 사내 결혼을 한 뒤 내가 나가야 했고, 다음 직장은 건설회사 구매직이라 세계를 돌아다니며 여러 가지 경험을 했다. 승진을 시켜야 하는
가을빛이 짙어가는 만추다. 영남알프스 주변에 살기에 길을 나서면 단풍 구경을 하는 호사를 누릴 수 있다. 오늘은 산 너머 밀양에 가보기로 한다. 십여 년 전 가지산 터널이 뚫리고 난 뒤부터 밀양으로 가기가 수월해졌다. 운전대를 잡은 남편은 평소라면 빨리 가는 가지산터널을 택했겠지만, 산허리를 돌아 오르는 석남 터널로 방향을 잡았다. 봄에 진달래꽃이 붉게 물들어 운치를 더하던 기암절벽은 울긋불긋 단풍이 들어 꽃처럼 화려했다. 음식점이 늘어선 석남 터널 앞에는 단풍을 구경하러온 차들이 즐비했다. 서행하며 그곳을 지나 터널을 통과했다.
최근 울산교육청 대강당에서 학부모, 교직원, 일반시민 대상으로 '회복적 정의 평화 배움 연구소' 에듀피스 대표 서정기 연세대학교 교육학 박사의 특강이 있었다. 내용은 '가정과 학교에서 실천하는 회복적 정의 회복적 정의란 무엇인가?','내 아이가 학교에서 갈등이 생겼을 때, 현명하게 대처하는 방법', '마음의 회복을 부르는 4단계 의사소통법' 등이었다. 강의주제는 매우 유익했다. 이 가운데 관심을 끈 것이 2016년 OECD자료에 따른 갈등지수가 멕시코(69.0P), 이스라엘, 한국(55.1P)으로 나왔다는 점이었다. 특히 세계 평균
제 둘째가 초등학교 입학한 후 첫 시험을 치고 나서 제게 물었습니다. "엄마, 개나리가 여름에 피는 꽃 맞지?" "…"당시, 딸에게 말은 하지 않았지만 여러 생각이 교차하며 복잡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요새야 하우스에서 생산해 내는 꽃과 작물이 많아서 그런 생각할 수도 있겠다 싶지만 20년 전 딸에게 받은 질문은 좀 당황스러웠습니다. 근데 그 딸이 지금도 묻습니다. 개나리가 봄꽃 맞나 아닌가.올 11월은 기온이 25도를 훌쩍 넘는 날이 많아 언양 어느 곳엔 때아닌 벚꽃이 피었다 하니 벚나무도 정신을 잃을 만하다 싶었습니다. 얼마 전,
우포늪은 끝이 보이지 않은 광활한 늪지, 태고의 신비를 간직하고 있다. 그는 날마다 넉넉한 가슴을 펼쳐 삼라만상을 안아 준다. 하늘이며 구름이며 포플러 그늘까지도. 나를 다스리기 힘들 때, 바쁜 일상으로 하루를 허덕일 때 거기에 가면 나도 안아 줄 것 같다. 그를 바라보면서 느린 걸음으로 하루를 진득이 걸어보고 싶다. 원시의 저층, 늪이 만든 이곳에는 -호랑나비, 배추흰나비, 북쪽비단노린재, -중대백로, 왜가리, 물닭, -가시연꽃. 닭의장풀, 마름, -버들붕어, 각시붕어 미꾸라지들이 일상을 버무려 조근조근 이야기를 하며 살아가고 있
꾀꼬리는 우리나라 사람의 정서에 많이 등장하는 새 중 한종이다. 노란색 깃과 여러 가지 울음소리로 사람의 눈과 귀로 쉽게 관찰되며 익숙했기 때문이다. 궁중정재 춘앵전은 춘앵(春鶯)에서 알 수 있듯이 봄 꾀꼬리를 바탕으로 창작된 춤이다. 조선 순조의 아들 효명세자가 만들었다고 전한다. 화려한 한삼(汗衫)을 낀 양팔을 한껏 들어 올렸다가 다시 뒷짐을 지는 듯 등 뒤로 모았다가, 아장아장 앞으로 나아가면서 하얀 이를 살짝 보이며 곱게 웃는 미롱(媚弄) 화전태(花前態)는 판소리로 비유하면 절창이다. 여령(女伶) 복식의 윗옷은 황초삼 혹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