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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근길 머릿속까지 시원해지는 차고 명료한 날씨가 정신을 번쩍 들게 합니다. 군더더기 없는 높은 하늘 아래 목적 있는 걸음이, 요즘 같은 어수선한 세상엔 때로 기쁨이곤 합니다.

일과 전 늘 연필을 깎습니다. 날카로운 칼날이 스치면서 타원으로 일어서는 부드러운 나무의 곡선과 잠자던 나무의 향과 연필심의 곧은 가지런함이 기분을 정갈하게 합니다.

지난 몇 개월 동안 썼던 것들이 고만고만한 크기로 책상 한편에 누워있습니다. 쥐기에 불편할 정도의 크기까지 쓴 것들, 여전히 새것처럼 반들반들한 것들, 정서불안의 흔적처럼 꽁무니가 씹혀 울퉁불퉁한 것까지. 연필은 그 당시 글쓴이의 심리상태까지 담고 있는 듯합니다. 지난 시간을 채운만큼 깎여나갔습니다. 사람도 남은 생을 소진하면서 하나하나 만들고, 잇고 때론 지우며 이력을 만들어 가는 것이 연필과 닮았습니다.

2013년이 며칠 남지 않았습니다. 사람의 일생은 긴 여정입니다. 펜이나 붓의 명확하고 단호한 일필휘지도 좋지만, 실패와 좌절을 딛고 느리게 나아가는 것도 하나의 방법입니다. 새해엔 또 365장의 원고지가 펼쳐집니다. 한장 한장 채워 나가다 보면 또 한해가 마감되겠지요. 한 자 한 자 또박또박 연필로 써 내려가는, 가끔 지우기도 하는 그런 새해를 꿈꿔봅니다. 김정규기자 kjk@ulsanpress.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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