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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 고향 집 처마에서 떨어지던 장마 끝자락의 그 톡톡 거리는 빗소리가 생각납니다. 기왓골을 따라 흐르던 비가 스타카토처럼 흙 마당에 홈을 패곤 했습니다. 마당엔 길게 사행천 마냥 골이 생겼고 담벼락 아래 풀밭엔 생기가 가득했습니다. 옅어진 비가 방울방울 떨어지며 패인 구멍 속에서 리듬으로 퐁퐁거렸습니다. 구름 사이로 햇살이 비치면 옆집 계집아이 놀러 나왔나 삽짝을 기웃거리기도 했습니다.
대청마루 옹이 홈을 후벼 파며, 날이 개기를 기다리던 아이는 어느덧 뱃살 넉넉한 중년으로 낡았지만, 장마가 가져다준 기억은 어렴풋하게 그때를 간직합니다.
 
무심한 시간 앞에 사람만 늙어가나 봅니다. 떨어지는 비를 볼 흙 마당도, 골목길을 기웃거리게 할 계집아이도 부재 중인 중년의 오후. 빗줄기는 아무렇지 않게 점점 사나워지기만 합니다.

글·사진=김정규기자 kjk@ulsanpress.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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