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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적절한 말 유행어 전락

 노무현 대통령이 25일 신년 내외신 기자회견에서 "나는 국민들을 무서워한다. 정말 무서워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또 "겁이 없는 대통령이라고들 하지만 나는 국민들의 힘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는 말까지 덧붙였다. 대통령의 '말'을 둘러싸고 공방(攻防)이 끊이지 않는 상황에서 대통령이 직접 언급한 "국민이 무섭다"는 이 말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 지 혼란스럽기 짝이 없다. 누구는 대통령의 언어를 '국정 국어교과서의 틀'이라고 했다. 비록 대통령의 말이 별도의 교과서로 나오지 않는다 하더라도 각종 국정교과서에 인용되고, 역사가 되기 때문이다. 말을 가려서 해야 하는 것은 기본이고, 현재의 우리 국어사용에 적합한 것인지를 늘 염두에 둬야 한다. 이를 위해 청와대에는 대통령의 '말씀'을 만들고, 이를 검증하는 시스템이 있다. 공석이든 사석이든 대통령의 말을 쫓는 기자가 있고 여기에서 국가의 주요정책 방향이 제시된다. 대통령은 "짐이 곧 국가다"던 전제군주가 아니라 하더라도 현재의 우리 권력구조상에서는 최고의 권위를 지니고 있다. 특히 우리 헌법상에서 보장하고 있는 대통령의 지위는 조선시대 왕의 권위에 비쳐서도 결코 손색이 없을 정도로 막강하다. 국군최고통수권을 비롯해 조약체결권 등 국정의 핵심 사무를 총괄한다. 어디 그 뿐인가. 외국의 국가원수를 접견하고 장관과 주요 기관장 등에 대한 임면권을 갖고 있어, 어쩌면 무소불위의 권한을 행사한다고 할 수 있는 자리가 대통령이다.
 이런 막중한 권한과 지위를 부여받은 노무현 대통령이 지난 4년간 과연 제대로 감당해 왔는가. 대통령의 말이 걸핏하면 유행어로 둔갑하고, 그것도 모자라 국정을 파국으로 몰아가기까지 했다. 적절하지 못한 처신과 말로 헌정사에서 유례가 없던 '탄핵대통령 1호'로 기록되기도 했던 노무현 대통령이다. 헌법재판소에서 그 지위가 복원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국정의 난맥과 혼란이 있었는가. 그러고도 대통령의 좌충우돌식 말이 그칠 줄 몰랐다. 전시작통권을 두고 국론이 첨예하게 갈려있을 때 예비역 군(軍)장성들을 겨냥 "별이나 달고 거들먹거렸다"고 발언, 이들에게 씻을 수 없는 모멸감과 참담함을 안겨주었다. 그런가 하면 자신이 임명한 전 국무총리를 두고 "잘못 된 인사였다"며 폄훼하기까지 했다. 곧이어 "적반하장도 유분수"라는 반격과 함께 거센 국민적 비난에 몰리게 된 노 대통령이다. 현재 겨우 두 자릿수를 유지하는 대통령의 지지여론도 결국은 이런 상대를 안중에도 두지 않는 막말에서 비롯됐다. 대통령 본인의 말처럼 "부동산 이외에는 잘못한 것이 없다"면서, 지금과 같이 형편없는 국민적 지지를 받게 된 것은 오직 말 때문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스스로도 청와대 참모들에게 "그러지 않으려고 해도 잘 되지 않는다"고 고백했듯이 노무현 대통령의 막말은 가히 중증 수준이라는 것이 중론이다. 대통령선거 초반 여론조사에서 5%를 밑돌던 정치기반으로 출발, 대통령에 당선되기까지는 질풍노도와 같은 말솜씨(?)가 일정부분 효력을 발휘했을지 모르지만 지금은 아니다.

 

   믿음·권위 실린 언변 고대
 모든 국민이 일거수일투족을 주시하는 국가원수다. 우리 선인들은 최고의 통치자 덕목을 "무위(無爲)의 일에 처하고, 무언(無言)의 가르침을 실행하며, 백성들로 하여금 각기 본성(本性)을 따라 그 생활에 편안(便安)하도록 한다"고 했다. 즉 인위(억지)가 없는 처신과 말 없는 가르침을 실행하라는 주문이다. 그런데 현재의 노 대통령은 어떤가. 하지 않아야 할 말, 필요 없는 말을 너무 많이해 탈을 만들고 있다. 노자가 도덕경에서 통치자(왕)의 등급을 4등급으로 나누면서 태상(太上), 최고의 등급을 "아래의 백성들이 그가 있다는 것만 알 뿐이다"고 했다. 그러나 노 대통령은 잠시도 여론의 주목을 받지 못할까 봐 수시로 휘발성이 높은 말들을 골라서 터뜨리고 있다. 이는 말의 무게뿐 아니라, 믿음마저 떨어뜨리게 한다. 노 대통령의 말처럼 진정 국민을 무서워한다면, 말부터 무서워할 줄 아는 것을 배워야 할 것이다. 이렇게 하는 것만이 마지막 남은 임기동안이라도 "국민이 업신여기지 않는" 대통령으로 국정을 갈무리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대통령의 개헌주장에 글방 서생은 말할 것도 없고, 서당개까지 콧방귀를 뀌는 나라가 온당한 나라인가. 대통령의 말에 권위가 실릴 것을 삼가 고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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