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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림의 붉은색마저도 열정이 되는 시간 가을, 7번 국도에 섰습니다.
삶의 행간이 복잡할 때나, 너무 식상하다고 생각이 들면 버릇처럼 국도를 탔습니다.
그 길, 영덕 어디쯤 바다와 산과 하늘이 분할된 공간 속으로 나아가면
멀리 벗어난다는 안도감의 이면에 돌아갈 길이 멀어진다는 막막함이 중첩되곤 했습니다.
 
계절은 낡은 믿음처럼 자주 어긋났습니다.
여름은 오래도록 머물러 있었고, 가을의 기억을 만들기도 전에 겨울이 벌써 등 뒤에 온듯합니다.
 
울진 불영계곡 도로변에 뿌리내린 담쟁이넝쿨입니다.
바위를 움켜쥐며 버텨온 고단한 시간이 눈에 보입니다.
청개구리 발가락처럼 생긴, 작고 여린 활착판들이 서두름 없는 걸음으로 치밀하고 견고한 터전을 이루었습니다.
잎이 나고 꽃을 피우며 열매 맺는 세 계절을 보낸 삶은 이제 잠시 움츠릴 시간입니다.
스스로 잎을 털어내는 생태의 시간, 찬란한 가을빛을 선사합니다.
 
비라도 내려야만 술 한잔 핑계 찾는 별 볼 일 없는 중년의 일상에
할 일을 다하고 돌아서는 홀가분한 담쟁이가 환한 일렁임으로 속삭입니다.
돌아갈 걱정보다 더 멀리 보는 삶은 어떠냐고….
 글·사진=김정규기자 kjk@ulsanpress.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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