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래재는 영남알프스의 남쪽 산군인 천황산에서 약간 벗어난 밀양 정승봉 사이에 있는 길로 일명 가래나무 골에서 단장면 구천마을 삼거리까지 이어지는 고갯길을 말한다. 예로부터 고개가 너무 높고 기상 상태가 수시로 변덕스러워 고갯길을 넘어가다가도 위험해서 다시 돌아오는 일이 다반사이어서 갔다가 다시 돌아온다는 뜻으로 도랫재라고 부르기도 한다. 아주 오랜 옛날 밀양 단장면에 사는 한 농부의 딸이 산내면 시례골에 사는 화전민의 아들에게 시집을 가게 되었다. 그때 그 시절엔 시집가고 장가가는 것은 본인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양가 부모들의 뜻에
맑다 못해 소름이 끼칠 정도로 검푸른 철구소! 계곡은 속살을 완전히 드러낸 채 신비로움을 자아낸다. 철구소는 천황산과 재약산에서 발원한 물줄기가 주암계곡으로 흘러들면서 만들어진 최고의 걸작품이라 할 수 있다. 울산에서 69번 지방도로를 따라 석남사를 지나 배내고개를 넘어 이천 방면으로 0.5㎞ 정도 가면 오른쪽에 강촌가든과 산천가 민박 간판이 눈에 들어온다. 이곳에서 오른쪽 길을 따라 안쪽으로 조금 들어가면 철제 출렁다리가 보이고, 철구소는 이 철제 출렁다리에서 오른쪽으로 30여m 지점 계곡에 있다. 철구소는 깊이가 약 9m, 둘레
영남알프스의 서쪽 변방에 자리 잡은 억산은 기이하게도 산꼭대기가 두 갈래로 갈라져 있다. 용이 되지 못한 이무기가 도망치면서 꼬리로 산봉우리를 내리쳐서 두 개의 산봉우리가 생겼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억산은 '수많은 하늘과 땅, 그리고 우주'라는 의미의 억만건곤(億萬乾坤)에서 유래된 것이다. '하늘과 땅 사이의 수많은 산 가운데 명산'이라는 뜻으로도 해석된다. 또한, 억산은 운문지맥의 한 구간으로 주봉인 운문산에서 남서쪽으로 2㎞ 정도 떨어진 거리에 있다. 억산을 찾아가려면 신라 때 창건한 청도 방면의
울주군 상북면 이천리(배내)에는 심종태 바위로 불리는 큰 바위가 하나 있다. 이 바위는 천황산(사자봉) 과 재약산 (수미봉)의 높은 봉우리가 동쪽으로 내려오면서 형성된 지형에 자리 잡고 있다. 소위 '하늘 널마루' 사자평이라 불리는 평원이 끝이 보이지 않을 만큼 펼쳐지다가 갑자기 급강(急降)하는 동쪽 사면 절벽으로 주암계곡과 인접하는 곳이다. 바위는 높이가 30여m, 둘레가 20여m나 되며, 오래된 소나무와 잡목들이 바위 주변에 자생하고 있어 곁으로는 잘 보이지 않는다. 바위 아래에는 동굴이 하나 있는데 10여 명이
시살등(981m)은 경상남도 양산시 원동면과 하북면 경계에 있는 산봉우리로 영축지맥의 한 구간이다. 시살등 동쪽 지산리에는 임진왜란 당시 영축산 절벽을 이용하여 쌓은 테뫼식 석축인 단조성(丹鳥城)이 있다. 임진왜란 당시 아군은 단조성을 거점으로 왜군과 치열한 전투를 벌였으나 중과부적(衆寡不敵)으로 산성이 함락되었다. 산성에서 후퇴한 아군은 시살등에서 전열을 정비하여 다시 전투를 시작하였고, 몰려드는 적을 향해 모든 화살을 퍼부었다. 해서 이 봉우리를 시살등이라 불렀다. 즉, 화살-시(矢), 화살-살, 돌 비탈길-등이다. 시살등 서쪽
천성산은 예로부터 깊은 계곡과 폭포가 많고 또한, 경치가 빼어나 소금강산이라고 불리었다. 세종실록지리지에 '양산의 진산은 원적산(圓寂山)이다. 천성산(千聖山)이라고도 부르며, 소금강(小金剛)이라고도 부른다'는 기록이 있다. 천성산의 유래는 원효대사가 천명의 대중을 이끌고 이곳에 이르러 89암자를 건립하고, 화엄경을 설법하여 천명 대중을 모두 득도하게 한 곳이라 하여 그 이름을 천성산(千聖山, 천명의 성인)이라 불렀다고 전해진다. 원적산에는 걸뱅이 잔치바위라 불리는 바위가 있다. 마치 호랑이 털을 닮은 얼룩덜룩한 형태로
지룡산은 경상북도 청도군 운문면 신원리에 있는 산이다. 울산에서 언양을 지나 청도방면으로 가다 보면 운문터널을 지나게 된다. 터널을 지나면 신원천 이어지고 운문산 자연휴양림을 지나 삼계리 마을에 도착한다. 삼계(三溪)는 세 곳의 물이 합수되어 흐르는 계곡이다. 이곳에서 5분 정도 청도방면으로 가면 운문사 입구 방지초등학교 문명분교가 있는 신원(옛 이름:염창(鹽倉) 삼거리마을에 도착한다. # 경북 청도군 운문면 신원리 일대신라 후기 지금의 운문면 신원리 내포에 한양에서 낙향한 선비 부부가 혼기가 넘은 무남독녀와 함께 살고 있었다. 선
# 채이짝만 한 지네·서말지 솥뚜껑만한 거미 살던 곳문복산은 경상북도 청도군 운문면과 경주시 산내면 대현리에 걸쳐 있는 해발 1014m로 영남알프스 최북단에 있다. 이 산 동쪽 8부 능선에는 드린바위(최근 들어 코끼리바위)라 불리는 높이가 130m, 둘레가 100여m에 이르는 높고 큰 층암으로 이루어진 바위가 있다. 마을 사람들은 바위의 형상이 마치 허공에서 산 아래로 드리워져 있는 것처럼 보인다고 해 이 바위를 드린 바위라고 불렀다고 한다. 이 바위에는 옛날부터 전해져 내려오는 전설이 하나 있다. 오래전부터 이 바위는 험한 곳으로
필자는 지난 1980년부터 최근까지 영남알프스 주변의 산과 계곡, 전설의 현장을 직접 찾아 사진을 찍기도 하고 다니기를 수없이 거듭했다. 그곳에 거주하는 나이 많은 어르신들에게서 직접들은 이야기들을 채록하기도 하고, 곳곳에 전해지는 폭포, 바위, 고갯마루, 동굴, 산골짜기 등 사람들의 발길이 닿는 곳마다 이야기를 품고 있어 '인간의 삶은 이야기이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그동안 수집한 이야기들을 글로 수록하여 모은 것들은 40~50여 편에 남짓하다. 곳곳을 찾아다니며 전설을 채록하고 전설의 현장을 사진으로 남겨야겠
겨울은 침묵의 계절. 이 계절에도 내가 꿈꾸는 쓸쓸한 아름다움이 곳곳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을까. 내가 순간에 경탄하고. 눈이 멀어버리고 마음이 녹아내릴 듯한 그런 풍경을 겨울에도 볼 수 있을까. 그리하여 내가 나를 벗어나 새로운 나로 거듭날 수 있을까? 독일의 문호 괴테의 에 '경탄'에 대한 구절이 실려 있는 글이다. 사람들은 제각기 겨울 산을 걸어가는 동안 많은 아름다운 풍경들을 만나게 된다. 그러나 그 풍경들을 만날 때 느끼는 감흥은 저마다 다르다고 한다. 조선 초기의 문장가였던 김시습은 아름다운 경치를
한 해가 저물어 가고 있다. 소리 없이 떨어져 날리며 뒹구는 나뭇잎을 바라보면 왠지 쓸쓸한 느낌마저 든다. 한국전쟁이 끝난 후 땅뙈기 한 평 없는 가난한 화전민들이 살았던 하늘 아래 가장 높은산동초등학교 고사리 분교가 있었던 천왕산 사자봉, 사자평으로 천천히 걸어가 본다. 시원한 공기를 마시며, 높은 하늘을 쳐다보며, 바람에 휘날리는 억새를 바라보고, 자연을 즐기며 넓은 평온을 즐겁게 걷다 보면 우리의 마음은 젊고, 순수하고, 아름다움을 느낀다. 천황산(사자봉)은 영남알프스의 주봉인 가지산이 남서진하면서 능동산에서 허리를 틀어 둘로
아침에도 아름답고 저녁에도 아름답다. 맑은 날에도 아름답고 흐린 날에도 아름답다. 단풍도 아름답고 바위도 아름답다. 멀리 보아도 아름답고 가까이 다가가도 아름답다. 어디를 가든 아름답지 않은 것이 없고, 어디를 함께하여도 아름답지 않은 것이 없다. 조선 후기의 문인 이옥(李鈺)의 중흥유기(重興遊記)에 실린 글이다. 그렇다. 지금 이때쯤 전국의 산천이 아름답지 않은 것이 있을까? 점점 깊어만 가는 가을. 가을이 아름다운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필자는 유독 무더운 여름이 지나고, 아침저녁으로 서늘한 공기와 구름 한 점 없는 새파
등산의 기쁨은 정상을 정복했을 때 가장 크다고 한다. 그러나 내게 최상의 기쁨은 험악한 산을 오르는 순간에 있다. 길이 험하면 험할수록 가슴이 뛴다. '인생에 있어서 모든 고난이 자취를 감췄을 때를 생각해보라. 그 이상 삭막한 것이 없으리라.' 독일의 철학자 니체의 말이다. 역경에 처했을 때 우리는 가슴이 뛴다고 말한다. 고난과 어려움을 이겨내며 오른 산의 정상은 그 기쁨이 곱절은 될 것이다. 필자가 지금껏 산을 오르면서 산바람에 땀과 피곤함이 함께 씻겨나가고 그 여정에 가장 가슴이 뛰었던 영남알프스의 9봉 중 신불산
'사는 것이 외롭다고 느낄 때는 지리산의 품에 안기고, 기운이 빠져 몸이 처져 있을 때는 설악산의 바위 맛을 보아야 한다'라는 말이 생각나는 계절.가을 억새가 손짓하고 영남알프스의 암벽이 유혹하는 에베로릿지와 억새들이 군무를 이루는 억새 천국 영축산. 영축산은 영남알프스 주봉인 가지산이 남서진하면서 간월산과 신불산, 영축산으로 이어지는 양산부산권 낙동정맥의 분기점이라 할 수 있다. 산의 동쪽 사면은 깎아지른 듯한 급경사를 이루고, 서쪽 사면은 완만한 지형을 이루고 있다. 영축산에서 신불산으로 이어지는 60여만 평의 펑
예로부터 고헌산은 언양현의 진산(鎭山)으로 불렸다. 동국여지승람 언양현 산천조(山川條)에 '고헌산은 고을 북쪽 10리에 있는데 진산이다(高窟山在縣北十里鎭山)'라고 했다. '고함산' 또는 '고디기'란 별칭도 있으며, 소가 드러누운 형상을 하고 있다 하여 '와우산'이라고도 부르고 경주 산내 사람들은 고함산이라 부른다. 산의 동쪽 사면(980m)에는 가뭄에 기우제를 지냈다는 용샘이 있다. 용샘은 가뭄이 들면 언양 사람들이 기우제를 지냈던 곳으로 구량천으로 흘러 태화강(太和江)에 이
문복산(文福山)은 영남알프스의 1,000m 고봉 중 최북단에 있는 막내 격인 산이다. 낙동정맥이 서서히 남하하면서 영남권에 접어들고, 고헌산에서 한숨을 고른 뒤 외항재를 지나 낙동정맥의 분기점(894.8m)에 이른다. 이곳에서 한 줄기는 운문령을 넘어 영남알프스의 주봉인 가지산에 다다르고, 다른 한 줄기는 북쪽으로 허리를 틀어 학대산을 지나 문복산을 이룬다. 문복산이란 이름의 유래는 명확하지 않다. 한국 땅 이름 큰사전에는 문복(文福)이라는 승려가 이 산에 들어와 평생 도를 닦고 살았다 하여 그의 이름을 따서 문복산이라고 불렸다고
운문산은 영남알프스 최고봉인 가지산(1,241m)에서 남서방향으로 분기(分岐)해 생긴 봉(峰)이다. 운문산을 호거산(虎居山)이라고도 하고, 밀양 방면에서는 사방이 바위 절벽으로 돼 있어서 '한바위산'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또한 운문산은 억산, 구만산, 육화산과 연결되며 운문지맥의 최고 봉(峰)이기도 하다. 산자락에는 밀양 제2얼음굴이라 불리는 천연석굴이 있고, 깊은 협곡과 사람의 발길이 잘 닫지 않는 천문지골을 비롯해 심심이계곡, 상운암계곡이 있으며, 선녀폭포, 비로암폭포, 석골폭포, 이끼폭포 등은 1년 내내 수량이
울주군의 '영남알프스 완등' 프로그램과 연계, 필자는 가지산을 시작으로 영남알프스 9개봉에 관련해 순차적으로 산의 개요와 산에 얽힌 전설, 이야기 등을 소개하고자 한다. 그 첫 번째로 가지산을 소개한다. 가지산은 백두대간(白頭大幹)의 태백산 줄기인 구봉산에서 남쪽으로 갈라져 경상남도에 진입하면서 최고로 솟은 해발 1,241m로 영남알프스의 주봉(主峯)이다. 정상에 올라서면 영남알프스의 산군들이 한눈에 들어온다. 동쪽으로는 간월산, 신불산, 영축산이 서쪽으로는 운문산, 억산, 구만산이, 남쪽으로는 천황산, 재약산, 향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