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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간월재에서 신불산정상으로 가는 길. 간월평원의 억새가 구름이 만든 안개속에서 초록의 물결을 이루고 있다.


장맛비가 오락가락 하면서 산행 날짜를 좀처럼 잡기 힘들었다. 그사이 덮친 폭염, 여름 햇살에 완전 노출된 영남알프스 '하늘억새길'을 걷는다는 것이 쉽지만은 않기 때문이다. 태풍 망온이 일본 열도 탐하던 지난 19일 폭염이 한풀 꺾였다. 태풍 탓에 구름의 이동 속도가 빠르긴 하지만 구름 사이로 햇살이 보인다. 태풍은 아직 오지 않았다는 전제라면 산행하기에 더없이 좋은 날이다. 적어도 아침 일찍 출발할 때 까지만 해도 '택일'을 놓고 기다린 보람(?)이 있었다는 생각에 마음이 가벼웠다.

#영남알프스 산악관광 마스트플랜 선도사업
하늘억새길은 울산시가 추진하고 있는 영남알프스 산악관광 마스트플랜의 선도사업이다. 간월산과 신불산, 영축산, 천황산, 재약산의 억새군락지를 연결하는 모두 29.7㎞ 길이다. 대부분의 구간이 해발 1,000m에 이르는 그야말로 '하늘길'이다.


 가을억새가 장관을 이루는 간월재~영축산까지가 1구간, 영축산에서 청수좌골을 거쳐 죽전마을까지가 2구간, 죽전마을에서 다시 제약산을 올라 천황산으로 이르는 길이 3구간이다. 4구간은 천황산에서 능동산을 거쳐 배내고개까지, 5구간은 배내고개에서 배내봉, 간월산을 거쳐 간월재에 이르는 구간이다. 단순 계산으로 11시간 가량 걸리는 길이라고 하지만, 하루 단박에 걸을만한 길은 아니다.
 이날 산행의 목표는 제 1구간. 간월재에서 신불산 정상을 거쳐 양취산 정상에 이르는 4.5㎞로 잡았다. 대부분이 억새밭으로 이뤄진 '하늘억새길'이다.


 그러나 '하늘억새길'을 걷는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우선 해발 1,069m에 이르는 간월재에 오르는 일이 문제다. 배내골에서(사슴목장, 또는 신불산자연휴양림) 차량으로 진입하는 구간이 있지만 산림보호를 위해 양산국유림사무소가 길을 막아 놓았다.
 이 때문에 산행은 등억지구 간월산장에서 홍류폭포를 거쳐 간월재에 오른 후, 영축산 쪽으로 이동해 삼남면 가천리를 내려오는 길을 잡았다.
 
#홍류폭포쪽으로 길머리를 잡다
장마의 끝이어서인지 홍류폭포 쪽으로 오르는 길 계곡의 물소리가 어느때보다 우렁차다. 홍류폭포는 등억지구 간월산장 주차장에서 산행을 시작한지 15분 남짓 만에 만날 수 있다. 홍류폭포는 신불산 정상과 공룡능선 사이에서 시작된 물줄기로 웅장한 위용을 드러내고 있다. 폭포의 길이는 약 33m정도. 한 여름의 무더위를 식혀주기에 충분하다. 홍류폭포 좌측으로 난 등산로를 따라가면 공룡능선 칼바위를 거쳐 곧장 신불산 정상으로 가는 길이다. 간월재로 가려면 다시 되돌아나가 계곡을 따라 올라야 한다. 10여분을 오르다 보면 임도를 만난다. 여기부터는 인내심이 필요하다. 구불구불한 임도와 오솔길을 번갈아 1시간 가량 부지런히 올라야 간월재다. 간월임도를 오르는 길 내내 날씨가 변덕을 부렸다.


 변덕스런 날씨는 기어이 변죽을 부렸다. 간월재를 눈앞에 둔 지점에서부터 구름 속이다. 바람을 타고 동쪽에서 서쪽으로 이동한 낮은 구름들이 간월산, 신불산 능선을 넘지 못하고 정체된 것이다. 멀리 언양시가 쪽으로는 햇살이 내리는데 산정상쪽으로는 시계가 점점 나빠지기 시작했다. 간월재에 오르니 아예 10곒 앞도 보이지 않는 최악의 상황이다. 함께 산행한 사진기자의 얼굴이 좋지 않다.


 하지만 초록의 향연이 펼쳐지고 있는 간월재는 또다른 볼거리를 주고 있다. 무릎크기 만치 자란 억새들이 거친 바람에 흔들리는 모습은 장엄 그 자체였다. 이수영의 '풀'이란 제목의 시 첫 소절이 '풀이 눕는다'다. <풀이 눕는다 / 비를 몰아 오는 동풍에 나부껴 풀은 눕고 / 드디어 울었다./ 날이 흐려서 더 울다가 다시 누웠다./ 풀이 눕는다. / 바람보다도 더 빨리 눕는다. / 바람보다도 더 빨리 울고 /  바람보다 먼저 일어난다>고 했다. 허무와 냉소주의에 빠져 흐느적거리던 시인은 이 시를 통해 삶의 의미를 찾았다고 한다. 간월재엔 지금 골바람에 흔들리다가도 끝내 일어서는 억새풀들이 지천이다.

#무릎만치 자란 초록의 억새는 바람에 눕고

   
▲ 영축산과 삼남면 가천리로 내려가는 갈림길.
간월재에서 간월산과 신불산 정상으로 가는 길이 갈린다. 북쪽방향으로 길을 잡으면 간월산, 남쪽으로 갈을 잡으면 신불산, 영축산 능선길이다. '하늘억새길' 1구간은 간월재에서 시작해 신불산 정상을 거쳐 영축산까지 이르는 길이다. 구름을 뚫고 다시 신불산 쪽으로 길을 나섰다. 구름이 많기는 하지만 햇살도 비친다는 울산시가지의 날씨를 휴대전화를 통해 받았다. 어쩌면 구름이 걷힐 수도 있겠구나. 구름 속에 숨겨진 여름 억새밭의 비경들을 볼 수도 있겠구나 싶었다. 하지만 구름은 신불산 정상에 이를 때까지 끝내 걷히지 않았다.  너럭바위에 앉아 구름이 걷히기를 기다리기로 했다.


 신불산(해발 1,209m)은 울주군 상북면과 삼남면, 양산의 하북면 일대에 걸쳐있다. 특히 산정상부에 넓은 벌을 형성하고 있는 신성하고 밝은 산이다. 정상에서는 동쪽으로 언양과 울산시가지가 한눈에 보인다. 북쪽 계곡은 급경사를 이루며 태화강 본류에서 갈라진 작괘천을 이루고 있다. 남쪽 계곡은 가천리로 이어진다. 서쪽으로는 긴 계곡으로 선리와 이천리 등의 산간 부락이 발달하고 있다.
 신불산 정상엔 나무데크와 고무재질의 계단 통로 등 등산객들을 위한 편의 시설이 잘 갖춰져 있다. 이 시설들 덕에 억새들은 등산객들의 거친 발에서 안전할 수 있다.

#구름아래 사라진 시가지
구름이 걷혔더라면 정상부 바로 밑으로 신불공룡(칼바위)을 볼 수 있다. 기묘한 암릉들이  자태를 뽐내는 모습을 볼 수 없어 아쉬웠다. 남쪽 영축산(취서산) 쪽이 신불평원이디. 가을 신불평원은 수채화처럼 하얗게 펼쳐질 것이다. 신불재와 영축산사이의 330만㎡(100만 평)의 억새 군락지는 재약산의 사자평, 양산 천성산 화엄벌과 더불어 영남알프스의 억새능선을 대표한다. 주변의 산들이 서로 어울려 명성을 공유하고 스스로 가치를 키우고 있는 것이다.


 신불산 정상에서 1시간 넘게 기다렸지만 구름이 걷힐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넓은 평원을 카메라 가득 담고 싶은 욕망도 거친 바람과 낮아지는 체온 때문에 점차 사그러진다. 이제 현실과 타협할 시간. 하늘억새길은 모두 다섯 구간, 이제 시작일 뿐이다. 어차피 다섯 구간째에는 배내고개에서 간월산을 넘어 다시 억새평원으로 원점회귀해야 한다. 그때쯤 오늘 이 녹색의 억새풀이 키만큼 자라있을 것이고, 가을 햇살을 받아 은빛 향연을 펼치겠지. 그때 다시 만나자. 아쉬운 마음으로 영축산 쪽으로 난 고무데크로 발걸음을 옮겼다. 10여분 곧장 내려가면 영축산과 가천리 등산로 갈림길이 나온다. 털보산장을 지나 계곡을 따라 곧장 내려가면 삼남면 가천리다. 내려오는 길 8부 능선에서 햇살을 만났다. 산정상쪽으로 시선을 돌리니 여전히 구름이 깔려있다. 태풍 때문에 계속 동쪽에서 낮은 구름이 밀려오고 있다. 태풍이 떠 밀어주어도 산봉우리를 넘지 못하는 구름이 야속하다. 하지만 '하늘구름길'도 잊을 수 없는 추억이었다.  글=강정원기자 mikang@ 사진=이창균기자 phot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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