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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이 무너지면 사회가 무너지고 결국 국가도 위태로워진다. 그래서 가정은 사회의 작은 모형이자 하나의 국가다. 국가의 축소판이 가정인 것이다. 가정은 우리가 비록 실패나 좌절했을때에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쉼과 응원과 재기회를 얻는 원동력이자 발전소 역할을 하는 곳이다. 그런데 이 가정을 지탱하는 핵심 요소들이 오늘날 하나씩 무너지고 있는 위태로운 현 시대를 살고 있다. 가정이 해체되면 사회와 더 나아가 국가도 붕괴된다. 가정과 사회, 국가마저 위태롭게 하는 이 총체적 위기의 쓴 뿌리는 바로 상호간의 불신에 있다.

 지난주 울산 소공연장에서 막을 내린 울산 극단의 제41회 정기 공연 김수미 작, 김재경 연출의 연극 '슬픈 사랑의 노래'(원제:양파)를 보면 가족간에 사랑과 소통부재에서 비롯된 그 슬픈 사랑 노래의 처음과 끝을 엿들을 수 있다. 부모와 20세가 넘은 자녀를 둔 평범한 가족의 일상이 극 내내 이어지지만 가족간의 공통 분모를 찾을 수 있는 매개체나 소통거리는 단 한 가지도 없다. 이들은 과거에 서로에게 입히고 또 덧입혔던 생채기들만을 되뇌며 각자의 불행했던 과거사에서 벗어나질 못하고 있다. 과거사를 통해 입었던 상처들을 회복하려는 의지조차 없이 이들은 끊임없이 서로를 불신하며 반목하고 있다. 아들은 아버지의(황성호 분) 가부장적이고 권위적인 자세에  대항한다. 딸은 자신이 원치 않는 임신으로 탄생하게 됐다는 상처로 어머니를(하다효지 분) 반목하고 증오한다. 이들의 부모인 남편과 아내는 한때 서로의 불륜으로 인한 상처로 서로를 학대하고 자학함으로써 생채기로부터 벗어나려 몸부림친다. 이 비극적인 가족사가  안고 있는 딜레마를 극복하고 치유하는 것은 신뢰와 사랑으로 소통을 이루는 것이지만 이들은 끝내 이것 마저 불신한다. 그래서 연극 파국엔 모두가 자·타살이라는 비극적이고도 충격적인 종말을 맞이하고 만다.

 이 연극의 비극적 특성은 불신과 증오에 있다. 이 비극적인 구조가 바로 불행의 씨앗이다. 불신은 불신을 낳고 그 불신은 또 비극의 씨앗만을 끊임없이 심는다. 종국엔  알멩이 없는 양파 껍질을 벗겨내듯 이 연극은 파멸에 이르고 마는 것이다. 연극 '슬픈 사랑의 노래'에 등장하는 가족들의 소통부재는 결국 사랑의 부재로 이어져 있다. 소통 부재의 기저엔 애정 결핍이 도사리고 있지만 갈등해소를 위한 노력이 없는 이 가족의 갈등은 더욱 증폭돼 갈뿐인 것이다. 자존감이 낮은 이 슬픈 자기 연민뿐인 애증은 결국 타인은 사랑할 수 없는 이기애로 이어져 슬픈 사랑의 노래만 남긴다. 사랑을 목말라 하지만 결국 자신의 상처를 내려놓고 상대를 온전히 끌어안지는 않는 배타적인 사랑의 노래는 그래서 슬프다. 이 연극은 가족 간의 갈등 요인을 해결 할 수 있는 해답을 가장 가까운 곳에 두고 있지만 결국 자기애의 사슬에 묶인 채 비극적인 파국을 맺고 마는 것이 안타깝다.

 연극적인 메소드나 텍스트들은 우리네 인생살이의 소재들과도 밀접한 것들이다. 그 이유는 우리네 인생살이가 곧 무대 위 연극이라는 예술 장르로 투영되어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래서 무대 위에서 배우들을 통해 펼쳐지는 희노애락의 인생 여정들이 허구임을 알지만 사실인 듯 웃음 짓고 때론 눈물 흘리며 감동한다. 왜일까? 그것은 우리 자신이 표출해 낼 수 없는 정서적 카타르시스를 무대 위 인생들이 대신 충족시켜 주기 때문이다. 이것은 순수 예술 장르인 연극이 오랜 세월 우리와 함께 존재하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연극 '슬픈 사랑의 노래'는 극적 긴장감을 극대화할 수 있는 브릿지 음악을 한껏 활용치 못한 연출 구성이 다소 극적 긴장감의 밀도를 떨어뜨리며 느슨함을 주었다. 하지만 가족극의 특성인 인물 상호간의 심리 묘사를 연출의도에 맞도록 섬세하게 잘 표현한 배우들의 앙상블이 극 전체를 잘 아우른 작품 이였다. 오늘날은 가족 간의 불신으로 사랑마저 메말라 이혼이 급증하고 자녀들의 탈선이 만연한 시대라 염려스럽다. 이 세태에 작가 김수미와 김재경 연출자가 던져 주는 역설적인 사랑의 메시지들이 충격적이고 신선한 이유는 뭘까? 가족간의 불신을 씻고 사랑과 상처를 회복하는 일은 결국 다시 끌어안고 사랑하며 신뢰하는 일뿐임을 깨닫게 한 연극 슬픈 사랑의 노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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