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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제 여차해안도로 비포장도로 끝의 풍경입니다.

굽이지고 덜컹거리는 산길을 따라 섬의 속살 속으로 들어가서야 만나는 숨은 바다입니다. 매물도, 어유도, 병태도 같은 순한 이름을 가졌거나 혹은 가지지 못한 섬들이 점점이 자리 잡았습니다.

섬이 선사하는 또 다른 섬들 위로 어느 순간 해무가 피어올랐습니다. 섬이 지워지고 바다가 사라지고 하늘마저 무채색으로 물들어갑니다. 몽환의 풍경 속에서 사람은 길을 잃고, 안개의 깊고 서늘한 숨결 앞에 햇살조차 고요합니다. 나무와 언덕과 섬들이 시야 밖으로 나가버린 풍경은 텅 빔으로 어느새 가득 찼습니다.

심연의 고독처럼 홀로 선 이곳에서는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좋을 무위의 시간입니다. 세상의 모든 증거 할 수 없는 말들이 사라지고, 간단치 않았던 안개 밖 삶의 좌표마저 잊힙니다. 

초점 없는 먼 시선을 바삐 거둘 필요가 없는 희미한 공간. 이런 곳에선 가끔,
아련한 첫사랑이나 헤아렸으면 좋겠습니다. 그 섬에 가고 싶다던 소녀의 앳된 희망이나 들어주며 말입니다.
 글·사진=김정규기자 kjk@ulsanpress.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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