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해가 가고 또 다른 한 해가 와도어제의 시간이 오늘의 연속이듯이해가 뜨고 지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마는그래도 한 번쯤은 그 불타오르는 붉은 아침이 그리워외딴 바다를 찾았습니다. 지나온 흔적이 부끄럽고살아갈 길이 막연한 늘 변두리에서만 떠돌던 중년의 걸음도이루지 못할 꿈 한 번쯤 품어보고,담아내지 못할 희망이라도 바라보고 싶은 마음이었습니다.희뿌연 구
신불산에서 바라본 풍경입니다. 중첩된 명암으로 사라지는 산과 산이 만든 그림은 그 끝을 가늠하기 힘듭니다. 영축, 천황, 취서, 능동. 이 아름다운 이름을 가진 산들의 품은 넓고 깊습니다. 울울창창 숲을 품고도 교만하지 않으며 산허리 어느 곳을 잘라 길을 내어 주고도 오만하지 않으며 사람에게 정상을 허락하고도 절대 굴복하지 않습니다. 또 계절에 따라 늘 새
출근길 머릿속까지 시원해지는 차고 명료한 날씨가 정신을 번쩍 들게 합니다. 군더더기 없는 높은 하늘 아래 목적 있는 걸음이, 요즘 같은 어수선한 세상엔 때로 기쁨이곤 합니다.일과 전 늘 연필을 깎습니다. 날카로운 칼날이 스치면서 타원으로 일어서는 부드러운 나무의 곡선과 잠자던 나무의 향과 연필심의 곧은 가지런함이 기분을 정갈하게 합니다.지난 몇 개월 동안
경주 삼릉 숲의 새벽입니다.무채색의 물 입자들이 안개라는 이름으로 숲을 채웁니다. 사물들은 스멀스멀 오르는 공간 속에서 색을 버리고 형체만을 가지다, 그마저도 서서히 잃어갑니다. 길이 옅어지고, 소나무의 거친 질감이 뿌옇게 사라져갑니다. 긴 시간의 시련도 굴곡도 안고 가는 저 푸른 생명은 태연히 기다릴 뿐 햇볕을 재촉하지 않습니다.성성한 기운의 소나무 숲은
전남 여수의 야경입니다.한때 모터사이클을 타고 세계 일주를 같이 하자던 친구가, 좀 쉬고 싶다고 떠난 길에 보내준 사진입니다. 아직 가슴이 뜨거웠던 시절, 같이 바람을 가르며 달리던 라이더이자 예술의 끈을 잡으려 허우적거렸던 동료였습니다. 막걸리를 앞에 놓고 예술과 외설의 결론 없는 이야기로 희뿌연 한 새벽에서야 술집을 나서던 그 허망함의 시간을 함께 건너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에 궤적을 그리며 비행기 한 대 날아갑니다. 차갑고 습한 상공에 배출된 비행기 연소가스가 냉각되면서 생기는 비행운이 꼬리처럼 달리는 현상입니다. 그래서 그날의 기상에 따라 길거나 혹은 넓거나, 오랜 시간이거나 짧게 생겨났다 사라지곤 합니다. 이 세상 모든 것들이 이렇듯 다 유한해서 생성되면 언젠가는 소멸합니다. 사람도 흔적을 남깁니다.
경주 동궁원 식물원의 풍경입니다. 자연을 고스란히 옮긴 인위적인 시설물입니다. 기와집 모양의 유리온실에 세계의 식물들을 모았습니다. 바람은 비켜가고 햇살은 걸러지고, 문득 이곳에서는 은유의 시간이 흘러갑니다. 날것 그대로의 것들은 존재하되 왠지 원래 그것이 아닌 것처럼 느껴지는 것들의 세상입니다. 그 낯선 것들의 사이로 난 좁은 길을 따라 걷습니다. 어느
가을빛이 말갛게 씻기는 시간. 햇살은 투명하고 바람은 잔잔한 오후, 어느 집 지붕의 고양이가 눈길을 잡았습니다. 파란색 슬레이트를 깔고 누운 녀석의 낮잠은 한없이 깊고 평온해 보입니다. 가끔 불어오는 바람이 털을 헤집고 깨우지만 아랑곳하지 않습니다. 영역 다툼의 경쟁에서 벗어난 은밀한 공간에서의 저 밀도 높은 단잠은 원형질 속에서만 존재하던 야생의 유전자일
경주 읍천항의 풍경입니다. 어느 어부의 아낙이 말려놓은 생선이 바람에 흔들립니다. 한때 대양을 떠돌던 삶이었겠지요. 물결 따라 흐르던 생의 배경이 바람 따라 흐르는 하늘로 옮겨졌습니다. 비늘을 벗고 가슴을 비운 채 가을 햇살 아래 표백되는 망향의 시간. 그 치열했던 유영의 기억은 이제 박제된 과거일 뿐입니다. 얇은 끈 하나에 지탱되는 긴 마름의 시간 끝,
울주 두동 문원골 문화촌 풍경입니다.지붕 위의 까치 일가족 오순도순합니다.시리도록 푸른 하늘이 텅 빔의 여백인지, 꽉 찬 배경인지 알 수 없습니다. 어김없는 시간은 숲을 원색으로 물들였습니다.비움과 채움의 때를 아는 자연의 정직함은 시기하지 않고 욕심내지 않고 유유자적합니다.사는 게 종잡을 수 없고 믿을 수 없어악다구니하며 내 것으로 만들어야 했던 사람의
버림의 붉은색마저도 열정이 되는 시간 가을, 7번 국도에 섰습니다. 삶의 행간이 복잡할 때나, 너무 식상하다고 생각이 들면 버릇처럼 국도를 탔습니다.그 길, 영덕 어디쯤 바다와 산과 하늘이 분할된 공간 속으로 나아가면멀리 벗어난다는 안도감의 이면에 돌아갈 길이 멀어진다는 막막함이 중첩되곤 했습니다. 계절은 낡은 믿음처럼 자주 어긋났습니다.여름은 오래도록 머
태화강 100리길 4구간 중 복안저수지 길가 풍경입니다. 싹을 틔우고 꽃과 열매를 맺던 한 생애가 마지막으로 일군 한 송이 꽃입니다. 햇살과 바람과 비와 구름이 어울린 찬란했던 시간은 가고, 진갈색으로 변한 고목의 삶이 문득 쓸쓸합니다. 알 수 없는 시간에 버섯 포자가 자리를 잡았습니다. 썩어가는 주검에 뿌리내려 피운 화사한 색이 나무의 유언처럼 선명합니다
경주 양동마을 서백당의 향나무입니다. 월성 손씨와 여강 이씨의 집성촌인 양동마을은 500여 년의 역사가 존재합니다. 설창산에서 내려온 물勿자형 명당으로 그 중턱에 손씨 종택인 서백당이 자리합니다. 조선 석학 우재 손중돈과 회재 이언적 선생이 태어난 곳으로 3인의 현인이 탄생한다는 이야기가 전해져옵니다. 지금도 서백당은 시집간 딸이 출산을 위해 오더라도 안방
어느 하늘 아래 미치도록 붉은 사랑이 피었다 쓰러집니다. 일생 꽃은 잎을 만나지 못하고 잎은 꽃을 보지 못합니다.한줄기에 나서도 서로의 존재를 알지 못하는 그 애절한 그리움으로 사람들은 때로 상사화로 오인하기도 합니다. 꽃무릇으로 더 알려진 석산은 수선화과 다년생 식물입니다. 9~10월 사이 꽃이 피고 꽃이 지고, 그제야 잎이 나오는 꽃무릇은 열매를 맺지
한여름 볕을 견디어 낸 연밥입니다. 청초하고 영롱한 꽃이 품고 키워낸 한해의 결과물입니다. 꽃봉오리 안에 알알이 박힌 초록의 구슬이 농밀한 여름 볕을 지나며 짙은 갈색으로 영글어갑니다. 땡볕이 스러지고 조금씩 세상이 가벼워지면 연밥은 꽃이 진 자리에 홀로 섭니다. 천 년을 견딘다는 견고한 껍질 안에서 연은 아득한 미래를 기약합니다. 진흙탕을 딛고 섰지만,
범서 구영못의 풍경입니다.낚싯대를 펼쳐놓고 어신을 기다리는 꾼의 마음은 조과釣果를 기대합니다. 물고기의 입맛을 유혹할 향기 안에 치명적인 날카로운 바늘을 숨긴 채, 기다림을 감내합니다. 가끔 녹아 풀어진 떡밥을 교체하거나, 약은 입질에 빼앗긴 지렁이를 새로 끼우는 것 외엔 늘 모든 신경은 초릿대에 집중합니다. 가늘고 긴 낚싯줄 하나로 물밑을 보는 꾼은 가녀
양산 하북 한송예술인촌 어느 집 앞의 풍경입니다.여리고 앳된 꽃들이 자리 잡은 축대 사이 계단에 세운 물고기 모양 우체통입니다. 정원에 줄지어 선 조각을 구경하려 함부로 들어가려던 발길을 잡아 한참이나 바라보았습니다.기계적 장치 없이 스테인리스로 이루어진 뱃속이 소식을 넣을 공간입니다.차가운 금속이 품을 따뜻한 소식은 이질적이지만, 평생을 뜬눈으로 지내는
거제 여차해안도로 비포장도로 끝의 풍경입니다.굽이지고 덜컹거리는 산길을 따라 섬의 속살 속으로 들어가서야 만나는 숨은 바다입니다. 매물도, 어유도, 병태도 같은 순한 이름을 가졌거나 혹은 가지지 못한 섬들이 점점이 자리 잡았습니다.섬이 선사하는 또 다른 섬들 위로 어느 순간 해무가 피어올랐습니다. 섬이 지워지고 바다가 사라지고 하늘마저 무채색으로 물들어갑니
서생 나사리 마을의 벽화입니다.날고자 하는 인간의 욕망이 실현된 지 벌써 100여 년이 지났습니다. 여건만 된다면 어디든, 언제든지 날 수 있는 현실이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스스로 날고자 하는 욕망을 갈구하는 듯합니다.하얀 날개를 배경으로 두 팔을 벌리고 하늘을 응시하는 사람들의 표정은 순진무구하거나 진지합니다. 하늘을 훨훨 나는 자유로운 영혼을 꿈꾸던 나
남구 강변로에 우뚝 선 가로수입니다.파란 하늘, 흰 구름이 어울린 서정성 짙은 그림에 얼핏 고흐의 사이프러스 나무가 지나고 담양의 메타세쿼이아 길이 스치기도 합니다.태양의 격정 아래 초록의 잎새들은 그늘을 품을 때 더욱 아름답습니다. 예전 범서일대 언양 가는 국도를 따라 무궁화가 많았습니다. 20~30년씩의 세월을 간직했던 그 울창함은 도로 확장과 함께 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