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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무현 대통령이 '대통령 4년 연임제' 개헌안을 들고 나온 지 11일로 만 이틀이 지났다. 이 짧은 시간에 우리의 국론(國論)은 첨예하게 갈라졌고, 숱한 일들이 벌어졌다. 대통령 담화가 있자말자 곳곳에서 마치 융단폭격이라도 하듯이 온갖 성명과 비난이 봇물을 이루었고 민초들은 뭐가 뭔지 어리둥절할 뿐이다. 빗장수비를 천명하고 나선 한나라당 등 야(野) 4당의 주장과 같이 찻잔속의 태풍으로 소멸될지, 아니면 "여론이 아무리 불리해도 발의를 하겠다"는 청와대의 의지대로 실현될 수 있을지가 결코 예단할 수 없다. 물론 현재까지의 여론 정황으로 봐서는 '개헌불가'쪽에 무게 중심이 실려 있다. 대통령의 오찬 제의를 거부한 야 4당의 기세도 여론 때문이다. 한나라당이야 그렇다 치고 민주당과 민노당, 국중당까지 오찬에 불참하리라고는 선뜻 상상하지 못했다. 이들 야당 수뇌부들은 대통령의 제의가 나왔을 당시에는 일단 참여한다는 것이 대세였다. 그러다 저녁시간 이후의 상황전개와 "안 가는 것보다 가는 것이 더 불리할 수 있다"는 당내 의견을 수렴, 불참 결정을 내렸다. 이 가운데 민노당은 대통령의 여당 당적 이탈을 조건으로 내세웠다. 대통령이 여당 당적을 포기하지 않고 거국내각을 구성하지 않는 한, 개헌논의에 참여하지 않겠다는, 조건부 불참이었다.

 

   한나라당 개헌관련 '빗장'
 그러나 대통령은 여당인 열린우리당 수뇌들만 참석한 '청와대 개헌오찬'을 마치고 곧바로 "개헌을 전제로 탈당하라면 할 수 있다"며 화답했다. 대통령이 이를 결행한다면, 결국 민노당으로서는 개헌논의 불참 조건의 하나를 잃는 셈이다. '승부사' 대통령을 상대하는데 있어 전략빈곤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특히 한나라당이 소속 국회의원들과 당직자들에게 공식적인 논의는 물론이고 개헌과 관련된 방송토론 프로그램에도 일체 출연하지 못하도록 엄명을 내린 점이 더욱 해괴하다. 이 빗장을 언제까지 지켜낼 수 있으리라 생각하는 그 아집이 놀랍다. 여론을 먹고사는 정치인들이 모인 집단이 정당이다. 말하기 좋아하고 얼굴 내밀기 좋아하는 저들이 당론이라 해서 무조건, 끝까지 따르리라 믿는 것은 착각이다. 더욱이 현재의 반대 여론이 조금이라도 삐끗하면, 당론은 안중에도 없을 저들이다. 또 대통령탄핵이라는 체험학습을 통해 충분한 경험도 했다. 정권창출이라는 정당의 존립이유마저 '제 살길' 앞에서는 휴지조각보다 더 값어치 없이 던져버리고 마는 것이 이 나라 선량들의 행적이다. 때문에 누구든 이 개헌논의에 발을 담그기 무섭게 당론은 무너질 수밖에 없는 부실구조물이다. '약속은 지킬 수 있는 것만 하라'고 했다. 못 지킬 약속을 하고, 이를 강요하는 것은 곧 일신과 당 전체를 수렁으로 몰 수 있다. 한나라당은 이 점에서 중대 실수를 하고 전선에 뛰어들었다.
 이 나라 대통령 선거 역사에서 눈앞의 여론에 좌지우지되던 정당이 대권을 차지한 전례가 없다. 기성(棋聖)이니 국수(國手)니 하는 바둑의 거물들은 대국을 둘 때 집을 보는 것이 아니라 전체를 본다고 했다. 정치9단들의 세계도 다르지 않다. 대통령선거라는 큰 먹이를 위해서는 모든 것을 버릴 각오가 되어 있다. 그러나 한나라당 등 작금의 이 나라 야당들은 여론에만 매달려 큰 그림을 보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중론이다. 특히 당은 수구보수라 해 마(魔)의 40% 벽을 넘지 못하는데 확정되지도 않은 당내 주자들만 이를 넘나든다고 해서 자만하고 있는 것이 더욱 문제다. 뿌리는 언제라도 뽑힐 수 있고 거들날 수 있는데 가지만 욱일승천하고 있는 형세다. 믿지 못할 것이 여론이다. 성현(聖賢)에게 여론이 무엇인가를 물었더니 초상지풍야(草上之風耶)라고 했다. 민중은 바람이 불면 풀잎이 눕듯이 언제고 돌변할 수 있다. 또 집권여당, 대통령의 여론장악 능력을 과소평가하는 야당의 무지와 겁 없음에도 혀를 내두르게 한다. 보수언론만 믿고 설치다가는 날벼락을 맞기에 십상이다. 방송과 인터넷언론, 포털사이트 등을 동원한 개헌바람몰이가 전 방위로 몰아칠 경우 여론은 초상지풍이 된다.

 

   보수언론만 믿다간 날벼락
 매일 한차례 이상 인터넷을 켜는 국민이 4천8백만의 절반이 넘는 2천5백만에 육박하고 있다. 지난 대선에서 노무현 대통령이 승리할 수 있었던 주역이 인터넷이었다는 것을 상기한다면 등이 오싹해져야 할 야당이다. 그런데 지금의 여론조사 그래프에 도취해 마치 대통령이라도 된 듯이 오만해져 있는 당에 국민의 미래를 걸 수 있겠는가. 개헌논의는 이달만 지나면 숨 가쁘게 현실화 될 것이고 헌법 개정을 위한 법절차도 일사천리로 진행될 상황으로 가고 있다. 이는 무엇보다 야당의 전략부재 탓이다. 이것이 개헌의 운명이자 차기 대권의 그림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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