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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여수의 야경입니다.
한때 모터사이클을 타고 세계 일주를 같이 하자던 친구가, 좀 쉬고 싶다며 떠난 길에 보내준 사진입니다. 아직 가슴이 뜨거웠던 시절, 같이 바람을 가르며 달리던 라이더이자 예술의 끈을 잡으려 허우적거렸던 동료였습니다. 막걸리를 앞에 놓고 예술과 외설의 결론 없는 이야기로 희뿌연 한 새벽에서야 술집을 나서던 그 허망함의 시간을 함께 건너온 사이였습니다. '세상 밖에서 본 세상은 여전히 따뜻하고 아름답다'는 녀석의 메시지가 세상 안에서의 상처를 말해주는 듯합니다.
 
십여 년 전 어느 초겨울 함께 일출을 담으러 떠났던 향일암의 새벽은 구름에 가렸고, 순천만의 석양은 겨울비에 식어 어떠한 감흥도 얻지 못했습니다. 눅눅한 프레임 안에 담아온 건 허탈함뿐이었습니다. 그때는 몰랐습니다. 여행은 꼭 무엇인가를 얻기 위해 가는 것이 아닌, 모든 것을 내려놓고 비우러 갈 수도 있다는 것을 말입니다. '비움의 욕망이 가장 큰 탐욕'이라는 어느 노승의 말처럼 어렵고도 간단치 않은 일이지만, 한 번쯤 어깨 위에 놓인 세상의 짐들을 잠시 내려놓고 떠나는 발길은 비우는 것 이상의 채움을 가져다줄 겁니다.
 
오늘, 길 위에 선 친구의 시간은 여전히 춥고 막막하겠지만, 그 시간들이 그의 영혼을 윤택하게 하리라 믿습니다. 비움만큼 큰 채움은 없을 테니까요. 돌아오면 따뜻한 술잔 기울이며 짧은 여정의 발걸음을 들여다봐야겠습니다. 김정규기자 kjk@ulsanpress.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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