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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방자치시대가 열린지도 열 돌을 훌쩍 넘겼다. 풀뿌리민주주의의 교실, 주민복지행정 구현의 시금석 등으로 기대를 모았던 지방자치다.

 

참모로서의 기능 상실
 그런데 이를 경험한 지난 세월은 이런 기대를 갉아먹는 시간의 연속이었다. 처음에는 시행착오이겠거니, 시간이 좀 지나서는 이 마당에 포기할 수도 없는 것 아니냐는 자존심으로 그렇게 버텨왔다. 초보운전자의 섣부른 의욕에 '너는 너고 나는 나다'고 버티는 공직사회로 숱한 갈등과 불신을 키웠다. 특히 울산과 같이 지방자치제 시행과 함께 광역시로 승격되는 바람에 '벼락감투'를 쓴 고위 공무원들의 무소신, 무사안일, 복지안동은 가히 인내의 한계를 느끼게 한다. 모 단체장은 어느 사석에서 "정말이지 못해먹겠다. 참모라는 공무원들이 툭하면 선출직에게 물어보라는 식이고, 그것도 아니면 윗선에서 결정해 모르겠다는 대답으로 일관해 답답하기 짝이 없다"는 푸념을 쏟아냈다. 말이 고위 참모지, 하는 일은 말단보다 못한 인사가 한 둘이 아닌 울산관가다. 중간 지휘자라 할 국장급 공무원은 일단 책임을 질 수 있는 일인가를 가려낼 줄 알아야 하고, 결재를 하고 나서는 어떤 불이익이 있더라도 끝까지 책임을 질 줄 알아야 한다. 이것이 참모다. 참모의 군대식 의미가 "정책을 고안하고 보급하며 그 집행을 감독, 지휘관이 업무를 원활하게 수행할 수 있도록 보좌한다"로 되어 있듯이 업무보좌가 참모의 역할이다. 그런데 울산 관가의 국장급은 결재 과정만 하나 더 늘인 것일 뿐, 참모로서의 기능을 상실하고 있다는 평가다.

 

'안하무인' 고위공무원
 누구 말처럼 "가만히 있어도 월급 나올 것 나오고 때 되면 승진하는 데 뭐 때문에 난리를 떨겠느냐"는 분위기가 팽배돼 있다. 상황이 이러니 시키는 일만 마지못해 할 뿐, 스스로 기안하고 일을 찾아나서는 고위 공무원은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다. 괜히 긁어 부스럼이라고 귀찮고 힘든 일은 피하고 보자는 심산이다. 시장과 구청장, 군수 등 단체장들만 요란하지 정작 이를 전달하고 독려해야 할 국장급 공무원은 '세월아 네월아'다. 그도 그럴 것이 민선단체장 시대에는 어디 영전(榮轉)이라고 할 만한 '용빼는' 자리가 없다. 구청장이나 군수 등 단체장 자리는 선출직 몫으로 넘어가 어디를 가더라도 '부(副)'자가 달린 그렇고 그런 자리뿐이다. 자리만 높지 책임질 일도, 하는 일도 신통치 않은 것이 부단체장의 업보다. 공무원사회의 별이라고 할 '부이사관'은 누구나 마음만 먹는다 해서 올라갈 수 있는 자리가 아니다. 소수의 선택된 공무원이 아니고는 불가능하다. 최소한 '논두렁 정기'라도 타고 나야 한다'는 말이 있지 않은가. 어느 단체장은 "중앙부처와 상급기관을 쫓아다니며 예산을 한 푼이라도 더 받아오려는 악착같은 국장이 단 한명이라도 있다면, 업무의 반은 들어질 수 있다"고 했다. 그 대표적인 변화가 휴일 공식행사에 단체장을 수행하는 국장급 공무원을 찾아보기 어렵다는 점이다. 예전 같으면 나오지 말라고 해도 '죽을 판 살판' 따라 다녔다.

 

市 '역할 맨' 제도 도입
 더욱이 지금은 휴일도 이틀로 늘어났는데, 휴일을 알토란같이 찾아먹는 공직풍토다. 본청에 있으나, 외직에 나가나 달라질 것이 없다는 판단이다. 울산광역시가 9일 '역할 맨' 제도를 도입하겠다고 발표했다. 이를 거꾸로 뒤집으면 기존의 울산공무원들은 '역할'이 없이 놀고먹는 공무원이라는 뜻인지 헷갈린다. 그러나 우리는 여기에서 지역 단체장의 고뇌를 느끼지 않을 수 없다. 국비확보나 첩첩이 쌓인 민원 등 당면한 현안을 맡길 공무원이 없다는 절박감의 표현이다. 시는 내년부터 활동에 나설 '역할 맨' 2~3명을 조만간 비공개로 모집할 계획이며, 이들은 중앙부처 관련인사를 타깃으로 삼아 집중 공략해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고 그에 따른 인센티브를 시로부터 받게 된다. 일종의 정무직이라 할 수 있다. 울산의 대형 국책사업과 사회간접자본 투자, 민원해결 등에 이들의 활약을 기대해 본다. 동시에 울산 공무원들의 분발을 다시 한 번 촉구한다. 이것만이 울산공직사회에 '역할 맨'을 조기에 퇴역시킬 수 있다. 이런 제도 자체가 부끄럽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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