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재지 : 울산 울주군 두동면 만화리 산30-2번지 범서면 척과리 산152울산광역시 기념물 제1호지정일 : 1997년 10월 9일시대 : 신라박제상은 신라 눌지왕 때 활동한 충신이다. 박제상은 양산 지방의 토호 세력으로서 삽량주간(歃良州干)이라는 직책에 있었다. 그는 418년 왕명을 받들어 고구려에 가서 장수왕을 언변으로 회유하여 인질로 잡혀 있는 왕의 동생 복호를 구출하고 무사히 귀국하였다. 다시 왜국에 볼모로 있던 또다른 왕의 동생 미사흔을 구출하기 위해 부인의 간곡한 만류를 뿌리치고 왜로 떠났다. 미사흔의 구출에는 성공하였으나
소재지 : 울산광역시 중구 백양로 67 (성안동, 백양사)울산광역시 유형문화재 제28호지정일 : 2013년 8월 16일시대 : 조선백양사 사역 서쪽 언덕에 위치한 부도는 전각형에 편구형 탑신을 지닌 전형적인 조선후기 부도의 양식을 띠고 있다. 기단부의 하대석과 중대석, 상대석을 비롯하여 구형의 탑신과 팔각의 전각형 옥개석 그리고 상륜을 모두 갖춘 완형의 부도이다.전체적으로 표면의 치석수법이 거칠지만 단독으로 부도전을 마련하여 건립하였을 뿐 아니라 크기에 있어 비교적 대형에 속한다. 이 같은 양식은 조선후기 부도의 전형적인 모습으로
소재지 : 울산광역시 중구 백양로 67 (성안동, 백양사)울산광역시 유형문화재 제27호지정일 : 2013년 8월 16일시대 : 조선 백양사 신중도는 덕운영운을 수화승으로 정행과 전호 2인의 화승이 동참하여 1878년에 제작되었다. 신중도는불법을 수호하는 신들을 묘사한 그림으로, 신중은 원래 고대 인도 신화에 등장하는 신들로, 부처의 설법을 듣고감화하여 호법선신이 되었다.채색은 명도가 높은 적색을 주로 사용하고, 녹색과 청색의 사용이 눈에 띄는 편이며, 신체와 복식, 구름 등에 백색과 황토 등 중간색을 부분적으로 활용하였다. 색조의
소재지 : 울산광역시 중구 문화체육과 052-290-3660울산광역시 유형문화재 제26호지정일 : 2013년 8월 16일시대 : 조선백양사 아미타삼존후불홍탱은 면바탕에 붉은 색을 칠한 뒤 백색선으로 윤곽을 그린 선묘불화이며 금어는 덕운영운을 수화승으로 정행과 전호 2인의 화승이 동참하여 1878년에 제작되었다.중앙의 아미타불을 중심으로 좌우에 협시보살인 관음보살과 대세지보살이 배치된 아미타삼존도의 형식이다.아미타불은 연꽃대좌위에 결가부좌한 자세로 설법인을 취하고 있다.좌측에는 아미타화불이 표현된 높은 보관을 쓰고 두 손으로 정병을
소재지 : 울산광역시 중구 백양로 67 (성안동, 백양사)울산광역시 유형문화재 제25호지정일 : 2013년 8월 16일시대 : 조선울산 백양사에 봉안되어 있는 석조아미타삼존불좌상은 중앙에 아미타불 오른쪽 협시에는 대세지보살 왼쪽 협시에는 관음보살로 구성되어 있다. 아미타불은 원래 대웅전 내부 본존불로 모셔졌으나 대웅전을 현재의 모습으로 중창하면서 본존상은 응진전의 본존으로 봉안되고 양 협시상은 새로운 본존불과 함께 대웅전 향좌측 불단에 모셔놓았다. 본존인 아미타여래좌상의 대의는 오른쪽 어깨를 살짝 덮어 내린 변형식 편단우견으로 표현
소재지 : 울산광역시 울주군 약수터길 146-29 (서생면)울산광역시 유형문화재 제17호지정일 : 2007년 11월 22일시대 : 조선 불법을 수호하는 역할을 맡은 여러 신들을 그려 정법(正法)과 도량의 수호를 담아낸 것을 통틀어 '신중도'라고 부른다. 울산 인성암 신중도는 대웅전 오른쪽 측면에 봉안되어 있으며 한 폭의 면 바탕 위에 그려진 채색화이다. 울산 인성암 신중도는 부분적으로 박락의 흔적을 확인할 수 있지만 권속들의 인물표현에서 음영이 잘 묘사되어 각각의 표정들이 다양하게 표현되었다. 작품은 전반적으로 붉은색
소재지 : 울산 울주군 범서읍 사연리 산112울산광역시 유형문화재 제13호지정일 : 2014년 12월 16일시대 : 조선태실은 왕이나 왕실 자손의 태를 모시는 작은 돌방이다. 예로부터 왕실에서는 왕실의 번영과 왕실자손들의 무병장수를 기원하는 뜻에서 전국에 이름난 산을 찾아 태실을 만들고 태를 묻었다고 한다. 이러한 산을 태봉산이라하며 태비는 태실이 있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 태실 앞에 세운 비석이다.태실과 태비는 울산지역에 하나밖에 없는 것으로 태비 앞면에 ‘王女合歡阿只氏胎室(왕녀합환아기씨태실)’이라고 기록되어 있고 뒷면에는 ‘成化二
소재지 : 울산 울주군 범서읍 사연리 산112울산광역시 유형문화재 제12호지정일 : 2014년 12월 16일시대 : 조선태실은 왕이나 왕실 자손의 태를 모시는 작은 돌방이다.예로부터 왕실에서는 왕실의 번영과 왕실자손들의 무병장수를 기원하는 뜻에서 전국에 이름난 산을 찾아 태실을 만들고 태를 묻었다고 한다.이러한 산을 태봉산이라하며 태비는 태실이 있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 태실 앞에 세운 비석이다.태실과 태비는 울산지역에 하나밖에 없는 것으로 태비 앞면에 ‘王女合歡阿只氏胎室(왕녀합환아기씨태실)’이라고 기록되어 있고 뒷면에는 ‘成化二十一
소재지 : 울산 동구 옥류로 93 (동부동)울산광역시 유형문화재 제11호지정일 : 2000년 11월 9일시대 : 신라동축사는 573년 처음 건립되었다고 전해지는 절이다.그 후 934년 고려 정종때 1457년, 1931년, 1975, 2005년에 고쳐 지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동축사 삼층석탑은 신라의 전형적인 석탑이다.화강암으로 된 기단은 면석이 모두 없어져 원래의 정확한 높이를 알 수 없다.탑신부는 탑신과 옥개석이 모두 한 개의 돌로 되어 있다. 상륜부는 노반과 보개만 얹혀 있는데 돌의 재질이 탑신부와 다른 사암 계통이어서 이 석탑
소재지 : 울산 울주군 삼남면 교동리 1086울산광역시 유형문화재 제8호지정일 : 1997년 10월 9일시대 : 조선언양향교를 처음 세운 시기는 정확히 알지 못하지만 반월산 아래에 지었고 이후 여러 차례 옮겨 지은 것으로 보인다.조선 숙종 22년에 지금의 위치로 옮겨 대성전을 지었으며 숙종 26년에는 명륜당과 동재, 서재를 지었다.지금의 건물들은 조선 후기에 다시 지은 것이다. 낮은 언덕을 등지고 평지에 지었으며 교육공간을 앞쪽에, 제사공간은 뒤쪽에 둔 전학후 묘의 배치를 따르고 있다.지금 남아 있는 건물은 제사 공간으로 여러 성현
소재지 : 울산 중구 교동 171-1울산광역시 유형문화재 제7호지정일 : 1997년 10월 9일시대 : 조선향교란 조선시대 공자를 비롯한 여러 유학 성현의 제사를 지내고 지방 백성들의 교육과 교화를 담당했던 국립교육기관을 가리킨다. 울산 향교는 선조 때 처음 세웠으나 임진왜란 때 불에 타 없어졌다. 그 후 효종 3년에 현 위치로 옮겨 다시 지은 것이 오늘에 이르고 있다.공자를 비롯한 유학자들의 위패를 모신 대성전과 학문을 연마하던 명륜당을 비롯해 동무와 서무, 동재와 서재, 청원루, 전사청, 전교실 등의 건물이 남아 있다.조선시대에
소재지 : 울산 북구 어물동 산122번지울산광역시 유형문화재 제6호지정일 : 1997년 10월 9일시대 : 통일신라마애불은 바위에 조각한 불상을 말한다.어물동 마애불좌상의 중앙 본존불은 ‘방바위’라 불리는 거대한 자연 암벽 면에 돋을새김 되어있다.도상적으로 일광보살과 월광보살을 좌우 협시로 둔 약사여래삼존상으로 제작 시기는 통일신라시대로 추정된다.마애불 중앙의 본존불은 결가부좌하여 앉은 모습이며, 얼굴은 크고 육계가 볼록하게 솟아 있다.마모가 심해 자세한 조각 표현은 알 수 없으나 도톰한 볼과 입술에는 엷은 미소가 보인다.양 귀는
소재지 : 울산 울주군 상북면 석남로 557 (덕현리)울산광역시 유형문화재 제5호지정일 : 1997년 10월 9일시대 : 신라석남사 삼층석탑은 극락전 앞에 자리하고 있다.원래 대웅전 앞에 있었지만 1973년 현재의 위치로 옮겨졌다.석탑의 하층 기단은 여러 장의 판석을 이용하여 결구하고 사방에 안상을 조각하였다.탑신석과 옥개석은 각각 하나의 석재로 구성되어 있다.탑신석에는 양 우주가 정연하게 새겨져 있으며 상층으로 갈수록 정연한 체감비를 느낄 수 있다.석남사 삼층석탑은 전체적인 체감비가 우수하고, 표현기법 등을 고려할 때 9세기 후기
소재지 : 울산광역시 울주군 반계길 207-22 (웅촌면)울산광역시 유형문화재 제4호지정일 : 1997년 10월 9일시대 : 조선부도는 이름난 스님들의 유골을 모시기 위해 세운 돌탑을 말한다.이 두 기의 부도는 운흥사의 터에 있던 것이며 현재는 시적사 경내에 위치하고 있다.부도는 종을 닮아서 석종형이라는 명칭으로 부르고 모두 조선시대에 만들어진 것이다.석종형 부도는 고려 말 이후부터 조선시대에 걸쳐 주로 조성되었다.이 부도들은 지대석이 없으며 탑신에는 별다른 문양이 조각되어 있지 않다.인당초 무늬 받침돌 위에 연꽃무늬가 새겨진 좌대
소재지 : 울산 울주군 청량면 율리 산107-4번지울산광역시 유형문화재 제3호지정일 : 1997년 10월 9일시대 : 조선이 부도는 청송사의 터에서 발견된 것이다.보물 제382호 울주 청송사지 삼층석탑과 약 100m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다. 기단석은 남북 면에는 인왕상을 동서 면에는 연꽃무늬를 돋을새김 하였다.탑신의 밑 부분에는 산스크리트 글자가 윗부분에는 연꽃 봉우리가 새겨져 있다. 가운데 부도는 기단석 4면에 연꽃무늬를 돋을새김 하였다.탑신에는 ‘서응당 진흡대사(瑞應堂 愼洽大師)’라는 글자가 아래에는 구름무늬가 새겨져 있
소재지 : 울산 울주군 삼남면 상천리 산37-15번지울산광역시 유형문화재 제2호지정일 : 1997년 10월 9일시대 : 고려 이 돌비석(석표 石標)은 통도사의 경계를 표시하기 위해 세운 장생으로서 ‘장승’이라고도 한다.장생은 수호신, 이정표, 경계표 등의 역할을 하며, 풍수지리설과 함께 민속신앙과도 깊은 관계를 맺고 있다.이 장생은 경계 표시로서의 성격이 강하다. ‘국장생’이라고 한 것은 국가의 명에 의해 건립된 장생이라는 뜻이다. 현재까지 울주군 삼남면 상천리와 양산시 하북면 백록리에 위치한 국장생 석표 2기가 남아있다.앞면에 오
소재지 : 울산 중구 북정동 349울산광역시 유형문화재 제1호지정일 : 1997년 10월 9일시대 : 조선조선시대의 지방장관인 원이나 수령들이 공적인 일을 하던 중심 건물을 말한다. 울산 동헌은 울산이 부·현·도호부 등으로 자격이 오르거나 떨어질 때마다 옮기거나 폐쇄하거나 새로 지었다.지금 있는 건물은 조선 선조에 울산이 부로 승격된 후 숙종에 부사 김수오가 지었으며 숙종 21년에 김수오의 아들 김호가 ‘일학헌’이라 이름을 지었다. 그 뒤 영조때가 되어 부사 홍익대가 다시 지어서 현판을 ‘반학헌’이라 고쳐 달았다고 하나 증보문헌비고
소재지 : 울산 동구 등대로 155 (일산동)등록문화재 제106호지정일 : 2004년 9월 4일시대 : 구한말울기등대는 1905년 일본이 러일전쟁을 치르던 중 목제로 만든 등대를 설치하여 방어진항 유도에 사용하다가 1906년경 지금의 위치에 콘크리트 구조물로 새로 설치하여 1987년까지 80여 년간 사용한 건축물이다. 하부는 원형이며 상부는 팔각형으로 된 흰색의 등탑으로 높이 9.2m이다.울기등대가 위치한 대왕암공원은 원래 목장지대였던 것을 일제가 군사기지로 만들고 해송림을 조성하였다. 울기등대는 처음 높이가 6.1m였으나 1972
소재지 : 울산 울주군 온양읍 남창역길 40 (남창리)등록문화재 제105호지정일 : 2004년 9월 4일시대 : 일제강점기남창역사는 1935년 건립되고, 1935년 12월 16일 간이역 영업을 개시하였다.구조는 목구조에 지붕은 맞배형태로 박공을 정면 출입구는 크고 배면은 적게 설치하였다. 구조는 목조로 벽체는 시멘트 마감으로 변형되어 있으며 등록전인 2001년 공사시 지붕재료, 창문형태등이 원형과 다르게 보수되었다.역은 현재 한국철도공사에서 간이역으로 사용중에 있다. 뉴비전 아트포럼참여작가 : 김기태·김혜경·박철·박외득·박태영·신금
소재지 : 울산 남구 무거동 1035-1번지외 3필지 중구 다운동 467번지 외 3필지등록문화재 제104호지정일 : 2004년 9월 4일시대 : 일제강점기 일제 강점기에 군수산업을 효과적으로 관리할 목적으로 건설된 울산 지역 최초의 근대식 철근콘크리트조 교량이다. 뉴비전 아트포럼참여작가 : 김기태·김혜경·박철·박외득·박태영·신금종·안남용 (가나다 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